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속 달 공양하려던 공덕 … 훗날 500 아라한에

 

그는 달이 물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 물속에 비친 것을 알면서도 부처님의 위신력을 믿은 것입니다. 삶과 죽음, 그런 것을 초월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뒷날 다시 태어나 500아라한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에 500마리의 원숭이가 무리를 지어 숲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숲속에는 맛있는 과일이 철에 따라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원숭이들은 과일을 따먹고는 향기로운 샘물 곁에 있는 큰 과일나무 밑에 모여 즐겁게 뛰놀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무릉도원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임금 때문이었습니다.

현명한 임금 원숭이는 과일 따는 방법, 서로 다투지 않고 힘을 모아 과일을 따서 나누어 먹는 법, 새끼들을 보호하는 법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서로 존경하는 법과 나이 먹은 어른 원숭이를 공경하는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착한 원숭이는 칭찬해주고, 나쁜 일을 저지른 원숭이는 나무랐습니다. 착하고 슬기로운 임금 밑에서 원숭이들은 평화롭게 살아갔습니다.

원숭이들은 그 누구도 임금에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행하는 모든 것은 법이 되었고, 임금 또한 다른 원숭이와 똑같이 먹고 똑같이 놀았습니다. 그는 그냥 놀이의 대장이고, 회의의 사회자였습니다. 그는 함께 하는 가장 멋진 놀이를 알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가장 멋진 단어들을 알았습니다. 그의 말은 늘 조리가 있었고, 처음과 끝이 명료했습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임금이 된 원숭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거창하게 색칠할 아버지도 없었고, 재산도 없었습니다. 다만 누구하고나 잘 놀고, 누구하고나 많은 이야기를 하였기에 원숭이들 스스로 임금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아랫마을에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스승, 부처님께 온갖 공양거리들을 이고지고 가서 받들어 올렸습니다.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복을 내려달라고 말이지요. 더구나 그들은 그것을 남들이 다 알게끔 소문까지 냈습니다.
“난 이번에 부처님께 쌀 100석을 공양했네.”
“난 돈이 없어서 꽃 공양만 했지.”

그러면서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들의 가족은 무탈하다고 믿었습니다.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공양했으니까요.
그 소식은 원숭이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잘 흉내 내는 원숭이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간보다 못할 게 없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부처님께 공양하자.”모든 원숭이들의 말을 다 듣고 난 임금이 말을 꺼냈습니다.
“그렇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부처님께 공양하자. 밤낮으로 허구한 날 싸움이나하고, 다른 종족을 핍박하는 인간들도 부처님을 위해 무언가 성의를 표시하는데, 우리도 우리의 성의를 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희들의 의견은 어떤가?”

임금의 말에 모든 원숭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처님께 무엇을 공양할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원숭이들은 임금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그렇습니다. 우리는 여직 임금님께서 시키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럼, 부처님께 무엇을 공양할지는 임금님께서 결정해주십시오.”

기쁜 회의를 마쳤지만 임금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려 깊은 임금 원숭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자신이 다스리는 원숭이들도 좋아하고, 부처님도 좋아하시는 아주 특별한 공양물로 내놓아야 할 텐데…. 임금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달이 밝았습니다. 크고 둥근 달이 휘영청 밝은 빛을 뿌려 주고 있었습니다. 임금 원숭이는 오직 부처님께 드릴 공양물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부처님이 받으시고 빙그레 미소 지을만한 것, 그러나 도무지 그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호숫가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 임금 원숭이는 목이 말랐습니다. 천천히 샘물에 입을 댄 임금 원숭이는 문득 달이 물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금 원숭이는 크게 놀랐습니다.

“아하 바로 이것이로구나!”

그는 물을 다 마시는 것도 잊고 급하게 원숭이들을 불렀습니다.

“다들 모여라. 빨리 모여라!”

500마리의 원숭이는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물가에 모여들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임금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오늘에야 내가 부처님께 공양할 공양물을 선택하였다.”
“그게 무엇입니까?”

임금은 크게 웃으면서 호수에 뜬 달을 가리켰습니다.
그렇지만 원숭이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빨리 말씀해주세요!”

원숭이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임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저 변함없이 떠 있는 하늘의 달 같은 분이다. 그 달은 은하수 보석 밭에 닳고 닳아서 둥글게 된 것이 아니다. 설사 초승달이나 반달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볼뿐 본래 달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부처님도 그러한 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저 달을 따다가 부처님께 바치는 거다. 아마 인간들은 생각도 못했을 걸.”
그러자 여기저기서 원숭이들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만세!”
“만만세!”

원숭이들은 앞을 다투어 샘가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달은 그들이 건질 때마다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다시 달이 동그랗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 건지고, 또 건지기를 하였지만 달은 항상 물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모두들 와글와글 떠들어댔지만 달을 꺼낼 재주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샘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임금 원숭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자, 이렇게 하자. 내가 저 나무 위에 올라가 물가로 늘어진 가지를 잡고 있겠다. 너희들은 차례로 내 꼬리를 잡고 물속으로 들어가거라. 그렇게 해서 맨 끝에 달린 원숭이가 아주 깊숙이 들어가 달을 건지면 된다.”

말을 마친 임금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499마리의 원숭이가 꼬리를 잡고 매달렸습니다. 맨 마지막 원숭이가 앞 원숭이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습니다. 이윽고 그 원숭이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때 우지직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꺾어져 버렸습니다.

“아아아!”
“으윽!”

500마리의 원숭이는 모두 깊은 샘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샘물은 한동안 크게 일렁댔습니다. 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물은 고요해졌고, 다시 달이 떠올랐습니다. 샘 속에 빠진 500마리의 원숭이들은 아무도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달은 본래 샘물에 빠진 게 아닌데 그림자인 달을 잘못 알고 건지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훗날 미련한 중생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원숭이의 임금도 두고두고 어리석은 지도자로, 그들을 따르던 그 많은 원숭이들 또한 무지의 대명사로 지칭되게 된 것이지요. 무릇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려면 참으로 지혜로워야 하고, 항상 슬기를 닦아야 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로 어른, 아이에게 세상의 법도를 가르쳐주며 모두가 오순도순 살게 했던 그 임금 원숭이가 결코 달을 건지지 못하다는 걸 몰랐을까요?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분명 알았습니다. 그는 달이 물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 물속에 비친 것을 알면서도 부처님의 위신력을 믿은 것입니다. 삶과 죽음, 그런 것을 초월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뒷날 다시 태어나 500아라한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모두가 현명하고 슬기롭습니다. 감히, 아니 우습게도 물속에 빠진 달을 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립습니다. 부처님께 보다 특별한 공양물을 바치려했던 원숭이 임금과 그 무리들이 그립습니다.
원숭이 해라고 하는 2016년 부처님오신날, 정말 옛날 옛적 세상을 헤아릴 줄 알았던 임금 원숭이와 현명한 지도자를 두었던 많은 원숭이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우봉규 작가는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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