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초대석 - 김종규 삼성출판사 명예회장

2011년 9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 생중계가 한창이었다.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따지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고, 내정자는 진땀을 흘렸다.

“내정자께서는 고고학 전공 교수로 특정한 분야에만 전문성이 있는데, 문화 전반을 아울러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어요?”

“네, 의원님.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족한 점은 문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같은 분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도움도 받아가면서 잘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김종규 회장?…. 음, 그 분은 저도 잘 압니다. 아무튼 부족한 부분은 김 회장 같은 분들에게 잘 물어서 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날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는 큰 무리 없이 끝났다. 왜 문화계에서 김종규 회장을 ‘문화계의 마당발’ ‘문화 대통령’이라고 부르는지 잘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문화계 마당발 혹은 문화 대통령
목포상고를 거쳐 동국대 경제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신심 깊은 불자다. 박완일 회장과도 인연이 깊어 전국신도회의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했고, 불교포럼에도 중심적으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불교계 제2종단으로 급성장한 천태종의 중앙신도회장에 추대됐다. 맡은 분야마다 성장과 발전을 일궈내는 ‘문화계 미다스의 손’ 김종규 회장은 이순(耳順)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그동안의 값진 경험과 경륜에서 비롯된 지혜를 후학들에게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직책을 맡아온 김 회장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디서든 오래 하지는 않는다. 본업이 아닌 분야에 자신을 너무 오래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을 가진 그는 최근 천태종 중앙신도회장을 맡았지만 이 일조차 오래할 생각은 없다. 천태종 중앙신도회장을 이제 문화계 인사가 맡을 때가 되었다는 총무원장 스님의 제안에 동의했고, 문화적 신행의 기초를 닦는 것으로 소임을 다할 생각이다.

김 회장은 자신의 인생을 크게 3막으로 구분해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인생 3막 이야기는 지난 2008년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30년은 준비하고, 다음 30년은 자기의 본업에 최선을 다하며, 나머지 30년은 그동안 배우고 이뤄온 것을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는 3단계의 인생계획이다.

원만한 인간관계 비결은 ‘자존심 내리기’
많을 때는 20여 개가 넘는 자리의 장(長)을 맡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원한 현역, 그가 왕성한 활동력과 변함없는 영향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그 첫 번째 비결로 ‘건강’을 꼽았다. 김 회장은 최근 KBS에서 방영하는 ‘TV회고록’이라는 프로그램의 26번째이자 마지막 출연자였는데, 먼저 출연한 분들의 공통점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었단다.

그동안 정치권의 구애도 없지 않았을 것이고,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없지 않았을 것인데, 오직 문화계의 일만 고집하며 우리나라 문화계를 움직이는 인물이 된 이유를 그는 “출판인이란 문화인들의 찌꺼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니, 문화계에서 활동해온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 회장이 깊은 교유를 나눈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구상, 김동리, 박경리, 중광, 김충렬, 신봉승, 오제봉 등 고인이 된 문화계 원로들과 현재 문화계를 이끄는 무산오현, 이어령, 임권택, 안숙선, 이근배, 신달자, 오세영, 조정래, 황석영, 김주영, 박범신, 김용옥, 박정자, 최불암, 김홍신, 이배용, 공훈의, 조용헌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주변에 늘 북적인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분들과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교유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의 어떤 점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하하, 다른 게 없어요. 누구를 만나든 (그에게서) 얻을 것을 먼저 생각하면 관계는 오래 못 갑니다. 주고받는 것이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자존심 내려놓는 겁니다. 그게 아주 중요해요. 예컨대 ‘지가 먼저 전화해야지 내가 하랴?’ 이런 식으로 처신해선 안 되는 겁니다. 누구에게든, 설사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도 자존심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먼저 전화하세요. 부처님 가르침 중에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부처님께서 참 좋은 말씀을 하신 것이죠. 다른 것은 몰라도 부처님의 이 말씀을 내가 실천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역(周易)에서 ‘겸괘’를 중시하듯이 불교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겸손함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동국대 출신인 김 회장은 총장이었던 백성욱 박사가 동국대 본관에 큰 강당을 만들고 강당의 이름을 ‘중강당(中講堂)’이라고 한 연유를 예로 들며 겸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동국대에는 대강당이 없습니다. 가장 큰 강당의 이름이 중강당이죠. 왜 그런가? 여기에 깊은 뜻이 숨어 있어요. 삼천대천세계라는 큰 강당이 있는데, 감히 대강당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참 멋지지 않아요? 이런 것이 불교의 매력입니다.”

