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56호)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 할아버지는 내 귀여운 외손녀 현진이의 안부가 궁금하구나. 지구의 반대편 먼 나라의 낯선 환경 속에서 힘들게 지내지는 않는지 걱정도 된다. 아마 학교에 가면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피부 색깔도 다르고 생활 습관이나 문화도 달라 어울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텐데, 우리 현진이가 이런 여러 나라 아이들과 잘 소통하면서 우애롭게 잘 지내는지도 염려가 된단다.

그렇지만 네가 어린 시절에 겪는 이러한 경험들이 너를 국제적 인물로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뭐든지 힘든 일을 잘 견디고 이겨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란다.

너는 앞으로도 아빠 덕분에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이것은 너에게 매우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세상을 넓게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얻기 어려운 일이지. 그러니까 현진이 너는 이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말고 행운으로 생각해야 된다.

소녀시절에 세상을 두루 섭렵하는 일은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할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이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책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어. 참, 너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지. 그 책속에는 새로운 지식, 새로운 세계 또는 삶의 지혜 등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이 많아. 그런데 <채근담>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단다. “사람은 글자가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아도 글자가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른다”고. 글자가 있는 책이란 현진이 네가 좋아하는 동화책이나 교과서 또는 과학책 위인전 등을 말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이로 만든 책이지. 그런데 글자가 없는 책이란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그것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해. 이 세상은 글자로 기록해 놓거나 인쇄해 놓은 것이 아니지만 책처럼 많은 지식과 지혜가 들어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세상을 넓게 경험하는 일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같은 일이란다.

현진아! 이제 네가 왜 행운아인줄 알겠지? 무궁무진하게 넓은 세상을 모두 다녀보거나 또는 거기에서 살아보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한 넓게 많이 경험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일이야. 앞으로 네가 일할 곳, 네 기상을 펼칠 곳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가 너의 무대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세계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웠으면 해.

그런데 할아버지는 걱정이 또 하나 있단다. 네가 한국에서 사는 시간보다 외국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사는 시간 시간이 많으니까 혹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런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네가 세계를 무대로 삼아 일한다 해도 한국인으로서의 세계인이 되기를 이 할아버지는 바라고 있단다. 한국인의 정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할아버지는 특히 네가 한국어와 한글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말은 그 사람의 사고(思考)를 일으키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영어를 말할 때는 영어식 사고를 일으키고 프랑스어를 말할 때는 프랑스어식 사고를 일으키고 한국어를 말할 때는 한국어식 사고를 일으키게 되지. 그런데 네가 만약 한국어에 서툴다면, 혹은 한국어를 잊어버린다면 한국어식 사고를 잘 못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 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마는 거야.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문자란다. 그러니 현진이는 한국어와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해주기를 바란다.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더 계속된다면 네가 싫어할까봐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다.

무엇보다도 건강이 제일이니 편식하지 말고 운동도 꾸준히 해라. 할아버지는 네가 잘되기만 바란단다.

문효치 시인.

문효치
1966년 서울신문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무령왕의 나무새> <왕인의 수염> <별박이자나방> <모데미풀> 등 12권, 동국문학상, PEN문학상, 천상병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옥관문화훈장 수훈.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주성대 겸임교수 역임. 현제 계간 <미네르바> 대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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