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송 공덕으로 전생의 인연 깨달아

중국 수나라 때 최안무는 〈법화경>을 끼고 살았습니다. 겨우 걸음걸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법화경〉을 구해서 독송을 했던 것이지요. 그의 부모님도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린 아이가 어떻게 〈법화경〉을 구했으며, 그 어려운 글자를 읽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너 이 경을 어디서 구했느냐?”

“이 글자를 누가 가르쳐주든?”

부모님이 걱정되어 그렇게 물어도 안무는 빙긋 웃을 뿐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부모는 안무 몰래 〈법화경〉을 창고에 숨겨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았는지, 다른 데서 구입을 했는지 안무는 아랑곳 않고 〈법화경〉을 끼고 다녔습니다. 청년으로 장성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법화경〉만을 외웠습니다.

“얘야, 그렇게 불도처럼 불경만 외우면 장차 어찌 벼슬길에 오르려느냐?”

“어머니, 아버지 소원이시니 제가 이제 벼슬길에 오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집을 떠난 안무는 과거시험에 합격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부모의 기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랏일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불경을 손에서 내려놓겠지?”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벼슬을 한 것은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지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제일의 묘약은 이 세상에서 〈법화경〉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릴 때 저 몰래 숨겨두었던 〈법화경〉을 이제 제게 주시지요?”

“하하하!”

그제야 아버지도 박수를 치며 〈법화경〉을 숨긴 창고로 갔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수천 권의 책이 먼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너도 어지간했지만, 우리도 어지간했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닙니다. 두 분이 이 경을 숨기셨기에 더 기를 쓰고 독송을 하였습니다. 그로하여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는 안무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우리를 용서하고, 이제 네 마음대로 불사를 하려무나.” “아버님, 우선 이 경을 마을 사람들에게 돌려주시지요.”

그리고 안무는 위주자사가 되어 임지로 떠났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독송을 하고, 사경과 더불어 좌선까지 병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등잔에 불을 밝히고 좌선을 할 때였습니다. 그의 눈앞에 낯익은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영문을 알 수 없었지요.

다음날.

안무는 시종 두 명만을 데리고 관내를 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사가 호위관 없이 관내를 순시한다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지요. 그런데 순시를 하는 것도 두서가 없었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순시가 아니라 지난 번 좌선 때 본 그 마을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후, 여기도 아니다.”

“여기도 아니다.”

안무와 시종 둘이 한 달 이상 그 마을을 찾고 있을 때, 마침내 안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분명 여기다. 저 해지는 저녁, 저 냇가와 나무들, 지금도 우리 집은 그대로구나.”

당연히 시종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조금 있으면 다 알게 될게다. 내가 옛날 이 고을에서 살았다. 지금도 그 때 살던 집을 알고 있다.”

시종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옛 고향집이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이곳저곳을 헤매며 찾았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사였지요.

어쨌든 안무는 말을 타고 거리를 꼬불꼬불 돌아 한 집에 이르러 시종더러 문을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누구십니까?”

참으로 많이 늙은 주인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도랑을 이룬 주름살, 하얗게 서리가 내린 머리칼, 안무는 그런 주인장을 쳐다보다가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두 눈에는 한가득 눈물이 고였지요.

“왜 우리 집 문을 두드리셨습니까?”

늙은 주인장은 다시 물었습니다.

안무는 목이 메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억지로 말했습니다.

“그 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 올시다.”

“이곳에 살다니요?”

마루에 걸터앉은 안무는 다시 그 늙은 주인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참으로 많이 늙으셨소.”

주인장도 안무를 쳐다보았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자사님께서 저를 어찌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인데요.”

주인장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 집은 제가 조상 대대로 사는 집인데 자사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안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제 전생은 노인장의 아내였습니다.”

놀란 주인장은 빙긋 웃었습니다. 그것은 시종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사가 〈법화경〉에 심취해서 나쁠 것은 없으나,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에 실망을 하였지요. 그들은 크게 웃지도 못하고 그저 안무를 무심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주인장은 빈 말 삼아 다시 물었습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안무는 슬며시 눈을 감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옛날에 〈법화경〉을 독송했는데 그 책과 금비녀 5개를 동쪽 벽 땅에서 6, 7자 쯤 되는 곳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벽의 두두룩한 곳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 제 7권 뒷장이 불에 타 글자가 없어져서 잃어버렸습니다.”

밑져야 본전.

자사인 안무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주인과 시종들은 벽 위 두두룩한 곳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파지 않아 과연 뒷장이 탄 〈법화경〉과 금비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무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법화경〉을 향해 경배하였습니다.

모든 상황을 짐작한 주인장은 안무를 붙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죽은 아내는 늘 이 〈법화경〉을 읽었고, 이 금비녀도 그 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안무가 말했습니다.

“생로병사는 인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법, 내 한 때 나의 남편이었던 그대를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내 아내는 좋은 아내였소.”

“그대도 좋은 남편이었소.”

안무와 주인장은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만난 부부처럼 지난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그리고 똑같이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 한껏 웃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맞잡은 손을 놓고 다시 떠나는 길.

“불에 탄 〈법화경〉은 여기 남겨두고 가시지요?”

주인장이 흐린 눈가를 닦으며 말했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라탔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두 사람 다 담담하게 묻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또 나의 전전생이 생각나면 어쩌겠습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인생, 그 덧없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그 〈법화경〉 속에 있습니다. 부디 〈법화경〉의 글자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소서.”

말을 마친 안무는 곧바로 말을 달려 바람같이 사라졌습니다. 한 때의 인연으로 부부가 되어 살다가, 다시 후생에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나는 영화 같은 삶, 과연 그 때 남편, 아니면 아내를 어떻게 대하시렵니까? 저는 미안해서 통곡을 할 것 같습니다. 불자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