“최상의 준비는 매순간 자신의 죽음 직시하는 일”

나의 죽음을 직시하는 삶

태국 남부의 사원 수안목(Suan Mok)에는 선방 입구에 해골을 세워두었다. 해골 옆 명패에는 ‘1930년 미스 타일랜드의 실물’이라 적혀 있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그런가하면 묵언수행을 하는 유럽의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말이 있는데, 그것은 ‘메멘또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한 마디이다.

두 사례는 모두 자신의 죽음을 또렷이 직시하면서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선방 문을 드나드는 이들은, 이 나라 제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여인이 한낱 백골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무상과 무아를 절감할 것이다. 또한 일상수행 속에서 ‘메멘또 모리’라는 말을 주고받는 이들은 삶 속에 죽음이 깃들어있음을 매순간 새길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거론하는 일을 불길하고 염세적이라 여기며 죽음은 나와 무관한 듯 살아간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 육체 속에 죽음이 깃들어있음을 알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만 집착하며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외면한다. 그러나 생사문제를 깨달은 부처가 가장 성찰적이며 실천하는 삶을 살았듯이,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는 이들이야말로 적극적이고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불성실성은 삶에 대한 불성실성을 가져오고, 삶을 올바로 직시하는 힘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온다.

옛날에 한 고을의 지주가 하인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내가 가진 땅을 나눠주려 하네. 내일 하루 동안 각자 달려서 재어온 만큼의 땅을 줄 테니, 해가 뜬 뒤 출발하여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하인들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오후가 되자 갖가지 사태가 발생했다. 기진맥진해 쓰러진 이들, 너무 많이 달려갔다가 일몰 전에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닫고 망연자실한 이들, 서로 자기가 잰 땅이라고 싸우느라 해가 기울어가는 것도 모르는 이들….

그 와중에 해가 지기 직전에 돌아온 한 사람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죽고 만 것이다.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태수는 말했다. “약속대로 그에게 땅을 주도록 하라.” 그러나 그 자신이 차지한 땅은 고작 한 평, 스스로가 묻힐 자리였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해준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재물을 추구하지만, 재물 욕심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앞으로만 나아가지 말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도 돌아보라는 메시지이다.

최상의 죽음준비는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생겨난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머무는 바 없음[無常]을 철저히 인식한다면 결코 삶을 허투루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나, 타다 만 장작처럼 회한으로 가득 찬 일생을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완전히 연소시켜 한 점의 미련도 남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을 마음 깊이 또렷이 새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리적ㆍ현실적 죽음 준비

근래 유서를 미리 써보고 입관체험을 하는 등 자신의 죽음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준비된 가운데 맞이하기 위한 웰 다잉(well dying)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주로 서구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일찍이 죽음이 삶과 짝을 이루는 것임을 깨달아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일련의 죽음 준비문화가 있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 사람들에 대해, “남녀가 혼인하면 죽어서 장사지낼 때 입고갈 옷을 미리 만들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이른 시기부터 연로한 부모의 수의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의를 미리 마련해두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수의에 ‘목숨 수(壽)’자를 써서 장수를 기원하고, ‘수의를 미리 장만하면 장수한다’는 담론이 함께한다. 이는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결코 불길하거나 나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처럼 수의와 관을 미리 만들고 묏자리를 결정해두어 일찌감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서양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듯 느껴져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준비를 이 땅에서는 ‘효’라고 부른다. 부모는 자신의 수의를 만드는 후손들을 보며 흡족해하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동네사람들도 함께 거들다보면 음식도 장만하고 농담도 해가며 즐거운 시간이 된다. 죽음을 예비하는 자리에서 잔치처럼 떠들썩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은 우리민족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온전히 스스로의 몫으로 감당했으나 산업화와 함께 물리적ㆍ관념적으로 ‘집을 떠난 죽음’은 일상과 멀어지고, 죽음은 점차 나와 무관한 사건이 되어왔다. 근래 들어 죽음준비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죽음준비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음의 준비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남길 유언장을 미리 써보는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몇 줄이라도 직접 쓰다보면 가까운 이들과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깊은 심회에 젖기도 한다. 몇 년마다 주기를 정해두고 유언장을 써보노라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고, 평소 느끼지 못했던 나의 문제를 성찰하면서 유언장의 내용도 조금씩 바뀌게 된다.

