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256호)

지난 6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독창회가 끝난 뒤 무대인사를 하는 김재일 씨.

성악가 김재일(바리톤)

이른 새벽 재잘거리는 새의 지저귐, 바람의 소리, 바위와 부딪혀 소리를 내는 물의 울음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청량한 힐링 에너지다. 인간의 목소리 역시 가슴을 울리기도, 웃음을 짓게도, 소름을 돋게도 만든다. 그래서 기계음이 섞이지 않은 오롯한 사람의 목소리 역시 어떤 악기보다도 훌륭한 악기로 불린다. 자신의 ‘꿀 성대’로 대중들에게 희망의 에너지를 전해주고픈 사람, 성악가 바리톤 김재일이다.

충주의 노래 잘하는 아이

1970년대 중반, 충북 충주의 한 불교회관에 엄마ㆍ아빠의 손을 잡고 나타난 다섯 살 난 사내아이. 이 아이는 어른들 못지않게 <반야심경>을 줄줄 외고, 가만히 앉아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읊어댔다. 목청이 크고 또랑또랑했다. 노래를 잘해서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육남매의 막내인 재일은 형제들 중에서도 노래를 제일 잘 불렀지만, 전공을 하고픈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음악ㆍ미술 같은 예술분야의 레슨을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집안 형편상 엄두도 못냈다. 중학교 때까지 학교 음악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음악공부를 했다.

언론과 사회학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그는 고2 말 쯤 “이것만 보고 노래 안할 거야”라고 다짐하고 M 방송국이 충주문회회관에서 주최한 ‘가곡의 밤’ 공연을 보러갔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순간 재일은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공연이 끝난 뒤 바리톤 윤치호(2007년 타계) 씨를 만나러 갔다. 재일은 기다림 끝에 윤치호 씨를 만나 “선생님께 노래를 배우고 싶으니 테스트 해달라”고 간청해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그해 겨울방학 때 서울로 가 테스트를 받은 재일은 윤치호 씨로부터 “훌륭한 소리다. 성악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성악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을 쪼개고 쪼개 레슨비를 마련해 주었다. 윤치호 씨도 전도유망한 재일의 사정을 알고 남들보다 레슨비를 적게 받았다. 그는 서울대 음악대학 진학 후 이인영 교수와 대학원 시절 강병운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고, 음악성이 성숙해졌다. 윤치호 선생은 음악인의 길로 이끌어준 은인이고, 이인영ㆍ강병운 교수는 그가 성악가로 발돋움하는데 큰 영향을 준 음악 스승이다.

무대 서고 파 독일 유학

그는 대학원 졸업 후 31살의 나이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떠나기엔 조금 늦은 나이였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 처음엔 미국이나 이탈리아 유학을 꿈꿨다. 하지만 극장(오페라) 시스템이 잘 돼 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독일로의 유학을 택했다. 그는 뒤셀도르프 음악대학에서 20대의 나이 어린 외국인 동기들과 교류하며 4년 간 공부에 매달렸다.

졸업 후 그는 꿈꿔왔던 데뷔 무대를 위해 독일 라인스베르크에서 열리는 배역 선발을 위한 국제성악대회에 도전, 한 번의 고배를 마신 뒤 입상했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하루 평균 6시간 꼬박 연습했다. 때론 저녁에 2~3시간 연습할 때도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비로소 정식 무대에 섰다. 극도의 긴장감과 설렘을 잠시 접어두고 브라운슈바이크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루치아의 주연 엔리코 역에만 몰입한 그는 첫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 행복하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신인이 데뷔 무대에서 주연을 맡다보니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놀라움을 표한 이들이 더 많았다. 단 몇 주간 같이 연습했지만, 합창단원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고 격려해준 기억은 뇌리에 남아 아직도 그의 심장을 두드린다.

유럽 무대에 진출한 그는 오페라 4편을 합쳐 만든 16시간 짜리 오페라에 캐스팅 되면서 성악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처음엔 더블 캐스팅 됐지만, 외국인 성악가가 포기하면서 혼자 도맡게 됐다. 그가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자 이 오페라의 연출자였던 필립 아를로는 “재일아, 심각한 연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그들이 웃음 지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없어. 너는 노력을 했는지, 타고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잘하는구나”라고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독일 무대는 성악가로서 그의 삶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였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독일에도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은 존재했다. 무대든, 행정기관이든, 마을에서의 삶이든, 어디서든 보이지 않는 차별은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극장 단원이 돼도 종신제가 아니라 2~3년, 빠르면 1년마다 오디션을 봐야 했기에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도 고민거리였다.

차별을 견디고 독일 땅에서 살아갈 것인지, 귀국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7년 간의 독일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귀국했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마침 서울대에 강사 자리가 나서 내린 결단이다. 귀국 후 그는 서울시 오페라단과 세종문화회관에서 함께 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연 제르몽 역으로 한국 무대에 데뷔했다.

노래를 부르기 전 감정을 잡고 있는 김재일 씨.

관객과 소통하는 법 배워

그는 우렁차면서도 섬세한 목소리를 지녔다. 울림이 강한 자신의 소리로 시골 할아버지ㆍ할머니, 어린이부터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을 사로잡았다. 많은 무대에 섰지만, 어린이와 어르신들을 만나는 무대는 늘 설레게 한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늘은 이분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즐겁게 해드리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공연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다.

2014년부터 진행한 하우스 콘서트가 그의 음악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전국을 다니며 그는 관객들이 무식해서 클래식을 모르는 게 아니라, 접할 기회가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익혔다. 기쁜 역할이든, 슬픈 역할이든, 웃긴 역할이든,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노래하는 일은 수행과도 같죠. 나는 ‘다 찼어(실력이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이 아닐까요.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최고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 음대 출신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하지만, 그는 그 힘을 빼려고 매일 자신을 가다듬는다. 하심(下心)을 해야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었기에.

불자 부모가 물려준 인생살이

이런 그의 고운 마음 씀씀이는 부모로부터 배웠다. 작고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섯 명의 아들ㆍ딸에게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을 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법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사는 바르고 열정적인 분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일과 수행에 전념하는 부지런한 분이란다. 이 분들의 인생살이, 부처님의 삶에서 배운 것이라고.

대학 시절 34명의 동기 중 유일한 불자였던 김재일 씨는 입학 때부터 “나는 불자다. 내 음악을 하면서 불교음악을 발전시키는데 노력할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대학 시절, 개신교 동기들과 선배들의 선교 대상이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선교 대상 1호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알게 된 성악가 김재일 씨. 그는 그 목소리를 대중에게 행복을 주고 힐링 에너지를 전하는 도구로 쓰고 싶어한다.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희망의 에너지를 얻어 가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은 절대 따라오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든, 무대 밖에서든 늘 최선을 다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그는 “관객의 말 한 마디, 눈빛 하나가 소중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받은 에너지를 다시 대중에게 돌려주면 행복이 가득한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이 성악가 김재일, 불자 김재일이 꿈꾸고 이루려는 세상이다.

독창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재일 씨.

 바리톤 김재일

서울대 음대 성악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음악대학에서 수학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국립극장에서 루치아의 주역 엔리코 역으로 유럽무대에 데뷔했다. 귀국 후 서울시오페라단과 함께 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역 제르몽 역으로 한국무대에 섰다. 이후 ‘가면무도회’, ‘마술피리’, ‘투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니벨룽겐의 반지’ 등 다수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2013년부터 크고 작은 독창회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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