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 속에서도
각자 자리에서
여여함 실천하자

종종 학생들과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는 산보를 한다. 멀리 나들이 가는 번거로움 없이 학교 주변 성북동과 삼청동 대사관로를 따라 계절의 변화를 나눈다. 높다란 저택의 담벼락에 붉게 물든 담쟁이와 야트막한 담장에 가지를 걸치고 알알이 붉어진 대추를 보며 계절을 고스란히 맞이한다. 자연이 들려주는 무정설법은 시공간이 없는 법계의 초탈한 여유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학의 학생들이 부지런히 준비한 학위논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함께한 노정과 분투를 떠올린다. 마치 한차례 급류가 쓸고 간 듯 마음은 여유롭고 한가하다.

내게 주어진 여여(如如)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최근 3년째 설악산 토굴에서 정진하는 한 수행자를 떠올려본다. 탈속한 수행자의 면모는 현실과 동떨어진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정진임에 분명하다. 그는 3년째 깊은 산중 토굴에서 홀로 살며 텃밭을 일구고 궁극의 수행인 선(禪)을 닦고 있다. 잠시 문안을 확인하는 심마니를 통해 근황을 전해주었는데 최근 3년간의 정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 수행자를 따르는 도반과 후학들을 잠깐 만난 자리에서 ‘과정을 매순간 알아차림’ 할 것을 강조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근처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며 수상집 〈월든〉을 저술한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오버랩 됐다. 수상집 〈월든〉은 저자가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 남짓 경험한 체험을 담은 소로의 정신적 자서전이며 미국 대학생을 비롯해 영미문화권에서 사랑받는 명저이다. 소로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며, 자연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생태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자신을 여실히 밝히기 위함일 것이라고 본다. ‘태양은 홀로 있어도 빛난다.’라는 대목에서 홀로 있음의 당당함과 여럿이 함께 때로는 홀로 정진하는 게 삶의 파도타기가 아닌가라는 지혜를 확인한다.

또한 여여(如如)는 두려움 없는 삶의 자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차별 없는 상태다. 지금 여기, 무분별지의 마음이다. 얼마 전 국내도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실감하며 국민들이 불안해했다. 만일에 올 수도 있는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감에 흔들릴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여여함을 실천하며 좋겠다. 지진 피해가 잦은 일본의 경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생존배낭을 준비해 놓는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필수품을 배낭에 챙겨놓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부처님 법을 따르는 불제자로서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생존배낭보다 더 중요한 ‘알아차림’과 언제 어디서나 깨어서 순간순간을 여실히 보고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감사하는 여여(如如)함이길 소망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서로의 따뜻함이 필요하다. 도반과 나누는 정담도 좋고, 스치는 이웃과 주고받는 친절한 인사말도 좋다. 가장 쉬운 보살행은 친절과 미소가 아닌가 싶다. 여여한 알아차림에서 넉넉한 미소와 친절도 한 몫을 담당할 것이다. 팍팍한 일상의 중압감에 힘겨워하는 이에게 전해지는 미소야말로 위로의 명약이며 따뜻한 친절 역시 삶의 용기를 선사하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하루하루 일상에서 친절과 미소는 두려움 없는 정진의 또 다른 면모일 것이다.

가을의 깊은 여유 속에 낙엽 타는 냄새가 풍기며 포근한 고향집 같은 향기가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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