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다 '물'- 물과 종교

신화와 설화
종교의식과 제사 등
물로 신성과 청결 상징
동서고금에 보편적 현상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의 아기부처님 관불 의식.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

물, 신성존재와의 만남
‘물 한 그릇 떠놓고 식 올린다’는 말이 있다. 신랑ㆍ신부가 서로 머리를 틀어주면서 치렀던 가난한 이들의 혼례에서도 빼놓지 않았던 건 한 그릇의 정화수였다. 비록 제대로 갖추어 치르지는 못하지만 정화수로써 천지신명에게 신성한 혼인을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새벽마다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객지에 나간 자녀와 가족의 무탈함을 빌었다.

이처럼 물은 신에게 올리는 가장 근원적이고 신성한 제물로 여겨졌다. 천지신명께 비는 청수(淸水)에서부터 부처님께 바치는 헌다(獻茶), 제사상에 올리는 현수(玄水) 등에 이르기까지 물은 종교와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공물이다. 이러한 물을 우리는 정화수(井華水)라 부른다. 정화수란 ‘샘에서 솟아난 물’을 뜻하지만, 샘에서 길은 물이 아니더라도 맑고 신성한 정화수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아울러 신성존재와 만나기 위해서는 심신이 정결해야 하고 삿된 기운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제의를 치르기 전에 목욕재계와 금기를 지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한편, 의례공간에 물을 뿌려 부정한 기운을 물리쳤다. 민간신앙과 불교·유교는 물론 기독교 의례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물은 세속의 오염을 씻어 신성한 시·공간에 들어서게 해주는 장치로 자리매김해왔다.

이처럼 물은 자연현상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다의적인 속성을 지녀, 그 종교적 상징성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이 지닌 핵심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생명력이다. 물은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생성시킨 요소이면서 뭇 생명이 살아가는 근원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물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생성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력의 근원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 둘째는 정화력이다. 물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어 질병에서 벗어나 청결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셋째는 천변만화하는 속성이다. 물은 한 방울이기도 하고 우주를 뒤덮은 바다이기도 하다. 머물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며 쏟아져 내리거나 솟구치기도 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미약한가 하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무한한 힘을 지녔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며, 물이 도(道)에 가장 가깝다고 하였다. 그는 강이나 바다가 이 세상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아래이기를 좋아해서이며, 사람도 초목도 살아서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딱딱하고 강해지니, 굳고 강한 것들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들은 삶의 무리라 하였다.

노자의 말은 자연을 본받으며 살 때 참된 생명력으로 도에 이를 수 있음을 새기게 한다. 물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이로움을 주지만 위에 머물지 않고 아래에 처함으로써 만물을 포용하여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비록 살아있더라도 굳어 있어 마음을 나누고 함께하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지 못하며, 그러면서도 위에 머물기를 즐겨한다면 도(道)와 가장 먼 삶을 사는 이라 할 수 있겠다.

생명력과 정화력 지닌 물
물의 신묘한 생명력에 대한 무수한 신화와 설화가 전한다. 무속신화 바리데기처럼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길어와 죽은 부모를 살려 물이 재생의 상징물로 작용하는가하면, 물에서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제주도 무속신화에 목이 마른 여신이 한라산에서 돼지발굽에 고인 물을 마시고 아기를 갖게 된다든지, 동해 한가운데 있는 여인국에서 우물을 들여다봄으로써 생명을 잉태하며, 한 처녀가 우물 속의 오이를 먹고 범일국사(梵日國師)를 잉태한 이야기 등은 모두 물이 생명의 근원임을 말해준다.

또한 고구려의 고주몽신화에서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로서 웅심연이라는 연못에서 노닐었으며, 신라 박혁거세신화에서 혁거세와 알영은 나정과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서 각각 탄생하였다. 고려왕조의 여시조는 용녀(龍女)로서 개성의 대정이라는 우물을 통해 용궁을 드나든 존재이다. 유화·알영·용녀는 모두 ‘물의 여인’으로 우물과 짝을 이루어, 물이 지닌 생명력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성적 생산원리와 직결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물의 정화력은 종교의례에서 강력하고 광범위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물은 부정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는 힘이자, 오염된 세속의 삶을 씻고 성스러운 영역에 들어설 수 있게 하는 매개물의 구실을 한다.

불교에서 법회를 열 때 법수(法水)를 뿌리거나 천수다라니를 염송해 이를 나타내는 것은 도량의 정화만이 아니라 동참대중의 번뇌와 삼독을 씻기 위함이다. 천도재(薦度齋)에서는 관욕(灌浴)으로 영가가 생전에 지은 업을 씻어주어 불전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며, 무속의 씻김굿 또한 생전의 문제와 한을 씻어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독교 의식에도 성수를 사용한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에서는 머리나 이마에 물을 뿌려 교인으로 거듭남을 상징하는 세례(洗禮)가 일상화되어 있고, 침례교에서는 몸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浸禮)의 의식으로써 ‘이전의 죄를 모두 장사지내고 영적으로 다시 소생’하는 의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물법신앙·찬물신앙 등과 같이 물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정의 의미는 풍속으로도 활발히 전승되어왔다. 대표적으로 음력 유월 보름의 유두(流頭)가 되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와 몸을 씻는 물맞이를 들 수 있다. 더위가 한창인 시기에 동류수(東流水)에 몸을 담금으로써 그 양기로 심신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더위까지 물리쳤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이날 궁궐에서 보살계도량(菩薩戒道場)을 열어 역대 왕들이 보살계를 받았다. 보살계 수계를 6월 보름에 행한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유두날 머리와 몸을 씻는 풍습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재계(齋戒) 의식과 통하기 때문임을 짐작케 한다. 유두 물맞이를 올바른 불자로서 살겠다는 다짐의 정화의식으로 받아들였던 셈이다.

아울러 대상에 따라 음식공양의 의미가 달라지듯이, 씻김의례 또한 대상의 위격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불교의 관욕은 크게 성속(聖俗)의 의미로 대상을 구분하여 살펴야 한다. 부처님오신날, 탄생불에 물을 끼얹는 욕불(浴佛)·관불(灌佛) 또한 씻김의례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씻어서 정화한다’는 보편적 의미는 같지만, 속(俗)의 존재가 오염된 업을 씻어주는 뜻인 데 비해 성(聖)의 존재에 대한 관욕은 경배와 찬탄의 뜻을 지닌다. 성의 존재는 본래 청정한 데 비해, 속의 존재는 씻김으로써 청정한 존재로 변환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살계도량과 결합한 유두의 물맞이는 물이 지닌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금은 그저 바캉스시즌에 들어서는 날쯤으로 여기고 있지만, 6월 보름이야말로 물을 본받고 자연을 본받는 날로 삼을 만하다.

인도의 시크교도들이 강에서 몸을 씻는 의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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