두 번째는 물질적 측면의 준비로, 내가 지닌 재산과 물건을 어떻게 정리하고 나눌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상속과 기부는 미리 현명하게 정리해둠으로써 사후 가족 간의 갈등을 막고 보시의 기쁨과 공덕을 쌓을 수 있다. 그 외의 물건들을 누구와 나눌 것인지 물목을 작성해보는 이들도 많은데, 이러한 행위를 하면서 의외의 행복감에 젖게 된다고 한다.

세 번째는 의례적 측면의 준비이다. 노인이 되면 자연스레 영정사진을 찍어두고 식구들과 장례방식을 의논하지만, 사후의례는 나이와 무관하게 평소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나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렀으면 하는지, 화장ㆍ매장에 대한 선택, 화장을 한다면 유골을 남길지 산골을 할지 등에 대해 자신의 의지로 정하는 것이다. 특히 우울하고 슬픈 천편일률의 장례식에서 벗어나, 나의 이별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내 삶을 함께 추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방법 또한 스스로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네 번째는 의료적ㆍ제도적 측면의 준비이다. 혹시 자신이 치료가 아닌 무의미한 연명의 처지에 놓였을 경우를 생각해, 생전에 미리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이와 더불어 장기기증은 생사의 기로에 헤매는 이들과 생명을 나누는, 무엇보다 값진 죽음준비라 하겠다.

스스로 주인공 되는 죽음

한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탄생과 죽음의 의례는 모두 주인공이 직접 주관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죽음의례를 미리 치르는 일련의 문화가 전승되어 왔다. 이는 망자를 위한 의례를 산 자에게 적용하여 치르는 것으로 불교의 ‘생전예수재’와 무속의 ‘산 오구굿’을 꼽을 수 있다.

생전예수재는 천도재를, 산 오구굿은 넋굿인 오구굿을 살아있을 때 미리 치르는 것이다. 예수재와 오구굿은 고인의 몸을 떠나보내는 장례를 마친 다음, 영혼을 떠나보낼 때 행하는 의례들로 불교와 무속의 상례에 해당한다. 따라서 망혼을 좋은 내세로 천도하는 의례를 미리 행하고 공덕을 쌓음으로써 사후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후의 몸을 대상으로 한 장례를 살아있을 때 치르는 ‘생전장례’도 있다. 생전장례는 내세의 문제와 무관하게, 자신의 죽음의례를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주관함으로써 죽음을 주체적으로 맞고자 하는 뜻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로 1961년 내소사 해안(海眼) 스님은 환갑이 되던 해 제자들에게 상여를 매게 하고 자신의 장례를 치렀다.

당시 내소사 지장암에서 출발한 꽃상여가 일주문을 돌아 부도전에 이르자, 해안 스님은 상여 밖으로 나와 “대나무 매듭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육십 평생을 매듭짓겠습니다. 이제 시시비비를 가리며 지냈던 모든 일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생전장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동시에, 대중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널리 일깨운 것이다.

이후 해안 스님이 입적한 지 40년이 되던 2014년에 제자 동명 스님이 이를 재현하였다. 사미 시절에 스승의 생전장례를 지켜본 스님은 자신이 주인공 되어 당시의 장소와 시간과 상여의 모습 그대로 생전장례를 치른 것이다. 스님은 생전장례를 재현하면서, 스승이 생전에 자신의 장례를 치른 것은 생사의 거리낌 없이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뜻임을 일깨웠다.

해안 스님이 생전장례를 환갑에 치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에는 육십갑자를 다시 맞는 환갑(還甲)을 삶의 일단락으로 보았다. 따라서 환갑잔치를 ‘산 제사’라 부르고, 이때의 주인공을 ‘산 조상’이라 부르는 풍습이 있었다. 환갑을 축하의 의미로만 여기지 않고 근신하며 신중하게 대처한 기록이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가하면, ‘환갑을 챙기면 좋지 않다’고 보아 미리 환갑잔치를 하는 풍습도 한편에서 전승되어 왔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에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는 의미가 특히 컸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환갑은 일생의 중요한 시점이며, 삶의 한 고비를 넘어서는 시점이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공연히 생겨난 게 아니라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나서 이때부터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도 환갑이 지나면 사주팔자의 괘가 나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사주팔자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시점인 셈이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죽음. 이는 삶이 자신의 것이었듯 삶의 마지막에 있는 죽음 또한 온전히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죽음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셈이다. 죽음을 삶 속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옛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삶을 바꾸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지혜롭게 터득했고, 스스로 죽음의 주인공이 되었던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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