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문학 - 문학작품 속에 투영된 불의 의미
모닥불과 장작불
공동체의 본질에 비유해
집단무의식 탐구
불의 운명은 인간이 겪어 온 역사적 궤적에 비례한다. 문화는 인간의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그 본성이 문명사 위에 놓인다. 인류가 자연환경을 이용해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케 한 순간 이래 문화는 인간 삶의 존재론적 배경이 되어 왔다. 그런 맥락에서 불은 문화를 형성하는 시원적 계기인 동시에 핵심의 기제에 해당된다. 불은 인간에게 있어서 유적 본성을 실현하는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현상인 것이다.
희망과 불행의 아이콘
한편 문학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불은 소재를 넘어 삶의 배경에 가깝기에 오랜 문학적 전통 속에서 주요한 대상으로 다루어져 왔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인간 문명의 기원인 불과 그로 인한 비극적 대가를 문학적으로 적시한 바 있다. 희망인 동시에 불행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불의 운명은 이로부터 이미 공고화된 것이었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주요한 「불놀이」 부분
한국 현대문학사의 벽두에 등장한 문제적 작품 중 하나가 「불놀이」라는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이 근대 최초의 자유시인가에 대한 여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장르적 정위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이 작품은 사후적으로, 마치 우연처럼, 그 자체로 불의 혼란을 함의하고 있는 듯하다.
위에서 화자는 초파일의 불꽃놀이 풍경에 착안하여 시상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물과 불이라는 원형적 요소를 동원해 죽음과 삶, 식민지의 시대적 우울과 지식인의 충동적 내면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때 ‘불놀이’라는 소재가 혼돈의 세태와 연동되어 불꽃처럼 점멸하고 있다. 과잉된 감정의 요설이 지닌 시학적 성가는 별개의 문제이겠으나, 시적 서사가 파생하는 이미지는 시대와 결합된 불의 상상력에 관한 예시로서 충분하리라 본다. 이처럼 불은 강렬한 만큼 중층적이요, 생명의 화신이면서 적멸의 순간이기도 하다.
신화와 개인사 아우르는 끈
원형 이론에 따르면 불의 상징은 수식 상승과 관련된다. 또한 정열적인 에너지를 동반한다. 그리하여 불은 곧 문명이요, 역동적인 삶을 환기하며, 문학의 촉수는 이를 잘 감각하여 왔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모닥불」 전문
인간이 지닌 문화적 자산 중에서 최고의 수준은 공동체의 질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유적 본성을 실현하는 조건인 공동체의 질은 문명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백석의 위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적 질곡 속에서 모닥불이라는 소재를 통해 공동체의 질박한 형상을 그린다. 불 앞 풍경을 묘사하는 화자의 시선에는 어떠한 정치적 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물과 동물과 인간이 하나 된 모습으로 연출되고 있다. 또한 모닥불에는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각인된다. 처연한 과거를 기억하는 화중(火中)은 모두가 타고 모두가 함께 쪼이는 공동체의 장 자체가 된다.
백석이 1930년대에 그린 모닥불 이미지는 불의 생리에 공동체의 역사를 결합하는 절묘한 감각을 보여준다. 개체가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리는 곧 모닥불의 정의와도 같다. 다양한 원소들이 어우러져 모닥불이라는 존재를 이루듯이 사물과 인물 군상의 집합은 하나의 모닥불에 유비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공동체의 불씨가 이어져 왔다. 예컨대 「모닥불」의 동시대에 박남수는 “흔들리는 초롱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초롱불」)고 하여 사라져 가는 전통과 그에 대한 향수를 대비한 바 있다. 해방 공간의 김상훈은 “석유를 가득히 부은 등잔은/ 밤이 깊도록 홰가 났다”(「호롱불」)며 제국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여전히 잠들 수 없었던 고단한 민중들의 삶을 비추었다.
