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계석/ 연극 <햄릿> 국립극장 해오름 7.12~8.7

<햄릿> 포스터.

이해랑 탄생 100주년
세익스피어 400주기
특별한 해에 막 올린 걸작
숨소리에까지 빠져들게 하는
명품배우들의 명품연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선왕의 죽음에 따라 갈등하는 어머니 거트루드와 아들 햄릿.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서도 단연 수작으로 꼽히고 있는 연극 <햄릿>의 명대사. <햄릿>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21년이었다. 일본유학파인 현철(1891~1965)이 잡지 <개벽>을 통해 츠보우지 쇼요(平內逍遙)의 일본어판을 중역하여 처음 소개했었다. 그 이후 30년이 지나서 무대에서 <햄릿>의 막이 올랐다. 1951년 9월 극단신협(한로단 번역, 이해랑 연출)에 의해 전막 공연이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관객을 맞은 것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된 <햄릿>은 공연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연극의 지형을 선도하는 ‘힘’이었다. 그런 <햄릿>이 2016년 여름 연극계를 달구고 있다.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이름만으로도 대형 무대가 떠오르는 명품 배우들. 거기에 손진책이라는 연출가까지. 그야말로 한국 연극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거장들의 참여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연극 <햄릿>.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과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까지 더해진 무대다.

우리나라에서 연극 <햄릿>은 텍스트에 대한 ‘재해석’과 ‘각색’의 관점으로 햄릿의 성격을 다방면에서 접근하며 수없이 공연 되어왔다. 2016년 판 <햄릿>은 고대의 원형극장이 연상되는 무대에서 시작된다.

무대에는 가지런한 제기들과 수건이 나란히 놓여 있고, 종이 울리면 제복(祭服)을 입은 듯한 출연자들이 제기에 나누어 준 물로 손을 씻는다. 그것은 엄숙하고 인상적인 고대의 제의식(祭儀式)을 연상시키며,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祭)를 집전하는 각각의 주인공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햄릿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에 자주 앵글을 고정시키지만, 원인을 따지고, 사건의 선후를 따진다면, 정작 관람의 포인트는 형을 독살하고 왕의 자리를 탐한 클로디어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로 인해 형수를 취하는 근친상간이 저질러지고, 족보가 엉키고, 비통한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다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나약한 햄릿은 복수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핑계를 대며 기회를 놓친다.

김성녀
손숙

 기회가 왔다! 지금이다(칼을 빼든다) 아니다. 기도드릴 때 죽으면 천당에 가게 된다. 그러면 그게 무슨 복수람. 온갖 죄악의 영욕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때, 그때 해버려야 한다. (중략) 어차피 가야할 지옥이지만 죄에 알맞은 때를 타서 보내줄 테다. 참, 왕비가 기다리시지. 너 기도하고 있다만 그 기도는 필경 네 고통만 연장시킬 뿐일 것이다.

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이 꾸민 ‘극중 극’인 ‘무언극’과 ‘곤자고의 살인’을 보고 친형을 죽인 죄책감에 떨면서 무릎 꿇고 자신의 죄악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햄릿이 때마침 온 기회에 복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햄릿은 ‘우유부단의 상징’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아무리 ‘복수’라는 가장 강력한 칼을 갈았다 해도 살인이라는 순간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성격보다는 그의 고뇌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 복수의 기회가 오기 전 햄릿이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와 만나기전 자신의 심경을 창공에 비유하는 장면의 대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유인촌
윤석화

 …이렇듯 수려한 산천도 황망하게만 느껴질 뿐, 저 하늘 기막히게 아름다운 창공도 보게. 저 찬란한 하늘! 불타는 듯 황금빛 별들을 쪼아놓은 장엄한 천장! 저것도 나에겐 다만 독기 서린 멍석으로 밖엔 안보이거든! 그리고 이 인간 참으로 오묘한 조화!(중략) 지혜는 신 그대로, 천지간의 정화, 만물의 영장은 이를 두고 말함이 아닌가? 이러한 인간이건만 대체 나에게 뭐란 말인가. 쓰레기 떼미! 진개로 밖에는 보이지 않어…

숙부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과 어머니에 대한 갈등 그리고 포틴브라스의 영웅적인 행동과 레어티스의 남자다운 모습에 대한 선망 등으로 햄릿이 압박당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전무송
정동환

섬세한 고뇌와 갈등, 출연하는 각 인물들이 지닌 개성적인 역할과 특징들이 배우와 관객을 팽팽하게 끌고 가는 연극 <햄릿>은, 근친상간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갈등과 우정과 사랑과 끈적한 욕망의 속성들을 끄집어내어 ‘사람 속의 사람’을 읽게 한다.

관객들이 햄릿을 맡은 유인촌과 함께 호흡하며 긴장과 고뇌에 찬 복수를 꿈꾼다면, 현대인의 입장에서 재생하는 폴로니어스 대사를 맡은 연극인 박정자로 인해 웃고, 오필리어의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햄릿의 갈등, 절망, 복수, 비극적인 결말 앞에, 공감과 비평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로젠크란츠 손봉숙

핏줄이 터질 듯한 광기를 발산하는 은발의 햄릿(유인촌 분)과 왕의 자리를 뺏은 후 고뇌하는 클로디어스를 맡은 정동환의 연기, 중년의 나이에 첫사랑에 빠진 맑고 발랄한 모습 오필리어(윤석화 분)의 실성한 모습까지 실감나게 연기하는 현장을 한꺼번에 만나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게다.

2016 연극 <햄릿>은, 제의식(祭儀式)처럼 시작하는 인상적인 첫 무대와 배우들의 얼굴표정과 몸짓에 묻어나는 내면 연기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집중하게 하는 묵직한 매력이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든다. 막이 내린 뒤에도 가슴에서는 햄릿의 대사가 쿵쾅거린다.

왕이된 클로디어스 정동환.

“저 찬란한 하늘!
불타는 듯 황금빛 별들을 쪼아놓은 장엄한 천장!
저것도 나에겐
다만 독기 서린 멍석으로 밖엔 안보이거든!”

무덤지기들의 대화. 박정자 한명구.

 

오필리어 윤석화.

 

폴로니어스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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