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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경전 한 구절(258호)
  • 글 : 광도 스님 금강대 교수
  • 승인 2016.10.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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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옷 입고 여래의 방 들어가기

<법화경(法華經)> 제14 ‘안락행품’은 안락행(安樂行)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멸도한 후 말법 가운데 <법화경>을 설하고자 하거든 응당 안락행에 머물러야 하느니라(如來滅後 於末法中 欲說是經 應住安樂行)”고 하셨다. 안락은 편안하고 즐거운 것으로 곧 열반을 의미한다. 안락행은 부처님의 자리인 열반으로 가는 행으로 이것은 곧 여래행(如來行)이라고도 한다. 여래행을 함으로써 여래가 된다. 다시 말해 안락행을 함으로써 안락에 든다. 제10 ‘법사품(法師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이에 4중을 위해 널리 <법화경>을 설해야 하느니라. 여래의 방은 모든 중생에 대한 대자비의 마음이 이것이니라. 여래의 옷은 유화인욕의 마음이 이것이니라. 여래의 자리는 모든 법이 공하므로 여기에 안주하는 것이니라.”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방에 들어가며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법화의 수행자는 이러한 여래행을 해야 한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즐거운 경지
천태대사는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 “여래의 옷을 입으므로 법신이 편안하고, 여래의 방에 들어가므로 해탈의 마음이 즐거우며, 여래의 자리에 앉으므로 반야로써 길을 나아갈 수 있다(著如來衣 則法身安 入如來室 故解脫心樂 坐如來座 故般若導行進)”고 하였다. 여래의 옷을 입는 것은 법신이 편안한 것으로 ‘안(安)’을 의미하며, 여래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해탈의 마음이 즐거운 것으로 ‘락(樂)’을 의미하며, 여래의 자리에 앉는 것은 반야로써 길을 나아가는 것으로 ‘행(行)’을 의미한다. 안락행은 법신행(法身行)·해탈행(解脫行)·반야행(般若行)을 의미하며 이러한 안락행으로 법신·해탈·반야의 3덕을 이룰 수 있다.

제14 ‘안락행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신·구·의·서원의 네 가지로 안락행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첫 번째 신안락행은 행처와 근처가 있다. 행처는 인욕에 머물러[住忍辱] ‘안’을 이루고, 사납지 않아서[不卒暴] ‘락’을 이루고, 모든 것을 관하여[觀諸法] ‘행’을 이루는 것이다. 근처는 호세가·외도·험한 게임을 하는 자·도살자·성문과 연각·욕상(欲想)·불남(不男)·위해(危害)·기혐(譏嫌)·축양(畜養) 등 10가지를 멀리하여 계를 지키고, 앉아서 수행하는 것을 가까이 하여 선정에 들며, 모든 것이 실상임을 관하여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정혜(戒定慧)를 닦는 것이다.

두 번째 구안락행은 입으로 닦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경전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다른 법사를 가볍게 여기는 말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또한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나쁜 말을 하지 않아서 ‘안’을 이루고, 묘법을 설하여 ‘락’을 이루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하여 ‘행’을 이룬다.

몸과 말과 생각을 바르게
세 번째 의안락행은 마음으로 닦는 것이다. 질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남을 가볍게 여기고 욕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고 경쟁하는 마음도 내서는 안 된다.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내며, 좋은 도반을 얻어서 함께 공부한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또한 고통 속에 있는 중생에게는 대비(大悲)의 마음을 내고 여래에 대해서는 자부(慈父)의 마음을 내어야 한다. 나쁜 마음을 내지 않아서 ‘안’을 이루고, 평등한 마음을 내어서 ‘락’을 이루고, 대비(大悲)와 자부(慈父)의 마음을 내어서 ‘행’을 이룬다.

네 번째 서원안락행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법화경>을 신해하지 못하는 중생들이 있을지라도 내가 무상보리를 이루어서 신통력과 지혜력으로 그들을 이끌어 불법 가운데 머물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서원을 세워서 <법화경>을 설하면 과실이 없다. 서원으로 마음을 제어하여 게으르지 않으므로 해태(懈怠)의 과실이 없어서 ‘안’을 이루고, 대서원을 세우므로 진구(瞋垢)의 과실이 없어서 ‘락’을 이루고, 중생이 바른 도에서 벗어났음을 알고 있으므로 첨곡(諂曲)의 과실이 없어서 ‘행’을 이룬다.

광도 스님
구인사로 출가하여 구인사 불교전문 강원을 수료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교학을 전공해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동국대 강사를 지냈다. 현재 금강승가대 강사와 금강대 교수이며 오산 황덕사 주지다.

글 : 광도 스님 금강대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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