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천지의 덕에 밝은 사람을 만물의 근본이요 천하의 대종(大宗)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서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으며, 타인과도 조화를 이루어서 사람들을 화합하게 할 수 있다.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사람의 즐거움(人樂)'이라 부르고,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하늘의 즐거움(天樂)'이라 부른다. 장자는 “나의 스승이여! 만물을 가루로 만들어도 난폭하지 않고, 은혜가 만대에 미쳐도 어질다 생각하지 않으며, 상고시대보다 오래되었어도 장수한다고 여기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실어서 온갖 형상을 조각하면서도 교묘하다고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했으니, 이를 ‘하늘의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옛말에도 “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자는 살아서는 천도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서는 만물의 변화에 순응한다. 고요할 때는 음과 덕을 같이하고, 움직일 때는 양과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자는 하늘의 원망도 받지 않고, 사람의 비방도 받지 않고, 바깥 사물의 구속도 받지 않고, 귀신의 책망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그가 행동할 때는 마치 하늘의 운행과 같고, 그가 고요할 때는 마치 땅의 평정함과 같다. 그리하여 한 마음이 안정되면 천하의 왕 노릇을 하니, 그때는 귀신도 빌미를 잡지 못하고 정신도 피로하지 않아서 한 마음이 안정되어 천하만물이 복종한다. 말하자면 텅 빈 고요함을 천지에까지 밀고 나가 만물과도 통하는 것이니, 이를 ‘하늘의 즐거움'이라 한다. ‘하늘의 즐거움'이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를 기르는 것이다.
 - 『장자』외편「천도」-

 문화는 사람들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모든 인문, 사회, 자연과학적 노력은 평화로운 인간 세상을 꿈꾼다. 유가의 선현들은 그러한 문화적 이상 실현의 관건을 개개인에 잠재한 윤리적 덕성에서 찾는다.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누구에게나 잠재하고 있는, 윤리적 덕성을 꾸준히 계발하여 실천하면 대동(大同) 사회라는 이상 사회가 구현되리라 믿는다.
 그런데 도가의 선현들은 유가의 이러한 목표를 ‘사람의 즐거움'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인간끼리의 조화와 평화를 누리는 ‘사람의 즐거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하늘의 즐거움'을 설한다. 유가 류(類)의 문화적 이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의적 기준 설정에 의거한다. 인간의 인식과 욕망과 가치를 조절하고 구성하는 인위적 체계 설정을 토대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의 즐거움'은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인간 중심적 문화 체계는 자칫 천지자연의 이법(理法)마저도 인간의 욕망과 이익에 맞추려고 한다. 도가의 통찰은 이러한 유가적 인문주의의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를 폭로한다.
 인간의 이익과 욕망에 따라 구성한 모든 문화적 코드들에 속박되지 않아, 천지 자연과 인간 사이에 구축되었던 인위적 장벽들을 해체하여, 홀연 천지 자연 그 자체와 합일되었을 때 드러나는 새로운 지평. - 그 지평에 서서 삶을 굴리는 것을 ‘하늘의 즐거움'을 누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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