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6년 여름은 무시무시한 무더위로 기록될 듯하다. 폭염이 이어져 닭과 돼지를 비롯한 가축들의 폐사가 8월 8일 현재 274만 2천 마리에 달해 300만 마리 돌파는 시간문제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교인이라면,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가축들에 연민의 마음이 퍼져갈 수밖에 없을 터다.

비단 가축들의 생명만이 아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2016년 여름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사드’배치를 들 게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런 여론수렴도 없이 미군의 최첨단무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북에 배치한다고 불쑥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이 핵무기를 지니고 미사일 실험을 일삼고 있기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미군의 사드를 배치한다는 논리를 펴며, 반대론에 대해서는 무람없이 색깔을 들이댔다. 사드는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에, 배치에 반대하면 북에 동조한다는 단순 논리가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까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사드는 정부의 설명과 정반대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한국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여온 포위망의 주요 ‘거점’이 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적이 미사일로 공격할 때, 자신들이 대응해 발사하는 미사일은 사드로 인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짐작했겠지만 그 ‘가상의 적’은 미국이다.

물론, 그 말은 미국과 중국이 실제 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21세기 자국의 세계적 패권을 위협할 국가로 중국을 공공연하게 지목해왔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군대를 투입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트린 까닭도, 중동을 장악해 석유의존도가 큰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은 이제 국제정치학계에서 정설이 되었다. 실제 이라크에는 전쟁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때 중국이 발사하는 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로 중간에서 폭발한다면 군사적 불균형이 커질 것은 명확하다. 중국이 ‘유사시 사드부터 폭격한다’고 내놓고 밝히는 이유는 결코 ‘협박’이 아니다.

차분히 짚어보자. 우리 뜻과 무관하게 이 땅을 강대국의 전장으로 만들 수 있는 시설을 굳이 배치할 이유가 있을까. 사드가 북의 미사일로부터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북 안보론자들의 주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드는 높은 고도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이기에 수도권으로 낮게 날아오는 단거리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미국 요구대로 강행하고 있다. 심지어 영화 ‘인천상륙작전’까지 동원하고 있다. 더러는 억측이라고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의 언행을 짚어보면 진실을 알 수 있다. 2016년 8월 1일, 평일 대낮에 영화를 단체 관람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속내는 정진석 원내대표의 ‘감상평’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를 본 뒤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안보위기가 지금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하고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됐다.”
명백히 사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의 인식은 전쟁이 끝나고 60년이 더 흐르며 일궈온 성과를 죄다 무시한 발상이다. 이미 한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을 뿐더러, 최대 수출국도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된지 오래다. 만일 사드 배치를 완료하고 중국이 경제적 보복에 나선다면, 그렇지 않아도 민생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경제는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난 1950년 여름의 상황에 빗대 2016년 여름의 국가전략을 세운다면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전문가들 대다수가 작품 수준을 낮게 평가한 영화를 새누리당 지도부가 ‘단체 관람’하는 것은 자유다. 영화 시사회를 보고 심지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조차 한계를 지적했는데도 ‘영화 전문가’들을 ‘좌편향’이라고 몰아세우며 조직적 마케팅에 나서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1950년 낙동강까지 밀린 한국과 2016년 중국과 가장 많은 경제교류를 하며 성장해온 한국도 다르다.

낡은 사고로 급변해온 오늘의 상황을 풀어갈 수 없다. 상륙작전 하듯이 사드를 배치할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와 후손들이 치러야 한다. 2016년의 ‘폭염’을 우리가 슬기롭게 이겨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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