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생각마당(258호)

들고양이와의 인연

우리는 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선상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좋은 인연도 만남과 동시에 언젠가의 이별이 약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날 땐 헤어지는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의 아픔보다 만나는 기쁨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여덟 자식을 길렀지만 세상살이 순리를 따라 모두 분가해 보내고 오래전부터 혼자서 사신다. 인적조차 드문 산골마을이라 너무 조용하고 적적하니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우라고 권해도 거절하신다. 쇠잔해진 당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다며 적적한 생활에 적응하신 듯 사시는 어머니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도둑고양이다.

다른 놈들은 먹이를 찾아 살금살금 다니다가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달아나 버리는데 요놈은 일부러 어머니 곁을 스쳐 다니며 ‘이애옹 이애옹’ 먹을 것 좀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극도로 기갈이 들어 사람을 경계할 힘조차 없었을까? 아니면 굶주림을 참다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에게 사정을 한 것일까?

처음엔 가엾은 생각에 한두 끼 얻어먹으면 도둑고양이의 본성으로 돌아가 버릴 거라 여기며 밥을 주었다. 그런데 놈은 아예 눌러 살 심산이가 보다. 밥 때가 되면 이 집의 식솔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창문을 긁어대며 애원하는 소리를 낸다. 어머니는 소일거리라도 생긴 듯 정성들여 고양이를 거두었다. 차차 녀석의 털에 윤기가 흐르고 살이 통통히 올라갔다.

녀석은 거두어주는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양 어머니가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서 좌로 굴렀다 우로 굴렀다 반복하며 재주를 부린다. “요놈 봐라!” 어머니는 마치 손주의 재롱이라도 보는 것처럼 근심없이 깔깔깔 웃으셨다.

요즘은 세상살이 변화에 발맞추듯이 너도 나도 개인주의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도 성장하면 뿔뿔이 제 갈 곳으로 떠나가고 노인들은 마음을 풀어놓고 정을 나누고 늙은 몸을 의지할 사람이 거의 없다. 외롭고 쓸쓸하다 못해 온종일 벙어리처럼 우두커니 살아간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꾸며서 안고 다니며 마치 아기를 보살피듯 쓰다듬거나 아들이니 딸이니 하는 사람들을, 예전엔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고양이란 놈이 오고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요즘처럼 정이 고픈 세상에 말 못하는 동물도 사람의 마른 마음을 적셔줄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고양이가 어머니의 말동무 같았다.

그렇게 놈과 정이 두터워져 가던 어느 날, 밥을 주려고 불러도 불러도 기척이 없다. 도둑고양이의 본성으로 돌아가 버렸나?! 불길한 생각이 들어 찾아다니다 헛간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불러도 건드려 봐도 축 늘어진 몸으로 반응이 없다.

“어머니! 고양이 갔어요, 못 먹을 걸 먹었나 봐요.”

“에이구 지랄. 묻어 주어라.”

“다시는 고양이랑 사귀지 말아요. 안 사귀었으면 이렇게 서운한 일 없었을 것 아녀요.”

“내가 먼저 손 내민 거 아녀. 지가 먼저 사정했지…….”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꽃 하나가 쓸쓸히 떨어졌다.

고양이야. 너는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어서 찾아와 잠시 웃음을 주고 떠나갔니? 부디 다음 생에서는 오래도록 귀여움 받을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하거라.

김점례 / 경기 군포시 금정동

 

나에게 찾아온 아기에게

2016년 8월 어느 날. 새 생명이 찾아온 것을 느꼈다. 미루다 시간을 내어 병원을 찾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내내 긴장됐다. ‘정말 맞나?’, ‘내가 엄마가 되는 게 사실일까?’

남편과 함께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검사를 했다. 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말씀하셨다. “축하합니다. 임신 6주차예요.”

순간 멍해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엄마가 되다니. 배를 한번 쓰다듬어 봤다. 아침에 만졌을 때와 다른 느낌이다. 이 속에 새 생명이 들어와 있다니.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을 알렸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고, 몸조심 잘 하라고 걱정을 해줬다. 그제야 내 뱃속에 새 생명이 자리잡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기를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열 달이 지난 후 세상에 나오는 아기를 많이 예뻐해주고 사랑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로 온 아가야. 아직 많이 모르고, 부족한 새내기 엄마 아빠지만,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 우리 가족 앞으로 행복하자.’

기하나 /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악의와 호의는 한 길에 있다

5월 말 내게 큰 사건이 일어났다. 상대는 평소 가깝게 지냈던 직장상사. 그는 나방을 한순간에 태우는 불길 같은 악의를 내뿜었다. 그로인해 한 달 동안 입원했다. 소심했기에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마음의 문도 닫았다. 그 와중에도 조금은 기대했다. 한순간의 치기이며, 곧 잘못임을 시인하고 다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난 사회의 잔혹성을 봐야했다.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조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해타산적인지. 마음은 더욱 아팠고, 악몽과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살아온 인연들이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찾아왔고, 연락을 해왔다. 책을 선물했고,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호의도 의심했다. 마음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는 아이마냥 깨금발로 창밖을 내다볼 뿐.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따듯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후에도 남아있던 답답함이 어느 순간 눈 녹듯 녹아내렸다. 사람들과 얘기하고, 그냥 웃는 그 순간에.

누군가 말했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너와 인연이 아니고 맞지 않을 뿐이다. 그런 인연에 신경 쓰고 아파하지 마라. 지금 당장 문 밖을 나가도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런 말들이 큰 도움이 됐다. 퇴원하는 날 회사를 찾아갔다. 혹시 모를 기대를 품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내부 일로 경찰까지 불러야 했냐?’며 죄인 취급을 당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입장차가 크다는 걸 느꼈고, 인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사직서를 냈다. 회사는 괘씸했는지 두 달이 넘어서야 사직 처리를 해줬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잘 한건 아닐지 모른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나이 서른 먹고 백수가 된 것 말이다. 그러나 잘 살려고 한 결정이다. 그 이유 하나면 되지 않을까? 이번 일로 손해를 많이 봤다. 금전적인 부분부터 심신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 일을 겪고 마음의 방이 조금은 커진 것 같다.

호의를 품은 사람도 악의를 품은 사람도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어두운 심해에 가라앉아 있을 때 꺼내준 사람들 덕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 호의를 누군가에게 또 다른 호의로 보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문세윤 / 충남 부여군 규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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