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어렵지 않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명약

대광사 전통명상수련센터 선체조교실. <금강신문 자료사진>

명상이라는 보약

명상은 자신의 마음을 모아 편안한 상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그 마음이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활동은 몸의 활동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몸 또는 마음의 활동을 수치화하거나 어떤 부호로 표시할 수 있게 되었고, 명상은 그 근거를 통해 과학적인 것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명상은 마음이 불편할 때 주로 찾게 되는 약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물론 특별히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경우 과연 명상을 약으로 볼 수 있는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만, 그것도 일종의 보약으로 분류한다면 충분히 약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우리 의학 전통 속에서 보약은 특별히 어떤 곳이 아프지 않아도 몸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환절기에 먹거나 어렸을 때 먹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몸의 힘을 강화시켜 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정한 질병을 일으키는 균을 공격하는 서양 의학의 약과는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여 왔다.

우리 현실에서 그런 보약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불온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제 처방과 제조 과정의 투명성을 전제로 하여 다시 바람직한 보약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신뢰사회의 정착이 절실하다.

명상은 몸과 마음 중에서 주로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보약이고, 마음이 안정됨으로써 몸의 편안함과 건강까지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보약이 특별히 병이 없을 때라도 먹는 것이라면, 명상 또한 우리 일상에 특별한 문제가 없을 때 해두어 마음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명상이 필요할까?

명상이 보약이라는 우리의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명상은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된다. 특히 정신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이 명상의 목적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명상을 해서 자신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치 매일매일 운동을 통해 신체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명상을 통한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운동이 특별한 준비 없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비해, 명상은 어쩐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서 생긴다. 물론 운동도 헬스클럽 같은 곳에 가서 전문적인 강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동네 뒷동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 될 수 있을 만큼 일상화되어 있다. 다행히 지방자치제가 정착한 이후로 곳곳에 설치된 야외 운동기구들도 있어 운동은 이제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되었다.

그런데 명상은 여전히 조금 낯설다. 마치 도를 닦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많은 장애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몸과 마음 모두를 지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육체 운동 못지않은 정신 운동으로서의 명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명상이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평안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평안과 행복이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지, 그것이 정말 행복이 맞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부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명예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일부는 결국 그러한 삶이 자기 스스로를 해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스티븐 칸 외, 박영하·이철훈 외 옮김, <착한 사람은 행복한가?: 행복에 관한 철학적 성찰>, 씨아이알, 2016, 113쪽)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욕구들을 성찰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행복철학자 칸(Steven M. Cahn)과 비트라노(Christine Vitrano)는 부와 권력, 명예욕이 가져오는 삶의 허망함을 깨닫는 것이 행복이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대부분은 특별히 많은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의 공간 속에서 이런 욕구들을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을 잘 해내는 일이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바꿀 수 있으며, 이러한 능력이 바로 개인의 중대한 힘의 근원이다. ……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면 욕구에 의해 지배당하는 두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가 깨달은 것처럼 스스로를 절제시키는데 스승은 필요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를 지배하는 두려움을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된다.(위의 책, 115쪽)

불만과 두려움을 전혀 갖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세상일이나 자신에게 불만이 치솟을 때도 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원인은 모든 것들이 연기적 관계망 속에서 생겨나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두움[無明] 때문임을 붓다는 고통스런 수행과정을 통해 깨쳐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이 바로 불교(佛敎), 다시 말해서 붓다의 가르침이다.

명상이 붓다의 명상법에 한정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맞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상법을 찾는 일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자신의 호흡이나 의식의 흐름에 집중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최근에 생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잠시 눈감아보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명상이다. 그런 명상이라면 당연히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학과 교수.

박병기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윤리를 공부했고, 전주교육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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