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명상 … 같은 점? 다른 점?

불교와 명상은 어떤 관계인가? 불교와 명상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은 넓은 의미의 수행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수행과 명상이 똑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불교와 명상의 같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명상(meditation)’이라고 하면 무언가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명상은 단체의 성격이나 집중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서 여러 가지 성격의 명상으로 나누어진다. 현대적 의미의 명상은 마음을 집중해서 얻게 되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대체의학 또는 심리치료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명상은 그 단체의 성격이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평창 월정사 템플스테이. <사진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목적에 따라 종류도 다양

‘명상’이라는 용어는 그 단체의 성격이나 집중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명상으로 구분된다. 이를테면 인도의 요가(yoga), 심리치료를 위해 개발된 각종 명상 프로그램, 이른바 존 카밧진(Jon Kabat-Zinn) 박사가 미국 메사추세츠대학교 의학센터에서 개발한 ‘마음챙김에 기초한 스트레스 감소(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MBSR)’와 이것을 더욱 발전시킨 ‘마음챙김에 기초한 인지 요법(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MBCT)’ 프로그램 및 ‘마인드 콘트롤(Mind Control)’ 등이 명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명상은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비불교도들도 명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실천하고 있는 명상과 불교의 수행은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MBSR이나 MBCT는 어떤 특별한 목적, 즉 심리적 치료를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요가의 명상은 육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이완을 목적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마음의 계발’이나 ‘정신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 수행과 명상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요가의 명상과 불교의 명상도 그 어원(語源)은 물론 지향하는 목적도 다르다.

요가에서 말하는 명상은 인도의 빠딴잘리(Patanjali)가 지은 <요가수트라(Yoga- sūtra)>에 나오는 개념이다. 명상은 요가의 여덟 단계 중 제7단계인 ‘댜나(dhyāna)’를 영어로 ‘meditation’이라고 번역했다. 이것을 다시 일본 사람들이 ‘명상(冥想)’이라고 번역했다. 이것을 우리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요가의 명상은 보다 높은 차원의 선정을 목표로 삼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은 빨리어 ‘바와나(bhāvanā)’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 바와나(bhāvanā)는 동사 바웨띠(bhāveti)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바와나는 완전한 의미의 ‘마음의 계발’ 혹은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그러나 영어 ‘meditation’은 빨리어 바와나의 의미를 완전히 살리지 못한 빈약한 번역이다. 빨리어 바와나에 해당되는 가장 적합한 우리말은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빳사나 명상’이 아니라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불러야 한다.

불교의 수행은 사마타 수행(samātha-bhāvanā, 止)과 위빳사나 수행(vipassanā-bhāvanā, 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를 ‘평온 수행’이라고 하고, 후자를 ‘통찰 수행’이라고 한다. 평온 수행은 평온함의 계발을 목표로 하고, 통찰 수행은 통찰력, 즉 지혜(般若, paññā)의 계발을 목표로 한다.

불교수행의 궁극은 열반증득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 두 가지를 동시에 닦을 수 있는 수행법은 사념처(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ā)이다. 사념처는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념처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네 가지 마음지킴, 즉 몸[身],․느낌[受],․마음[心],․대상[法]을 일컫는다. 사념처를 상좌부에서는 ‘위빳사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사념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념처의 위빳사나는 마음지킴(念, sati)과 알아차림(知, sampajañña)이라는 두 가지 심리적 기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념처에는 고요함을 뜻하는 사마타의 측면과 통찰을 의미하는 위빳사나의 측면이 모두 포함된다. 마음지킴이란 각성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이란 그러한 상태를 지속하면서 개개의 현상들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요히 집중된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눈을 떠 나가는 과정이 사념처이다.

한편 붓다는 사념처 외에도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선택해서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후대에 체계화된 ‘오정심관(五停心觀)’이 그것이다. 오정심관은 불건전한 심리상태를 제거하는 다섯 가지 수행법을 말한다. 불건전한 심리상태를 일으키는 다섯 가지는 탐냄,․성냄,․어리석음과 자아에 대한 집착[我執], 그리고 분별하는 산란한 마음 등이다. 붓다는 음욕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을, 분노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자비관(慈悲觀)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인연관(因緣觀: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발생하고 소멸함을 관함)을, 아집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계분별관(界分別觀 : 오온․십이처․십팔계를 관함)을, 분별심이 강한 사람은 수식관(數息觀)을 닦게 했다. 다른 문헌에서는 계분별관(界分別觀) 대신 염불관(念佛觀)을 삽입하기도 했다. 염불관은 불보살을 생각하여 모든 번뇌를 그치는 것을 말하는데,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닦게 했다고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에서는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현세(現世)에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현법열반(現法涅槃, diṭṭhadhamma-nibbāna)’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불교를 제외한 다른 명상은 사마타, 즉 삼매(三昧, samātha)나 선정(禪定, dhyāna)을 얻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것이 불교의 수행과 명상의 차이점이다.

참선수행 장면. <금강신문 자료사진>
마성 스님

마성 스님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M.Phil.),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마음비움에 대한 사색> 등이 있으며,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팔리문헌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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