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초대석/ 박권흠 한국차인연합회장

ⓒ한국차인연합회

‘맹구우목(盲龜遇木)’의 비유를 생각하면 감탄하게 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인간의 몸을 받고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이 눈 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서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그 구멍에 머리를 쏙 내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어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특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무척 좋아한다. 어르신들의 삶 자체가 역사요, 그분의 생애가 우리들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박권흠 한국차인연합회장(85)을 뵙는 순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박 회장의 미간 가운데에 부처님의 백호처럼 도드라진 점이 있고, 귀가 긴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전생부터 불연(佛緣)이 깊으신가 봐요.”
내무부장관과 동국대 총장을 역임하시고 활불(活佛)로 존경받으셨던 백성욱 박사의 백호를 떠올리면서 박 회장에게 전생 불연으로 말문을 뗐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아서 신라의 고찰 용천사에서 지극정성으로 빌어서 저를 낳았습니다. 어머니 정성을 부처님께서 돌봐주신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처님께서 미간에 이렇게 도장을 ‘꽝’ 찍어 주신 것 같습니다 .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불심이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정말 기적 같은 삶입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그 성과가 나기도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 한평생 살아가는 대략의 일정표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한평생 성공이라면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그 모든 게 내 능력으로 성취한 게 아니라 부처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았고, 무슨 일이든 기적처럼 성취해 냈다. ‘우사(又史)’라는 호처럼 삶의 고비마다 새 역사를 또 써온 그의 삶을 고갱이만 살짝 들여다봤다. 

지난 5월 차 문화 축제 시상식에서. ⓒ한국차인연합회

      

정치부 기자에 이은 3선 국회의원의 꿈
“나는 중·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 입학도 못했는데 한국전쟁이 났어요. 내 고향은 경북 청도인데 낙동강 건너편 마을입니다. 인민군이 바로 들이닥칠 상황이라 등 떠밀려 부산으로 피난을 갔지요. 부산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어떻게든 기술을 익혀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고려속기기술학교에서 속기를 배웠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속기를 배운 인연으로 신문기자가 된 일이다. 일자리가 귀했던 시절, 명문대 졸업생도 신문기자가 되기 힘들었던 시절에 당당히 국제신문 기자시험에 합격했다. 신문기자 시절, 정치부 기자로 명성을 떨친 그는 국제신문 정치부장을 거쳐 경향신문 정치부 차장을 역임했다.

두 번째 기적은 1970년 신민당의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김영삼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비롯됐다. 이 인연으로 1974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에게 스카우트 돼 정계에 입문, 총재 비서실장과 신민당 대변인을 지냈고, 3선 국회의원의 물꼬를 텄다.
“나는 인복이 많은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대담을 나누는 박권흠 회장.


그는 지금도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월성군-청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된 것이 생애를 통틀어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년 여당인 경주에서 청도 출신이 당선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여러 사람의 권유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 제11대 국회의원,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3선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국회의 불교단체인 정각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불교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특히 경승제도를 만들고, 문화재관계법 등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불교 발전에 이바지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에게 ‘덕인(德仁)’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3선 국회의원으로 기반이 든든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의 전두환 색깔 지우기로 공천에서 떨어졌지요.  이제 국회의원 그만하고 다른 일로 봉사하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깨끗하게 포기했지요.”

한국차인연합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다
그는 이후 한국도로공사 이사장, 대구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 서화작가협회 회장을 8년 동안 맡으며 크게 성장시켰다. 1992년에 한국차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돼 사반세기 동안 회장을 연임하며 한국차인연합회를 일취월장시킨다. 

“회장으로 취임해서 와 보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사무실의 월세를 내지 못해서 사무실을 비우라는 독촉을 받고 있었고, 심지어 주차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당혹스러웠지요. 빚도 있고, 지금도 같이 일하는 정인근 사무국장이 월급도 못 받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대회를 치러야 했다. 중국 차문화단체에서 1996년에는 한국에서 국제대회를 하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국제대회를 못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그의 말마따나 언제 어느 때나 부처님의 가피로 마음먹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었다.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이 생각나더군요. 김 회장의 모친인 명원 김미희 여사께서 아주 유명한 차인이십니다. 김 회장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해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5,000만원을 지원 받고,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인연 맺었던 분들을 찾아가서 국제행사에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십시일반 협조를 받았습니다.”

과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고 그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소중한 지혜다. 또한 도움을 청하고 협조를 구했을 때, 뜻대로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지 알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는 평소 최선을 다하는 삶,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따뜻하고도 열정적으로 임하는 삶의 원칙 덕분에 만사형통했던 것이다. 199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사회주의 국가여서 개인 돈이 없었던 중국 차인들의 숙식비를 마련해주는 등 거금을 지출하고도 행사비 정산 후 1억 원이 남아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전화위복, 그의 비범함을 다시금 증명해 낸 것이다.

취재진에게 줄 부채에 '茶香萬里'를 쓰고 있다.



차문화를 발전시키려면 다도대학원을 만들어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1993년 한국다도대학원을 설립, 다도 교수 자격증을 수여했다. 현재 23기 2,500여 명의 다도교수를 배출해 차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강릉·대구·부산 분원이 있으며, 전국에 차회가 900개, 금년 말에는 천 개에 이를 전망이다.

처음에는 교실이 없어서 전전긍긍했는데, 지금은 자체 강당에서 교육하고 있다. 국회에 다도 교육으로 인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인성교육진흥법 발의를 요청하고, 교육부에 공문을 보내 다도예절을 통해 인성교육을 시키게끔 교육정책을 만들게 하고, 다도 교과서도 만들었다. 청소년 다도예절 인성교육지도자를 배출하여 정부 차원의 자격증을 주고 있다. 한편 명다기 품평회를 하고 올해의 명다기를 선정해서 상을 줌으로써 도예인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하고 있다.

“내 인생의 후반기에 차를 만나지 않았으면 노년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습니다.
 전국에 이렇게 많은 차인이 모두 나의 차 벗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의 행복 비결, 나이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는 모습, 아니 실제로 종합검진에서 80중반인데, 40대의 맑은 혈액으로 나오는 건강비결이 바로 차, 그리고 차와 함께 만난 수많은 차벗들과의 좋은 인연에 있었다.



“내 남은 인생은 차문화를 국민의 생활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차를 마시게끔, 모든 가정에서 다도를 생활화하도록 차의 유익함을 알리는 것이 나의 꿈이에요.”라고 하면서 은은히 미소 짓는데 참으로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면 몸이 건강해지고, 다도를 하면 가정이 건강해진다.”
‘웰빙은 이다월병(以茶越病), 차로써 병을 뛰어넘자’는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가슴을 사로잡는다.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전 국민 차 마시기 운동본부’ 현판이 빛을 발한다. 그와의 만남 덕분에 불연(佛緣)에 대한 감사함, 차 사랑이 더욱 깊어질 것 같다. 차를 가까이 하면 만병은 물론이고, 번뇌 망상까지 물러갈 것 같다. 아하, 그래서 다선일여(茶禪一如)로구나.

사기순 도서출판 민족사 주간

사기순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도서출판 민족사 주간.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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