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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가장 불교적인 사회 정책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과 교수
  • 승인 2016.07.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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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방해 감정 조정해
평상심 회복하는 정책이
효과적인 불교적 사회 정책

불교적 정치나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어렵다. 사회 정의구현에 중점을 두고 ‘대동(大同) 사회’를 이상적 목표로 삼는 이슬람교나 유교 등과는 달리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내면적이고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이라고 하지만, 중점은 일차적으로 전자에 두어져 있다. 보리심을 구해야 다른 중생의 교화에도 일조해 모두가 내면의 해방부터 얻는 것은 불가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순서다.

인간은 사회적ㆍ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에게 희로애락애오욕구(喜怒哀樂愛惡慾懼), 즉 8정(情)이 주어져 있다. 8정으로 이해되는 인간의 감성 상태는 인간에게 주어진 사회적ㆍ정치적 상황에 많이 좌우된다. 보리심을 구하기 위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마음 상태부터 얻어야 하는데, 사회ㆍ정치적 불안정과 궁핍함이 주는 노여움(怒)과 슬픔(哀), 증오(惡)와 공포(懼)의 격정 속에서 과연 쉽겠는가? 상구보리가 가능하게 하려면 일정한 사회ㆍ정치적 조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화중생도 마찬가지다. 생존 공포 속에서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중생들을 아무리 ‘교화’한다 해도 결국 “삼천배를 올리면 만사형통할 것이다”와 같은 류의 기복신앙으로 떨어지기가 대단히 쉽다.

깨달음에 가장 방해되는 감정을 제대로 조정해 평상심을 회복하는 정책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불교적인 사회 정책이 될 것이다. 8정 중 ‘상구보리 하화중생’에 가장 상반되는 감정은 무엇보다 구(懼), 즉 공포감일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태에서는 보리심을 얻기도 힘들고, 교화하기도, 교화받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기에 원시불교 시대 이후로는 불자들이 무외심(無畏心), 즉 공포감 없는 마음을 추구해왔다. 그렇다면 무외심 조성에 가장 도움이 될 사회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자면, 인간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강도나 야수도 두려움의 대상에 오를 수 있지만, 옛말에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즉, 피통치자들을 궁핍에 빠뜨리는 가혹한 정치야말로 맹수보다 더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가정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민생파괴라는 가정의 결과이고,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바로 궁핍, 즉 ‘포도청’이라고 하는 바로 그 ‘목구멍’이다. 그나마 의식주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한 식의 안빈낙도(安貧樂道)야 즐길 수도 있지만, 늘 배고픔에 시달리고 잘못하면 통신비나 교통비, 주거비를 못내 사회적 낙오자가 되어 결국 고독사할 것 같은, 그런 극빈(極貧)은 심신을 마비시킬 만한 공포감을 쉽게 유발한다.

88만원 세대인 현 젊은이들에게 지금 닥쳐오는 위기의 본질 역시 궁핍과 그에 따르는 공포감 같은 것이다.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별로 많지도 않은 정규직이 될 확률이 더 떨어질 것 같아 오매불망(寤寐不忘) 수능 생각에 잠긴다. ‘괜찮은 대학’에 가도 학자금 융자를 어떻게 갚을까, 졸업 후 취직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필수화된 언어연수를 위한 자금을 벌기 위한 알바를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 등 온갖 공포와 걱정에 빠진다. 졸업 후에는 생계 책임이 주는 위기ㆍ공포감을 더욱더 절감한다. 이와 같은 상태에 빠진 사람들 앞에서 여유롭게 보리심이나 교화를 논하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들에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기회를 주기 위한 가장 불교적인 사회 정책은, 바로 모두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사회가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교적 사회정책이란 중생들을 생계에 대한 공포를 해방시켜주는 정책에서 시작된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그 기본적 욕구를 해결해줌으로서 공포 없는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야말로 불교적 사회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과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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