인생계획 제3막을 힘차게 지나고 있는 김 회장은 그동안 얻고 배운 것을 두 갈래로 회향 중에 있다. 출판사 경영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이익은 삼성출판박물관을 세워 되돌려 주고 있고, 젊었을 적부터 평균 한 세대 위였던 어르신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얻은 주옥같은 삶의 지혜는 4.19 이후 태어난, 사회 각계에서 중심적 활동을 하고 있는 청장년 40여 명으로 구성된 ‘월단회(月旦會)’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박물관에서 데이트하라”
김 회장은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으로 일할 때 그 지역의 많은 어르신들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다. 당시 그분들로부터 배운 살아 있는 가르침들은 그가 경영해온 삶의 지남(指南)이 되었다. 김 회장은 지금도 부산 지사장직을 마치고 서울 본사로 돌아오던 날, 마음속 깊이 존경했던 청남 오제봉 선생이 열어준 송별파티를 잊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가르침을 주셨던 평균 30세 이상 차이 나는 어르신들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젊은이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그의 원력은 이때 세워졌고, 오늘날 월단회를 통해 이행 중이다.

김 회장은 삼성출판박물관이 당산동에 있을 때부터 인문학 강좌를 열어왔다. 구기동으로 옮긴 후에도 SMA아카데미를 만들어 최근까지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당산동 시대에는 철학을 중심으로, 구기동 시대에는 역사를 중심으로 강좌를 진행해왔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을 향해 ‘데이트를 하려면 박물관 가서 하라’고 권한다. 박물관 데이트만큼 품격과 여유를 갖춘 데이트가 없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곳이고, 박물관에 과거의 소중한 것들을 모아놓은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를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수많은 어르신들과 교유하며 가르침을 받았지만 김 회장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스승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 효당 최범술 선생이다. 그는 효당에게 차를 배우며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가르침을 얻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적어도 화목하고 존경하며 맑고 고요하게 사는 경지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굴지의 출판사 사장과 회장을 거치면서 기업가로도 크게 성공을 거둔 김 회장에게 최고경영자로서 지켜야할 원칙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날 할 업무를 중요한 순서대로 적어놓고 차례로 일을 하라’는 나폴레옹 힐이 세기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에게 주었던 가르침이 그것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원칙만 잘 지켜도 성공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김 회장은 확신한다.

김 회장이 후배들에게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으라고 강조하는 대표적 가르침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후한시대 최원(崔瑗, 77~142년)의 ‘베푼 것은 잊어버리고, 받은 것은 잊지 말라’(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는 가르침이고, 또 하나는 <논어>에 나오는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함은 즐김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이다. 전자는 인간관계에서, 후자는 일과 관련해서 김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가르침이다.

글 : 이학종 시인 
사진 : 이강식 기자

지인에게 줄 세화에 글을 쓰는 김종교 명예회장.

김종규 회장
삼성출판사를 국내 첫 상장 출판사로 성장시킨 경영자로서, 삼성출판박물관을 세우고 한국박물관협회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회장을 맡아서는 협회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켰다. 몇 년 전부터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아 월 1만 원 후원회원 1만 명을 순식간에 끌어 모은 우리나라 문화계의 대부이자 빼어난 문화행정가이다.

이학종 시인.

이학종
양평에서 출생했으며, 1988년 4월부터 현재까지 불교언론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산승의 향기>, <선을 찾아서>, <돌에 새긴 희망>, <인도에 가면 누구나 붓다가 된다> 등이 있다. 미디어붓다 대표기자이자 미붓아카데미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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