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칼럼 (255호)

붓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

난 이따금 절에서 불상 앞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10대 너희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 어떤 이미지가 저들의 마음에 담기고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붓다는 어른이지. 너희 아빠와 엄마, 학교선생님과 다르지 않은, 나이를 먹은 어른이다. 어른이란 어떤 존재일까?

어쩌면 너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나 있었고, 이미 다 자라 있고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랄 필요도 없는 완전체인 존재? 그래서 마치 너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인생의 정답을 지니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아니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어른의 정체를 밝혀볼까?

난 십대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 어른이 되면 세상의 간섭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고, 내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하면서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어른이 되어 있는 지금, 나는 아주 커다란 깨달음을 갖게 되었단다. 그게 뭐냐고?

어른이라고 지혜로운 건 아니라는 사실이야. 어른이라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걸 알았을 때 난 소스라치게 놀랐어.

어른은 몸집이 조금 더 커졌고, 세월을 따라 묵고 낡아진 존재일 뿐이지. 세상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살아가는 요령이 조금 생겼거나,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가 다 빠져버려 그냥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지.

어쩌면 지금 너희는 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을지도 몰라. 하지만 세상 밖이 너희에게 마냥 좋지만은 않지. 결국 너희가 그다지 곱지 않게 바라보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말고는 세상 밖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몸집이 조금 더 커지고, 살아가는 데에 관성이 붙어버린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것이 어른의 삶이다. 과연 신날까? 평균수명이 한없이 늘어가기만 하는 시절에 꿈과 희망을 품은 채 풋풋하게 수십 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귀찮고 삶의 비열한 요령만 잔뜩 늘은 채로, 그렇게 몸은 늙고 정신은 낡은 채로 수십 년을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어른의 삶이란다. 너무 부정적인가? 하지만 사실이 그런걸 뭐.

난 여기서 너희가 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인생을 값지게 그리고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싶어. 그 길이 바로 붓다가 되는 길이지. 글의 첫머리에서 난 “붓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라고 말을 했지.

그렇다면 붓다는 또 어떤 사람일까?

아마 너희는 “깨달은 사람이요”라고 대답할거야. 뻔해. 그렇지?

아, 하지만 난 이런 대답, 정말 싫어. 완전 싫어.

뭘 깨달았는데? 어떻게 깨달았는데? 그리고 깨달아서 뭐가 좋아졌는데?

이런 것들은 생각해봤니?

너희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팍 드니?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딴 건 중요하지도 않아서 전혀 의식도 하지 못했을까?

자, 이제 물음표 행진은 이쯤에서 그만 두자.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붓다는 자신의 물음표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지. 궁금한 것이 참 많았던 사람이고, 그 궁금증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이지.

보통의 어른과 붓다의 차이점은 이거야. 보통의 어른들은 청소년기에 품었던 세상을 향한 불만과 불안과 궁금증이 그냥 희미하게 옅어져버리지. 무엇이 알고 싶었고, 무엇 때문에 답답했는지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말아. 어쩌면 계속 궁금해봤자 알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 지레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기를 관둬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붓다는 말이야, 그 질문을 끝까지 지니고 가는 존재란다. 그 질문이 생생하게 가슴속에 살아 있는 한 그는 죽지 않아. 그리고 사는 게 신나고 즐겁지. 이왕 사는 것, 좀 기분 좋게 남의 눈치를 보거나 주눅 들지 않고 활개치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나의 삶이 세상에 힘과 용기를 주게 된다면 더욱 좋겠지.

암튼 너희는 이제, ‘붓다는 묻는 사람’이라는 내 말에 이런 게 궁금할 테지?

“뭘 물어야 하는데요?”

어떤 것이라도 다 좋다. ‘난 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가’ 라는 질문도 좋고, ‘우리 집은 왜 친구네보다 부자가 아닌가’ 라는 질문도 좋다. 다만, 섣불리 해결해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이란 답을 찾는 여행길이지, 답안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문 하나를 또렷하게 가슴에 새길 때, 그 질문의 끝에 너의 행복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답을 찾으려 부지런히 몸과 정신을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이 나를 살게 해주며, 자신의 질문에 자신의 대답을 찾는 여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즐거움의 끝에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 채 세상을 살래? 아니면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며 네 앞의 부연 안개를 손사래 치면서 살래?

붓다는 분명 후자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말야. 너희도 그렇게 붓다가 되길 바란다.

 

이미령 칼럼니스트

이미령

BBS FM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으며, 책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대안연구공동체-직장인책읽기반> 에서 활동하고 있다.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등을 썼고, 여러 번역서가 있다. 2007년 행원문화재단 문화상 역경분야 수상, 불교여성개발원의 제3차 여성불자 108인에 선정되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