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과 태국, ‘전통 계승과 발전’ 차이 실감
대만 고궁박물관 볼수록 진귀한 보물 가득
불광산사 열린 경영, 불교의 세계화 선구자

▲ 대만 불타기념관

여행에서 두 번째로 순례한 국가는 네팔인데, 불교신도들에게 영원한 성지인 룸비니가 있는 곳이며, 세계 10대 최고봉 가운데 8개를 보유한 나라다. 힌두교도가 80%이고 불교도는 10% 밖에 안 되는데 신도들이 서로 섞였다고 한다.

룸비니와 카트만두는 많이 달랐다. 룸비니는 평지에 있어 무난했지만 카트만두는 입성부터가 달랐다. 기류가 높은 설산에 막히면서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데, 이날도 네팔의 설산은 우리 일행의 바람과 상관없이 악천후를 만들었다. 카트만두를 향하는 비행기가 날씨 탓에 뜨질 못해 야간에 차량을 빌려 이동했다. 높고 높은 산들을 줄기차게 넘어가는데 기사들은 운전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무질서 속의 카트만두

▲ 마오 스님.

어두운 야간에 거칠고 좁은 비포장 산악 길을 과감하게 달렸다. 내 좌석은 봉고차의 맨 뒷좌석이라 창 곁에 앉으면 여지없이 천장이 나의 머리를 때렸는데, 그래도 잘 잤다. 새벽 4시경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나가르콧(Nagarkot) 전망대(2,195m)에서 일출을 봐야한다고 짐만 두고 바로 출발했다. 결국 구름 때문에 전망대에서 사진만 찍고 왔다. 고생은 많았는데 결과가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도 있어서 다음을 기약한다.

호텔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 시내로 관람을 나섰다. 쿠마리 사원, 살아있는 여신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여신(女神)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자. 시커먼 목조건물들로 음침한 분위기의 3층에서 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팔의 왕도 와서 절을 한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3살 정도에 와서 초경 때까지 여기서 지낸다고 하는데, 그동안 친척은 물론이고 지인도 못 만나고, 학교교육은커녕 가정교육도 없다가 초경이 지나면 가정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3살에 왔으니 친구도 없을 것이고 가정에 돌아가도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선생이 와서 교육을 시키고, 정부에서는 생활지원금과 결혼지원금도 지급을 한다고 한다. 여신의 말로가 평범한 삶보다 고생스러워 보였다.

쿠마리 사원을 나와서 시내를 조금 걸으니 왕궁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 왕궁들은 영화에서 보던 높고, 화려하고, 커다란 건물들이 아니라, 시커먼 조금 큰 목조건물들로 길거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지진의 피해로 모든 건물에 지지대를 설치하였다. 많은 비둘기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왕궁이라서 화려하고 정련된 느낌이라기 보다는 많이 초라해 보이고 건물도 거리도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에 어렵게 온 것은 틀림없지만, 자리를 빨리 뜨고 싶어졌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거대한 보드나트 스투파(Bouddhanath Stupa)의 관람을 마지막으로 일행은 네팔에서 자리를 떴고, 태국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거대한 설산의 파노라마를 잠시 지켜보았다. 

방콕,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열사흘째 날은 소승불교의 나라인 태국의 방콕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태국은 정말 신기하게도 역경 속에서도 식민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프랑스와 영국이 아시아를 식민지화 할 때, 태국은 두 강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국 식민주의를 펼쳐나갈 때는 곁에서 일본을 도왔으며, 그러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다시 연합국을 도와 한국전 때 두 번째로 한반도에 연합군을 파병했다고 하는데, 칼날 위를 교묘하게 걸어가는 전술가 같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태국사람들은 한국의 드라마, 연예인, 음악 등을 포함하여 한국을 좋아했다.

방콕은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 한다. 태국의 왕궁(Grand Palace)과 에메랄드 사원(Wat Phra Kaew)은 전날 네팔과 다르게 화려하고 오색찬란한 빛으로 일행들을 환대했다. 역사는 짧아서 왕궁은 1782년에 세워졌고, 66cm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에메랄드 사원은 1864년에 건설되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무늬를 넣은 흰 대리석으로 벽을 만들어 가까이에서 보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색유리조각, 거울 조각 등 온통 여러 가지 빛을 반사하는 물질들을 조악하게 벽에 붙여 호화찬란한 빛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원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많아서 상당히 이색적으로 보였다.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였다. 망고 조각을 먹으면서, 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강을 오르다 보니 수상가옥이 즐비하고, 운하로 접어들자, 배 한척이 다가왔다. 여기가 수상시장이라고 하는데, 바나나 맛이야 다 같겠지만, 여기 바나나 맛이 궁금해서 몽키 바나나 한 꾸러미를 1불에 샀다. 운하에 사는 메기를 관람하고 강변에 있는 탑 높이가 82m인 새벽사원(Wat Arun)도 멀리서 보았지만, 강을 내려오는 보트여행은 밋밋했다. 태국 가이드 하시는 분이 점심공양은 태국 시내를 잘 관람할 수 있는 시내 백화점에서 한다고 한다. 먹을 것이 많았던 그 식당은 제법 비싸보였지만, 대체 빈자리가 없다.

