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257호) - 도원 스님/ 원주 성문사 주지

도원 스님/ 원주 성문사 주지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던 더위도 물러가고 세상은 이제 가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날마다 이어지는 염천의 더위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침부터 뜨거운 기운이 맴도는 절 마당을 걷다가 문득 혜능(慧能, 638~713) 선사의 ‘풍번문답(風幡問答)’을 생각했다. 혜능 선사는 15년의 은둔 생활을 한 뒤에 법성사에서 인종(忍從)대사가 <열반경>을 강설하는 자리에서 풍번문답의 일화를 남겼다.

풍번문답이란 말 그대로 바람과 깃발에 대한 문답이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어떤 이는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고 어떤 이는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나 혜능은 “움직이는 것은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다”라고 인종대사로부터 ‘그릇’을 인정받았고 조계산으로 돌아가 선종을 크게 진작시켰다.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라는 진리는 불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바람이니 깃발이니 하는 조건들에 얽매여 무수한 번뇌를 일으키고 집착하고 번민하는 것이 중생이다.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上月圓覺) 대조사도 “모든 느낌과 생각이 나의 오온(五蘊)과 육근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장난이다. 이 마음에 끄달리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했다. 중생은 그 분별과 차별, 갈등과 대립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한 부처가 될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는 한 중생고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불가의 선지식은 움직이는 마음을 다잡아 절대고요의 경지로 들어가라고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늘 움직이는 깃발만 바라보고 산다. 깃발의 움직임에 온 정신을 팔고 있으니 자신의 마음자리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날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더위 속에서 “오늘은 어제보다 무려 3도가 더 높다더라”는 분별은 몸과 마음을 더 덥게 할 뿐이다. 더위라는 현상에 집착하면 더 더워진다. 차라리 “여름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더위를 받아들이면 더위에 끌려가지는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내 마음자리를 청정부동한 공(空)의 경계로 이끌어 가는 수행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요즘 명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명상의 목적은 마음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열 받는 세상, 번민하는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지극한 평화와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이 ‘힐링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전통 수행도 ‘지관(止觀)’으로 통하고 있으니 이 역시 헐떡이는 마음을 그쳐 쉬는 것이다. 그러나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다가오는 경계를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삶을 수행처럼 이끌어 가는 지혜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토를 확장하고 치세의 기반을 공고히 한 다윗 왕이 반지에 새겼다는 글귀다. 다윗 왕은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좋지 못한 일이 있을 때나 이 글귀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모든 일은 지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이 다 지나가기 전에 눈앞의 현상만 보고 안달복달 하며 마음의 번뇌를 키워낸다. 아마 다윗 왕도 목전의 일에 끌려 큰 것을 못 보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 문구를 자주 되새김질 했을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몰아치지 못하고, 소나기도 온종일 쏟아지지는 않는다”는 말로 자연의 일이든 사람의 일이든 지나가는 것일 뿐임을 설파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음이 고요하면 거기서 행복은 샘솟는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보이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뜨겁던 여름도 때가 되어 불어오는 한 줄기 가을바람 앞에서 스르르 물러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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