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권두칼럼(256호)

장마를 지나며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 왔습니다. 한 해 가운데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8월, 여름의 한복판에 와 있습니다. 이즈음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집에서 조용히 더위를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또 봉사활동이나 수행체험을 하면서 자기의 내면을 다스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8월은 휴가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할 것입니다. 적은 비용에 최고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짜느라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할 것입니다. 휴가의 첫 번째 조건은 ‘쉼’이 되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충분히 쉬고, 그 쉼에서 얻은 행복감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휴가의 의미가 있는 겁니다.

여름 한 철 구인사는 각종 수련회가 잇따라 열립니다. 그래서 매일 사찰이나 단체별로 드나드는 불자들로 산문이 붐빕니다. 마침 8월은 여름 안거기간이기도 하여 안거에 동참한 대중만 해도 1,300여 명인데 종단이 시행하는 각종 수련법회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구인사는 그야말로 사람의 바다를 이룹니다.

더운 여름 날 그 많은 사람들이 구인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름 안거에 든 불자들에게는 세상살이에 헐떡이는 마음을 쉬어 청정한 본래의 자기를 만나고 싶다는 원력이 있습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복잡한 일상으로부터의 쉼을 찾아 온 것이고, 각종 수련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수련을 통해 마음을 쉬려는 생각을 갖고 동참합니다.

몸과 마음, 사람은 이 두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삽니다. 몸과 마음의 문제는 불교학은 물론 철학과 과학에서도 매우 심도 깊은 연구와 담론들이 형성되어 연구와 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묘하고 초월적인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의 문제는 학문적이 차원이 아니라 생활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활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몸을 버리고 마음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을 버리고 몸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몸이 있어 마음이 따르고, 마음이 있어 몸이 따르는 것이니 이 둘의 조화가 삶의 방식과 내용을 결정 짓는 것입니다. 휴가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함께 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이 몸을 쉬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수련회 참가자들은 어김없이 농장체험을 하게 되는데, 농장에서 한 나절 일을 하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개운하다”고 말합니다.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왔는데 몸이 개운하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도 휴식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땀 흘려 일하고 온 사람들은 “마음이 상쾌하다”는 말도 합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오히려 마음이 상쾌하다는 것은 아무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고 마음이 쉬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의 휴식은 물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보다 잘 쉬는 방법은 무엇일까?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기위해 저마다의 지혜를 모으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문제에 ‘객관적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경제력 그리고 동행하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성향 등을 잘 따져서 휴가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몸과 마음의 행복을 두어야 합니다. 지친 일상에 쉼표 하나 찍는 일, 8월의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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