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금강 특집
손글씨와 신앙
  • 글·사진 :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
  • 승인 2016.10.26 15:19
  • 댓글 0

사경, 경전의 확산 통해 종교를 지탱, 발전시킨 거룩한 행위

김경호 원장이 사경을 하는 모습.

문화의 다양한 전개와 발전, 문명 발달의 뿌리에는 지식의 집적(集積)과 전파가 있었다. 그리고 지식의 집적과 전파는 문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는 ‘문화와 문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통·폐합, 혹은 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분포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문자에 내재된 성격에 수반되는 여러 특성들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의 쓰기 활동은 문자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텍스트 내용에 따른 의미가 부여되면서 여러 형식으로 발전하여 왔다. 이렇게 정립된 의미와 형식에 기능성과 예술성이 부가되면서 다양한 서체가 개발되어 구분, 사용되기에 이른다.

목판경을 만들기 전 지본묵서 사경을 '판하본'이라 한다. 사진은 고려시대 판하본 <화엄경> 권 제39-9.

독일의 소설가 오토 루트비히(1813~1865)는 <쓰기의 역사>에서 쓰기 관념을 이해하는 열쇠로 3가지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사본 제작을 위한 쓰기’로 책을 소유하거나 지식의 전파를 위한 수요에 따른 공급 측면에서의 단순한 전사(轉寫), 즉 베껴쓰기를 뜻한다. 둘째는 ‘텍스트 구조의 시각화로서의 쓰기’로 텍스트 지면 공간의 구성 및 중요도에 따른 서체와 글자 크기의 선택 및 단락의 구성 등을 통한 이미지의 시각화를 통한 기억의 효율화를 의미한다. 셋째는 ‘종교적 관념의 쓰기’로 종교 성전을 서사하는 행위 자체가 그 어느 것보다 가치 있고 성스러운 기도와 수행이 됨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종교 자체와 동일시되기까지 한다. 이는 동·서양 모든 종교 성전의 사경이 동일하게 지닌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이러한 분석은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에 기인한 것으로 ‘쓰기’를 정의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필자는 이 중 셋째 항목에 중점을 두고 사경과 관련지어 종합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국보 제196호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신라 755년.

사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조의 말씀을 문자로 기록한 종교 성전을 옮겨 쓰는 행위이고, 그 과정은 각 종교가 추구하는 실천수행의 한 과정으로 존숭(尊崇)되어 왔다. 비록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지도자의 호불호에 따라 부침(浮沈)과 영욕(榮辱)이 있었을지라도. 이러한 종교 성전 쓰기(사경)가 중요시 된 이유는 아무래도 ‘느림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느림의 미학은 모든 종교의 바탕인 묵상ㆍ명상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경의 1차적인 목적은 초기의 경우 경전의 광선유포(廣宣流布)에 있었다. 교리가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 했던 것이다. 경전의 전파는 곧 교리의 전파요, 교육의 기초다. 그러한 까닭에 종교가 전파되면 가장 먼저 사경이 행해졌다. 경전(사경)을 통한 교리의 전파와 그에 수반되는 교육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경은 종교를 지탱하고 확산ㆍ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성스러운 행위이고, 이러한 성스러운 종교적 실천행위는 복전을 쌓고 공덕을 쌓는 거룩한 행위이다. 수많은 불교 경전에서 사경의 공덕을 가장 먼저 거론하고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경은 이렇게 큰 공덕을 쌓는 성스러운 수행이기에 어떠한 몸가짐과 마음가짐, 어떠한 형식과 기법으로 제작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과 기능성 및 그에 수반되는 효과 등에 대한 이론과 실천체계의 정립이 요구된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성전의 내용에 따른 형식과 체재가 성립되고 각각의 요소에 상징과 가치를 부여하면서 최상의 장엄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도구와 재료에도 가치와 상징성이 부여되면서 최상의 발전된 양식으로 정립된다. 여기에 더하여 사경을 할 때의 정결한 몸가짐과 성전의 내용, 즉 성전에 담긴 성인의 가르침을 존숭하는 지극하고 순일한 신심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심신 정화의 과정을 거쳐 여법하게 장엄한 사경은 부처의 진신사리와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는 법사리로 존숭받게 된다. 그 바탕에는 진리 추구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자리한다.

보물 제740호 감지은니 <보살선계경> 권 제8. 고려 1280년.

사경을 함에 있어서 첫 번째 덕목은 지극정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진리에 대한 경외심과 진리를 설하심으로써 우리를 차안에서 피안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성인, 즉 스승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경외심은 사경의 과정을 청정삼매로 이끈다. 즉 인간의 가장 고귀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법사리는 인간이 만든 최상의 예술작품이 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쓰기의 관습은 오늘날 일정 부분 자판을 두드리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쓰는 행위는 여전히 우리 곁에 늘 함께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판 두드리기는 높고 깊은 정신성을 결여한 채 단순히 텍스트의 내용을 옮겨 놓는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가 진리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한, 손으로 쓰는 행위는 영원히 존속할 수밖에 없다. 물질문명이 첨단을 구가하는 초스피드 시대로 진입할수록 오히려 느긋한 느림의 미학의 정수인 명상이 교양인들에게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획일화된 컴퓨터 글씨를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향기를 보유한 손글씨가 더욱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 정점에 사경이 있다.

 

김경호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0년 고용노동부 전통사경 기능전승자로 지정됐다. 한국사경연구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제1회 불교사경대회 대상, 제42회 현대시조 신인상, 미국 뉴욕시 의회 표창, 뉴욕시 감사원장 표창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글·사진 :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사진 :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