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방한 또 다시 무산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며 테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또 다시 무산됐다.

정부 소식통은 최근 “당국이 한중관계와 전례 등을 검토한 결과 달라이 라마의 방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이로서 지난 5월16일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처음으로 정식 신청했던 달라이 라마의 한국행 비자 발급은 ‘불가'로 결론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의 한국 방문은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이번에는 탐색전 성격의 방한 시도였던 과거의 예와는 달리 정식 비자 신청까지 했던 터라서 불교계는 물론 일반에게 까지도 실망이 크다.

그의 방한 목적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각각 개최하는 세계 종교지도자대회(6월7~14일)와 노벨평화상수상자광주정상회의(6월15~17일) 참가였다. 종교지도자대회에는 20여 개국의 종교지도자 5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고 광주정상회의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 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대통령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 20여 명이 참석한다. 달라이 라마도 역시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의 한 명이다. 따라서 그의 방한 목적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명분이 있고 누가 봐도 험잡을 데 없는 떳떳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비자 발급 ‘불가'이유는 쾌쾌 묵은 ‘중국의 반대를 고려한 방침'일 뿐이다. 참여 정부가 그처럼 강조하는 ‘자주 외교'의  진면목이란게 겨우 이건가. 대미 자주 외교를 부르짖다가 자칫 반미 성향으로까지 비쳐 파열음을 내고 있는 반면 대중 외교는 친중국으로 경도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잠과 죽음은 얼마나 다른 걸까요.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1000년 전의 인류 영혼과 1000년 뒤의 인류 영혼은 서로 다른 걸까요.”

달라이 라마의 법문은 이처럼 힘이 있고 마음을 사로 잡는다. 어려운 한문 불경 구절을 절대 인용하지 않는다. 세계 각지에서 그의 망명처인 인도 다람살라로 찾아온 불자들에게 짧으면서도 쉬운 영어로 윤회를 설명하고 심령의 공령(空靈)을 일깨워 준다. 그의 법문은 올해 71세인 그가 히말라야 설산처럼 높은 경지의 불도(佛道)에 다달았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찾아온 한국 스님들에게 “날씨가 추운데 왜 깎은 머리를 그냥 드러내 놓고 있느냐, 나를 따라 하라”면서 가사 자락으로 머리를 덮고 쭈그려 앉은 자세로 법문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는 평등과 존중, 신뢰와 상호 이익의 원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신적 거인인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다. 그의 방한은 불교 포교 차원을 넘어서는 정신의 양식을 얻고 세계 보편의 윤리를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법하다.

정부 당국에 대한 이번 달라이 라마의 방한 허용 촉구는 그동안 여러번의 기자 회견과 청원서 등을 통해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김대중도서관은 기자 회견을 통해 그의 방한 허가를 촉구했고 강扁?목사(평화포럼 이사장) · 백도웅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 청화 스님(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등은 청와대에 청원서를 전달했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무산이 보여준 한국 외교의 허약함을 다시는 더 보고 싶지 않다.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 국민 모두가 고대하는 그의 방한이 여법하게 실현되길 기대한다.

금강불교 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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