태국 사람들은 평균 월급이 한화 6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 식당의 손님들은 모두 돈이 많아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지출을 많이 하는 소비성향 때문에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식당을 나와서 태국스님들의 탁발공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행은 공항을 통해서 타이페이로 향했다. 대만 타오위안국제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세계를 향한 전법도량, 불광산사

열나흘째 날은 국민의 93%가 불교도인 섬나라,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였다. 야류해상공원을 관람했는데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해안가 사암지역의 바위들이 기이한 모양으로 형성됐다. 오전은 해상공원에서 여정을 보냈고, 오후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정을 보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신석기 시대의 출토품에서부터 중국 역대 왕조의 보물 등 세계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문물이 약 70만 점 가량 소장되어있다고 하는데,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훌륭한 유물들이였다. 이곳처럼 많은 진귀한 금과 보석들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도자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청나라 말기시대까지 시대와 국가 순으로 다 볼 수 있었고, 서예작품에서는 입을 다물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았다. 대만사람들은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을 내다 팔면 중국이 다 살 것이기 때문에 대만이 망할 리 없다고 말한다고 하는데,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런 박물관은 시간을 들여 좀 더 보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속철도 편으로 카오슝에 도착해 하루를 마감하였다.

열다섯 째 날은 이번 순례의 마지막 날인데, 대만의 현대 불교를 관람하였다. 바로 대만불교의 총본산이며 성운대사(星雲大師)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역사는 50년 정도로 짧으나 대만전체에 200여 개가 넘는 지역사찰을 거느린 불광산사(佛光山寺)였다. 처음 간 곳은 불타기념관으로 불광대불을 중심으로 앞쪽으로 팔정도를 뜻하는 8개의 탑이 두 줄로 서있다. 비교적 평지에 지어졌는데, 규모가 압도적이다. 첫 느낌이 이것은 대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만, 전날 공항에서부터 여기까지 쭉 봐왔던 이 작은 나라에서 이러한 디자인과 규모의 건축물들을 어떻게 창조해서 만들 수 있을까? 부처님 진신사리 참배를 마치고 본산 경내로 이동하였다. 경내는 무공해 전기차를 운영했다.

불광산사 총무원장님을 접견하고 대만불교의 취지를 들었다. 상당히 개방적이고 세계적이다. 사고의식도 대만이라는 국가에만 묶여있지 않다. 포교사업들도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법당, 관음전, 그리고 선방들을 두루 관람하였다. 스님들의 수행방법도 각 개인차를 인정하여 다양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광산사처럼 우리 구인사가 주체성과 인적, 조직적, 그리고 규모적인 외형성에서 세계적인 면모로서 자리매김하려면 상당히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거듭나는 불광산사는 확실히 인상적이였다.

불광산사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만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대만을 리드하는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이 중국 공산화 과정에서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피난을 온 200만 명의 일부이며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교육적, 사상적 배경에서 중국 대륙을 움직이던 인물들이라 현재의 대만의 각 분야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틀림없다. 불교문화도 예외가 아니라 소국 중심이 아니라 중국본토의 대륙적인 기질이 보이며 세계중심에 서고자 하는 것 같다. 

안으로 성장하는 소리를 듣다

한국 불교는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움츠려들고, 일제에 의해 말살되고, 한국전쟁에서 폐허가 되었으며, 근대 개발시대에서는 서양문물에 의해 배척되었다. 그래도 한국 천태종은 불모지에서 중창되어 이렇게 성장하였으며, 아기자기한 면모는 있지만 그 위상을 살펴본다면 불광산사와 견주어 전혀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버스와 고속철을 이용해 타이페이로 돌아오는 길에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이날 저녁은 타이페이에서 차시장과 용산사 등을 둘러보았다. 다음날 인천공항을 통해서 저녁 늦게 구인사에 도착하면서 길었던 성지순례의 여정을 모두 마쳤다.

돌이켜 보건대, 이번 성지순례는 스케줄에만 맞추려고 너무 피상적으로 이루어진 점이 없진 않지만,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국가의 불교 융성과 쇠퇴를 검토해 보면, 불교는 국가가 안전해야 지킬 수가 있고, 실천이 따라야 발전이 이루어지며, 대중과 함께 있어야 번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행에서 충분한 몸 관리로 건강을 잘 지켰던 것이 좋았고, 항상 정성을 쏟아 마음자리 잘 지켰던 것이 기뻤다. 매일 잠이 들기 전에는 〈묘법연화경〉을 읽고,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는 〈초발심자경문〉을 읽었다. 스승께서는 안거수행을 끝내고 나면 마음자리가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될 거라 하셨고, 또 수행자는 마음이 넉넉하면서도 아주 지독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순례를 하는 동안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부처님의 자타카(Jataka) 이야기를 통해 넉넉하면서도 지독한 보살의 마음을 원 없이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 에메랄드 사원과 궁전
▲ 방콕 에메랄드 사원
▲ 불타기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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