가장 빈번한 불의 이미지는 강한 생명력이다.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백무산, 「장작불」)라거나,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안도현, 「모닥불」)라는 게 그것이다. 이들 장작불과 모닥불은 공히 생의 원동력으로서 불을 재현하고 있다. 불의 감각을 전유하는 화자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력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들을 포함하여 불을 통해 재생을 환기하고 공동체의 본질을 강조하는 시적 상상력은 어쩌면 백석 시의 아류, 인류의 원형적 감각이 현전하는 불의 이미지를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에 관한 우리네 집단무의식일 수도 있겠다.
일찍이 만해는 “산천초록에 붙는 불은 수인씨가 내셨습니다./ 청춘의 음악에 무도하는 나의 가슴을 태우는 불은 가는 님이 내셨습니다”(「사랑의 불」)고 적었다. 불은 ‘수인씨(燧人氏)’라는 고대 삼황(三皇)으로부터의 동양적 기원, ‘가는 님’이라는 연애 관계로부터의 개인적 정염 등을 동시에 표상한다. 선각자의 문학적 감성은 삼라만상의 원리를 비롯하여 사적 정동을 관류하는 불의 본질과 범주를 꿰뚫고 있다. 이처럼 생의 원리 한가운데 불이 존재하고, 문학은 삶을 배경으로 지닌다. 불이 곧 문학의 심장일 수 있다는 은유는 이로부터 성립된다.
삶의 애환과 종교적 승화
불의 역학은 지속적인 파동과 상승에 있다. 파동은 물질의 존재 방식이요 상승은 변증법적 지양의 결과에 해당된다. 항상적인 운동 속에서 스스로를 지양하는 불이기에 자신의 존재로써 생명을 현전한다. 문학에 있어서도 불은 실제의 그것처럼 화려함 속에 다층적인 결을 지닌 채 끊임없이 운동하며 상승해 왔다. 불이 있기에 생명이 있고, 그로 인해 문학적 승화가 기연적 관계망을 구성한다.
불이 함의하는 다층적 의미망 중에서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특성으로 인한 지평을 빠트릴 수 없겠다. ‘불’은 그 기호 자체로 중의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를 김동리의 「등신불(等身佛)」에서 접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소설에서 등신불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한 만적의 불상을 가리킨다. 만적이 우화등선하는 내력에는 어머니의 학대와 문둥이가 된 이복형의 운명 등 기구한 인생 업보가 전제되어 있다. 「등신불」은 작가의 문학에 대한 신념이 체현된 하나의 도상학(圖像學)적 기호이겠지만, 여기서도 화염은 삼라만상의 이치와 종교적 승화를 매개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불(火)’은 인간사의 번뇌를 ‘불(佛)’로 승화하는 기제인 것이다.
불의 상상력이 지닌 다채로운 감각은 결국 삶의 다양성으로부터 비롯된다. 프로메테우스 이래 불은 인간의 삶을 비추고 풍요로운 문명을 형성하는 핵심 수단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인류는 불로 인하여 판도라의 상자도 갖게 되었다. 불행은 불을 취하는 대가로 인간에게 주어진 필연적 결과이다. 그리하여 불은 삶 속에서 운명적인 전이의 순간을 매개하고, 불의 결과인 잿더미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으로 남는다. 전이된 삶은 다시금 새로운 불꽃으로 타오른다. 이 운명적인 모순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다.
바슐라르는 불에 대해서 “결코 부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잘 때에도 살아 움직인다. 체험한 불은 늘 긴장된 존재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불의 시학의 단편들>)고 쓴다. 살아 있는 긴장은 문학의 본령과도 같다. 불은 인간이 가닿은 신화적 지평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역학을 지시한다. 문학의 언어는 현실을 재현하는 기호이면서 스스로의 존재론을 통해 물활적 지평을 연다. 스스로를 태워 생을 비추는 불꽃인 것이다. 그렇듯 불꽃은 타오르고, 문학의 심장이 뛰고 있다.
남기택
1999년 <작가마당>과 2007년 <현대시>에 평론으로 등단. <경계와 소통, 한국 현대문학의 다층성>, <지역, 문학, 로컬리티> 등 평론집을 냄. 현재 강원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