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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불자를 위한 제언 ⑩ 누구와 사귈까?
  • 이미령/불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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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사귐은 수행의 대부분 이룬 것과 같아”

1. 사리불과 목련의 우정

붓다의 제자 가운데 지혜롭기로 으뜸가는 사리불존자에게는 늘 친구가 곁에 있었습니다. 신통제일로 칭송받는 목련존자이지요. 두 사람의 우정은 참 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같은 날에 출가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뿐만 아니라 나란히 함께 스승을 찾아 출가수행의 길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 산자야 벨라티풋타라는 사상가의 제자가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아침, 사리불이 탁발에 나선 앗사지 스님을 뵙고 그토록 찾던 진짜 스승인 붓다라는 존재를 알게 됩니다. 사리불은 가장 먼저 목련에게 달려갑니다. 낯빛이 환해진 사리불을 보자 목련은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 나섭니다. 두 사람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수행자들과 함께 나란히 붓다의 제자가 되었지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이 말은 마음이 허전하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기대지 말고, 진정 마음 맞는 벗을 찾지 못했거든 홀로 제 길을 걸어가라는 뜻입니다. 사리불은 목련이, 목련에게는 사리불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혼자서 가지 않았습니다. 늘 곁에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함께 하던 두 사람도 헤어질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목련존자가 탁발을 나갔다가 외도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서 목숨만 간신히 붙은 채 돌아옵니다. 이미 나이가 들을 대로 들은 목련존자이기에 이 일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빤히 눈앞에서 오랜 친구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사리불존자는 뜻밖의 말을 꺼냅니다. 자신도 생을 마칠 때가 멀지 않았으니 고향의 어머님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서 반열반하겠다는 것이지요.

이런저런 정황을 살펴보자면 사리불 존자 역시 몸에 병이 깊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자였던 그는 자신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아라한이기에 다음 생에 만나자는 인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목련존자는 절에 남아서 고요히 삶을 마치고, 그 시간에 사리불은 고향집 자기 방에서 어머니를 교화한 뒤 삶의 마지막 자락을 드리웁니다.

참 부럽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들으면서 붓다 곁을 평생 지켰을 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호흡했던 친구가 있었으니까요.

문득 중국 작가 루쉰의 말이 생각납니다.

살면서 벗 하나를 얻는다면 무엇을 더 바라리(人生得一知己足矣).
이 세상 마땅히 같은 마음을 품고 바라보아야 하리(斯世當以同懷視之).

윤회의 마지막을 가장 좋은 친구와 가장 훌륭한 스승과 함께 하였으니 사리불과 목련 두 사람의 인생이야말로 복된 삶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향내음과 비린내

루쉰 뿐만이 아닙니다. 경전에는 친구에 관해서 아주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난다 존자와 붓다의 대화입니다.

“세존이시여, 좋은 친구를 두는 것만으로도 수행의 절반은 이미 이룬 것 같습니다.”

아난다의 말에 붓다는 이렇게 답하시지요.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를 두는 일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수행의 대부분을 이룬 것이다.”

이 쯤 되면 친구 한 사람 제대로 사귀는 것이 그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늘 곁에 있는 사람이기에 아는 새 모르는 새 그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직 마음공부에 뜻을 굳히지 않은 이들을 있었습니다. 붓다는 그들을 데리고 길을 가시다 구겨진 종이를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집어 들게 한 뒤에 묻습니다.

“무엇에 쓰였던 종이인가?”

“아마 향을 쌌던 종이가 아닐까 합니다. 버려진 지는 제법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종이에 향내가 아주 진하게 납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다 버려진 새끼줄 한 토막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저것을 집어 들어라. 그것은 대체 어디에 쓰인 새끼줄인가?”

“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생선을 묶었던 줄이 아닐까 합니다.”

붓다는 제자들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현명한 이를 가까이 하면 진리로 나아가려는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자와 벗하면 재앙이 찾아오니, 종이가 향을 가까이 했기에 향내가 나고, 새끼줄이 생선을 묶었기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조금 조금씩 물들어 친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깨닫지 못한다.”

