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벗어나
마음 활짝 열면
하늘도, 산도 열린다

이육사(李陸史)는 마지막으로 남긴 〈광야〉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시의 첫 구절에서 ‘하늘이 처음 열렸다[開天]’는 표현으로 태초의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에 열일곱 번이나 투옥되면서도 끝까지 시로써 독립의지를 드러낸 그는 광복을 목전에 둔 1944년 감옥에서 숨졌지만, 그의 시 〈광야〉는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민족에게 하늘이 처음 열린 개천절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날이다. 어느 나라도 건국을 ‘하늘을 열었다’는 뜻으로 표현하지 못했으나, 백성들이 대대로 뿌리 내리고 살아갈 터전이기에 나라를 세운 것은 천지의 개벽과 다를 바 없다. 이육사의 시대와 그의 죽음을 생각해보면서 나라를 세운 것만큼 제대로 지켜나가는 일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음력 시월 3일로 제정된 개천절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고대 제천의식과 단군제사의 전통을 잇는 날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수확철인 시월을 상달이라 부르며 중요한 제사를 지냈고, 숫자 3을 길수로 신성하게 여겨왔다. 따라서 개천절은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등 고대 제천의식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민족의 명절에 ‘개천절’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1909년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羅喆)이다. 대종교에서는 시월 3일을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로 삼아 매년 개천절 기념행사를 지내왔는데,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족의식을 결집시키는 소중한 날로 여겨 국경일로 삼은 것이다. 광복 후에도 이를 계승해 국경일로 정하였고, 1949년에 날짜는 그대로 둔 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제천의식은 전통을 이어 음력 시월 3일에 마니산의 참성단 등에서 봉행되고 있다.

나라를 세운 것을 하늘을 여는 데 비유했다면, 불교에서는 절을 창건하는 것을 개산(開山)이라 하여 ‘산문(山門)을 열었다’고 표현한다. 절을 세우면서 산을 열었다고 하는 것은 자연 그대로의 산에 진리의 불을 밝히고 불교의 사상과 문화를 꽃피운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승려들이 귀국해 선종사찰을 창건함으로써 나말여초에 구산선문이 세워졌고, 의상대사와 그 제자들은 전국의 명산에 화엄십찰을 세워 진리의 불을 밝히고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그런가하면 출가 수행자의 산중생활이 단지 속세에서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일방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는 일[上求菩提]이요, 산을 내려가는 것은 중생을 보살피는 일[下化衆生]을 뜻하듯이, 그들에게 산은 불법을 펼치는 상징적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의 산중불교에는 자리이타의 법등을 밝혀온 대승불교의 전통과 특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도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상징적 산사로서 존재한다. 하나하나의 사찰이 번뇌의 세계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수미산으로서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공동체에서 사찰이 지닌 성격 또한 산중사찰과 다름없이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열고 산을 여는 것처럼 우주자연의 한 부분을 열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세상이 열림을 뜻한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하늘도 산도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을 감으면 우주자연의 어떠한 뜻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이기심에서 벗어나 마음을 활짝 열면 저마다의 하늘도 산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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