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다 '물'- 물과 문학

물과 문학 문학작품 속에 투영된 물의 의미

지난해 물 부족 사태로 충남 서해안지역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강우량이 예년보다 절반으로 줄어 보령댐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제한급수라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물은 생명과 직결된다. 물이 없으면 지구도,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어린 왕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 생텍쥐페리도 <인간의 대지>에서 물에 대해 “너(물)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엘리아데도 <성과 속-종교의 본질>에서 물을 잠재성의 보편적 총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근원이자 원천으로서 모든 존재 가능성의 저장소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물을 ‘생명’으로,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대상으로 인식해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의 물은 주로 생명과 죽음 또는 이별, 그리고 정화, 고향 등의 의미를 띠고 있다.

삶의 바탕 그리고 욕망
먼저 생명으로서의 물을 표상하고 있는 작품을 보자. 이문구의 연작소설 <우리 동네>에 들어있는 「우리 동네 김씨」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저수지 물’을 서로 대려는 농촌의 실상과 농민들의 애환을 잘 보여준다. 계속되는 가뭄에 김 씨는 이웃의 양수기를 빌리고 빚을 내어 호스를 사서 이웃 마을 저수지의 물을 자신의 마른 논으로 퍼 올린다. 이에 이웃 마을 청년들이 자기 동네의 저수지 물을 가져간다고 김 씨에게 시비를 걸었고, 한전 감시원인 중년 사내는 전기를 도둑질[盜電]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중년 사내의 지나친 엄포에 김 씨에게 불만을 가진 이웃 마을 청년들의 생각이 바뀌어 가뭄에 논에 물대기 위해 뭔 짓을 못하겠느냐며 김 씨를 돕게 되고, 그에 따라 김 씨의 문제는 흐지부지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농민들에게는 물만큼 소중한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이 곧 생명줄임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1933년 <대중>에 발표된 김남천의 단편소설 「물」은 물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1931년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제1차 검거 사건으로 기소된 그는 두 평이 조금 넘는 감옥에서 12명의 수감자와 함께 생활한다. 무더운 여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그는 물이라도 실컷 마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그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주인공의 소망대로 시원한 물을 마시게 되나 냉수만 마시면 설사를 하는 그는 이내 설사로 고생한다.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열악한 감옥 현실과 그 열악한 현실에서 본능적인 욕망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울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위의 두 작품에서 물은 생명이요, 모든 생물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아거스필름

그대 물을 건너지 마오
물은 이별,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대표적이다.

그대 강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그대 끝내 강을 건넜구려(公竟渡河)
물에 빠져 돌아가셨으니(墮河而死)
그대여 어찌해야 하리오(當奈公何)

이 시는 한국 시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조선 시대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자고가 새벽에 배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그때 머리가 하얀 미친 사람이 술병을 끼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늙은 광부(狂夫)의 아내가 쫓아오면서 남편을 부르며 말렸으나 결국 그 남편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이에 그의 아내는 들고 있던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의 노래를 지어 불렀고, 노래를 마치자 그녀도 물에 빠져 죽는다. 자고가 아내에게 이 사연과 노래를 들려주자 그의 아내 여옥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거창 수승대. 바위에는 물 맑은 수승대 계곡의 풍경을 읊은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다.

「공무도하가」에서 볼 수 있듯이 강물은 죽음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정지상의 시 「송인(送人)」은 대동강변에서 친구를 보내며 부른 이별의 시이다. “비 개인 긴 언덕에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물결에 더하는 것을(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이라고 석별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문인들이 강물을 통해 이별, 죽음을 노래하였다.

맑은 마음과 간절한 소망
또한 물은 정화(淨化)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에 길은 맑고 정한 우물물(정화수)을 장독대 위에 떠놓고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정화수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는 의미에다가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박재삼의 시 「수정가」에는 춘향이가 서방님을 그리는 순수한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그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의 마음이 아니었을레.(1연)

춘향이가 이러한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지녔기에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 시에서처럼 물은 깨끗하고 맑은 정화의 기능을 내포하기도 한다.

김소월의 시이자 동요로 널리 알려진 「엄마야 누나야」도 넓은 의미에서 ‘물’과 연관지어볼 수 있다. ‘강변’은 강에 있는 둑으로, 강과 늘 가까이 있는 대상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시인은 이 강변에서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앞뜰에는 모래가 금처럼 반짝이고, 뒷문 밖에는 갈잎이 굴러다니는 강변에 있는 ‘고향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강은 이별과 죽음 외에 고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에는 ‘물’의 상징적 의미가 다양하게 함축되어 있다. 생명, 이별과 죽음·정화·고향의 의미 등이 문학작품 속에 잘 담겨 있음을 보았다. 이렇듯 문학작품 속에 물의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 것은 ‘물’이 ‘흐름’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끊임없이 변화를 하려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문학작품 속에 ‘물’이 어떻게 묘사되고 형상화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김현정 세명대 교수

김현정
1999년 <작가마당>으로 비평활동 시작. 저서 <한국현대문학의 고향담론과 탈식민성>, <백철 문학 연구>, <대전 충남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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