〈법구비유경〉 제1권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향 싼 종이, 생선을 묶은 새끼줄’ 일화입니다. 향내음에 젖어들게 해주는 현명한 이를 벗으로 삼을 것이냐, 사람들이 꺼리는 비린내를 배게 하는 어리석은 자를 벗으로 삼을 것이냐는 그 사람의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브리야 사바랭 지음, 홍서연 옮김, 〈미식예찬〉 19쪽)라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빗대어 우리는 이렇게 멋진 잠언 하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대 곁에 누가 있는지를 말해보라. 그러면 그대가 어떤 향기를 풍기는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동서양 고전에서도 다르지 않으니 〈명심보감〉에서는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말하기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길을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걸으면 옷이 젖지는 않지만 어느 사이 축축해지는 것과 같고, 학식 없는 사람과 함께 길을 가면 마치 변소에 앉아 있으면 옷은 더러워지지 않지만 어느 사이 악취가 배는 것과 같다.”라고까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피해야 할 벗

그런데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면 어떤 이를 벗 삼지 말아야 할까도 생각해봐야합니다.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경인 〈육방예경〉에는 “벗인 척 하면서 다가오지만 진실한 벗이 아닌 자”를 이렇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
둘째, 말만 앞세우는 사람.
셋째,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넷째, 나쁜 짓을 할 때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①친구 집에 빈손으로 가서는 친구의 물건들을 부러워하고 칭찬하면서 그것을 자기에게 주기를 바라는 자 ②적은 것을 친구에게 주고 그 대신 많은 것을 원하는 자 ③눈치 보이고 두려워서 친구를 위하여 희생하는 척하는 자 ④친구를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에게 봉사하는 자입니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에도 네 종류가 있는데, ①필요한 것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어제 왔으면 그걸 줬을 텐데, 그게 필요하면 어제 오지 왜 하필 오늘 왔어?”라고 말하는 자 ②“이 다음에 분명 여유가 생길 테니 그때 줄게.”라며 ‘다음에, 다음에’ 라고만 말하는 자 ③정작 친구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며 말만 번드레하게 하는 자 ④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구할 때 “마침 그게 망가졌네. 그래서 빌려줄 수 없어.”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에도 네 종류가 있는데, ①좋지 않은 일에는 동의하고 ②선한 일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③눈앞에서는 친구를 칭찬하지만 ④등 뒤에서는 비난하는 자입니다.

나쁜 짓을 할 때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에도 네 종류가 있으니, ①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술을 마실 때 ②때 아닌 때 거리를 배회할 때 ③구경거리만 찾아다닐 때 ④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도박이나 노름에 빠져 있을 때에 친구가 되어주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친구로 삼을 수 없으니 “현명한 사람은 험한 길을 피해 다니듯 이런 자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람을 가리지 말고 누구에게나 자비심을 품어야 하는 것이 불자가 아닌가요? 어찌 사람을 이렇게 가리고 차별하라고 하는가요?”

힘든 사람에게 기꺼이 품을 열어주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진 이를 가까이 하여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차별심이 더 커집니다. 힘든 사람을 만날 때 제 마음이 널뛰듯 변덕스러워질 테니 그게 오히려 자신과 남을 더 힘들게 하겠지요. 그러니 어느 때나 내 마음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4. 누구를 벗으로 삼아야 할까

우리는 대체로 나이가 같고, 환경이 비슷하고, 직업이나 취미가 같은 이를 벗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보자면 훌륭한 이, 어진 이, 학식이 높은 이를 벗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벗은 나를 조금 더 훌륭한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스승입니다. 불교에서는 선지식(kalyamitra)이란 단어에는 스승이란 뜻 말고도 ‘벗’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이를 벗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니까야에는 붓다가 이런 말씀까지 하십니다.

“그대들은 나 여래를 벗으로 삼아라.”

어찌 감히 붓다 같이 높고 높은 분을…이라며 망설이고 사양하시겠습니까? 하지만 붓다 스스로 자신을 벗으로 삼아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기꺼이 여러분의 친구 명단 가장 먼저 붓다를 올려두셔도 좋겠습니다.

배우려는 자세는 그 사람을 늙지 않게 합니다.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롤모델이 필요하고, 함께 연마할 동료가 필요합니다. 롤모델이 되어주고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이 선지식이고 벗입니다. 함께 늙어가면서도 늘 상대에게 배움을 안겨주는 사람. 인생을 살면서 이런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궁리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데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령/불교칼럼니스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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