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덩어리 꺼낸 후 마을 사람에 ‘법화경’ 돌려

거사 음명관은 단양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 스님이 되어 다른 행업은 없고 오직 〈법화경〉 한 부만을 죽도록 외웠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성취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그를 가르칠만한 스승도 없었고, 거처도 마땅치 않아 그만 환속하여 처자를 두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하던 〈법화경〉 독송도 그만 두게 되었지요.

“중이 농사를 지어?”

“그것뿐이야, 처자도 거느리잖아?”

음명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세속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일 년 열두 달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몸에는 헌 누더기를 벗을 날이 없었고,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습니다. 언제나 배가 고파 징징대는 자식과, 남의 집 품팔이로 밤낮없이 바쁜 아내를 바라보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순간, 문득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법화경〉의 구절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지. 내게는 〈법화경〉이 있었지.”

그는 그 후로 오직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슨 일을 하든지, 또는 잠깐 쉬는 시간이라도 입으로 항상 〈법화경〉을 가만가만 외웠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어렸던 아들도 성장하여 어엿한 청년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생활고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아들과 아내에게 미안하여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던 그 무렵.

어느 날 밤중에 문득 공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음명관!”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분명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음명관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말을 들어라.”

음명관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네가 〈법화경〉을 헛배웠구나!”

“아닙니다. 저는 오로지 〈법화경〉에만 의지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심하는 마음을 버려라.”

음명관은 정신이 번쩍 들어 그 자리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한 구절을 외웠습니다.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차차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옳지 못하면

그 마음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우리 속담에 ‘곯은 달걀 지고 성 밑으로 못 가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이 무너지면 달걀이 깨질까 무서워 상한 달걀을 지고도 성 밑으로 못 간다는 뜻이니, 무릇 모든 일에 너무 의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차차 그 쇠를 먹어버려 마음이 옳지 못하면 그 마음이 사람을 먹어버린다는 뜻이지요.

“아하, 네가 그래도 옳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였구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갸륵한 너에게 내가 황금덩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

그러나 음명관은 불보살님 누군가 자신을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목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습니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비록 가난하지만 노력하지 않은 재물은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는 다시 조용한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그 보배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마을 남쪽으로 나가면 커다란 밭이 있고 그 밭 동쪽으로 황련수라는 고목나무가 있지 않느냐? 지금 빨리 가서 그 나무 밑을 파면 커다란 금덩어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음명관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다시 그의 귓속을 울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차차 그 쇠를 먹어버린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자는 아들을 깨웠습니다.

“가난한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겼다. 어서 등불을 켜고 괭이와 가래를 가지고 밖으로 가자.”

하지만 아들은 영문을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때 없이 〈법화경〉만 외우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것이지요.

“아닌 밤중에 무엇을 하려고, 어디로 가자는 말씀입니까? 무슨 망령이나 생기지 않으셨나요?”

음명관은 빙긋 웃었습니다. 아들의 처지엔 충분히 그럴만했던 것이지요.

“얘야, 내가 오늘 밤에 아주 신명한 말씀을 들었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려무나.”

그러나 아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 혼자 가시지요? 제가 왜 필요합니까?”

“이 밤중에 늙은 나 혼자 어찌 땅을 파겠느냐? 넌 등불만 들고 있거라.”

도무지 영문을 모르지만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버지에게 아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부탁대로 괭이와 가래를 들고 마침내 황련수라는 나무 밑에 이르렀습니다.

등불을 나무 가지에 달아 놓고 부자가 협력하여 나무 근처를 한참 파보았으나 아무 흔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그만 갑시다. 남이 알게 되면 우리 부자를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응?”

“참다운 부처님 법을 수행한다는 분이…….”

음명관도 부끄러웠습니다. 혹시 주위의 이웃이 이 일을 알게 되면 한밤중에 잠자는 아들을 깨워 금덩어리를 찾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까봐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웃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

음명관도 아무런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아들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찌할까?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사이, 하늘에서 또 다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음명관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나무 옆으로 한자 가량만 더 파보아라!”

속된 말로 밑져야 본전, 그는 직접 괭이를 들었습니다. 아들도 마지못해 등불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러나 황금은커녕 커다란 돌이 있어 더 이상 땅을 파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부탁입니다. 그냥 가시지요?”

그러나 음명관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돌만 걷어보자.”

아들은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확신에 찬 말에 힘을 보탰습니다. 끙끙. 부자는 날이 환하게 밝을 때까지 땅을 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돌을 파낼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과연 황금덩어리가 나오는데, 당시 가격으로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부자가 그것을 짊어지고 돌아와서 가옥 전답을 엄청나게 장만하였습니다. 죽음보다 힘든 생활고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이웃 사람들의 눈초리가 이상했습니다. 그토록 가난하던 음명관이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으니까요.

어느 날 음명관은 〈법화경〉을 잔뜩 쌓아놓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 후,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

“우리 집이 오늘날 이와 같이 된 것은 내가 평생에 이 〈법화경〉을 항상 독송한 공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법화경〉 한 부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연히 음명관이 사는 마을에서는 〈법화경〉의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음명관처럼 부자가 되기 위해서 죽도록 〈법화경〉을 외웠겠지요.

그런데 사실 그 순간, 이미 재물이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그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과연 짧은 우리 인생에서 정말 큰 부자는 누구일까요? 모두 나름의 생각이 다를 테지만 진정한 부자는 어떤 귀한 재물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 그 마음 아닐까요? 기실 눈을 넓히고, 마음을 넓히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우리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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