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 할 종이 사올 때 이미 하늘에 태어나

중국 당 태종 정관 18년, 그러니까 서기 644년.

진법장(陣法藏)은 지금의 섬서성 사람입니다. 그는 음식을 담당하는 관리가 되어 낙주로 갔는데, 그 사이 참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는 본처가 아니라 후처였습니다. 당시에는 본처만이 아니라 여러 명의 후처를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뜻밖에도 그 둘째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법장의 본집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만이라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제 오십니까?”

“아니 여긴 웬일이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무려 10여 리나 떨어진 곳이었으니까요.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혹시 우리 어머니가 박대를 하였소?”

“아닙니다.”

아내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면 내 형제들이 그대를 홀대하였소?”

“아닙니다.”

그는 답답하였습니다.

둘째 아내가 워낙 착한 사람이라 여간해서는 가족들에게 미움 받을 일을 하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후처를 가족들이 달가워할 리는 없었지요. 그래서 늘 그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아내는 그것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는 법장은 덥석 손을 잡았습니다.

“사실대로 말을 해보오.”

“가족들, 누구도 저를 박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냔 말이오?”

“저는 며칠 전에 죽었습니다.”

그는 반가워서 잡았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마을 집 중에 가장 가난한 산 밑 끝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요?”

“조금 있으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와 아내는 잠시 툇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머리에 철 투구를 쓴 병졸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아주 무서운 형상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

그러나 그는 대답대신 아내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네 마음대로 바깥세상을 들락거리느냐?”

“잘못했습니다.”

아내는 그 병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함부로 오간 죄로 오늘 네가 받을 벌을 알고 있느냐?”

“당연히 달게 받겠습니다.”

법장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내와 병졸이 나누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듣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헤아릴 길은 없었지만, 드디어 어떤 커다란 방에 도착하자마자 쇠머리를 한 옥졸이 다짜고짜로 아내를 쇠꼬챙이에 꿰었습니다. 그리고 펄펄 끓는 쇳물에 넣어서 뼈와 살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삶더니 다시 꺼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아내는 도로 살아났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말이지요.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법장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 하였습니다. 아내의 비명은 옥문 밖 동그만 하늘을 가르고, 천지에 요동쳤습니다.

“아아악!”

“살려주세요!”

그는 병졸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아니, 세상에 법 없이도 사는 착한 사람에게 이럴 수가 있소?”

그러나 병졸들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법장은 병졸들의 손짓 한번으로 저만큼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쇠 담금질을 무려 일곱 번을 되풀이하고 나서야 아내를 놓아주었습니다.

아내의 몰골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저들이 왜 당신에게 이러는 것이오?”

법장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저승의 판관들이라고 세상사 일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저들은 나로 인해 전처가 죽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제가 당신의 후처가 되고 나서……당신의 전처가 돌아가셨지요.”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의 아내가 들어오고 난 다음 전처는 영문도 모르게 죽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집안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그 죄업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였지요.

아내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후처가 되었지마는, 전처는 스스로 목숨을 끓은 것이지 제가 해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소.”

“그렇지만 당신의 사랑을 빼앗긴 전처의 마음을 나와 당신은 몰랐을 테지요.”

“아!”

그제야 법장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록 내가 직접 전처를 해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전처는 저로 하여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법장은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제 집의 옷장 속에 500냥이 있고, 소가 한 마리 있는데 그것을 장에 팔면 1,600냥은 받을 겁니다. 돌아가시거든 어머님께 의논하여 저를 위해 〈법화경〉을 베껴 쓰시면 저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 말을 잊지 마시고 꼭 어머님께 의논하세요.”

법장은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둘째가 첫째를 죽였다.”

“그럼, 어머님은 그렇게 생각하셔서 여태껏 둘째를 괴롭혔습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다 그랬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자신은 까맣게 몰랐던 것이지요. 게다가 어머니는 전처를 끔찍이 사랑하였으니까요. 법장은 어머니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아내가 꼭 어머니와 상의하라는 뜻을 이제야 알았던 것입니다.

“아내는 하늘의 벌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 천벌을 각오하고 저를 기다린 겁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아내의 집 옷장으로 가 보시지요”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내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장과 어머니는 황급하게 아내의 옷장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정확하게 500냥의 돈이 꾸러미에 꿰어 있었습니다.

“아하, 내가 잘못 알아 착하디착한 애를 죽음으로 몰았구나!”

비로소 어머니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기왕이면 네 아내의 집에서 사경을 하거라.”

그 즉시로 법장과 어머니는 소를 1,500냥에 팔고, 경 베끼는 사람을 청해서 종이를 사 오게 하고는, 곧 아내가 있던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법장이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다만 어디선가 맑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어제 〈법화경〉 베낄 종이를 사 오게 했을 때 이미 하늘에 태어났소.”

그는 놀랍고도 기뻐서 그 뒤로 더욱 〈법화경〉을 깊이 믿고 받들었습니다. 하여 약간의 재물만 생겨도 〈법화경〉을 베껴 쓰기를 무려 19년 동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고 근처의 흥선사(興善寺)로 가서 공양행도 하여, 마침내 〈홍찬전(弘贊傳)〉 제 10권에 그의 이력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