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 종교와의 대화에 준비되어 있는가?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종교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제시한다. 하지만 믿음에 바탕을 둔 종교 특유의 배타성으로 인해 반목과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종교이기도 하다. 이에 교수들이 모여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해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와 예수'란 주제로 지난 5월 19일 정동 성공회 강당에서 모였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각자의 교리와 입장을 떠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되었고, 상대방 종교를 통해 더욱 더 자신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선명하게 알게 된다는 점에 발표자와 참가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행사에 참가하면서 유독 눈에 뜨인 것으로서 기독교 신학 교수들 중에는 불교적 이해가 깊어 불교 측의 발표에 대하여 자유롭게 논찬을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았고, 또 행사장에는 동국대에서 불교 연구로 학위를 하고 있는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불교 측에서는 기독교를 깊이 연구하는 이들이 거의 없어 부끄럽게도 모임을 처음 기획했을 때처럼 기독교 측 발표자에 대하여 불교학자가 논찬을 하지 못하고 결국 한국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를 볼 때 불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고 수용적이라는 일반 인식과 더불어 최근 들어 더욱 타 종교와의 대화를 거론하고 있는 한국 불교계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타 종교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불교를 전공하며 학위과정에서 공부하고 계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처럼 과연 우리 주위에 스님의 신분으로 신학대학에서 신학연구를 하고 계신 분이 얼마나 계실까. 불교계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불교학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빈곤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 간의 대화라는 것은 단순히 구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하여 무지한 채 그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적당주의적 입장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전혀 없으면서 좋은 것이 좋다는 겉치례식 태도이며,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무시하고 있는 것에 다름없다. 상대방 종교에 대하여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불교계라는 것은 타 종교인에 대하여 ‘부족한 너희들이나 와서 배워가라'는 식의 오만함이거나 아니면 법상(法相)에 찬 좁은 불교계의 모습인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다.

각자의 전통 속에서 몇 천 년을 두고 내려온 종교 간의 대화와 소통을 위해서 서로 상대방에 대하여 관심을 지니고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 없다면 무엇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대화를 주장하는 표면과는 달리 이처럼 타 종교를 진정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최근 한 과학자의 연구와 논문 조작사건에 있어서 서로 같은 종교인이면서도 같이 대화하고 논의하며 문제를 풀어가기 보다는 일종의 타 종교에 대한 피해망상적 입장을 보이며 행동한 일부 불교인들이 등장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진정한 종교 간의 대화와 공존을 위해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아 한국 불교계가 구호만이 아니라 이웃 종교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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