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짓는 악업
참혹한 과보 받아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중노년의 여성 연기자들이 래퍼 8명과 팀을 이뤄서 랩 서바이벌을 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보았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서 노래하거나 말을 해온 이들이라 리듬에 맞춰 빠르게 강한 톤으로 가사를 실어내는데 그 모습이 힘에 부쳐 보인다. 보는 나도 힘이 들었다. 뭔가 어색하고 도대체 영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래퍼 한 사람이 그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해줬다.

“랩은 뱉는 거예요.”

아하, 바로 그 차이였다. 씹고 뱉듯이 가사를 읊조려야 하는데 그저 강하게 큰 소리로 불러댔으니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어색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비트에 맞춰 뱉어내는 식의 노래 부르기도 하나의 음악장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뱉는다’는 말은, 입 안의 것을 씹어서 삼키지 않고 말 그대로 토해내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며 내미는 행위다. 랩(rap)이란 것이 1970~80년대 미국 흑인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외된 자신들의 처지를 독특하게 풀어낸 저항방식이란 사실을 떠올려보자면, 이 ‘뱉는다’라는 방식이 조금 더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들은 의사표시를 이렇게 배설하듯이 뱉어내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방송에서 ‘삐’ 소리와 함께 무음 처리될 정도의 욕설도 담고 있다. 이들은 왜 말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고 욕설을 뱉어내는가.

경전에서는 누누이 말에 대한 메시지가 등장한다. 악업 가운데는 거짓말과 이간질하는 말, 욕설과 꾸밈말의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이 대표적이다. 이런 네 가지 악업의 끝은 참혹하다. 반면 말을 제대로 하는 것(正語)은 팔정도 가운데 하나에 들어간다.

팔정도는 제대로만 닦으면 아라한의 반열에까지 오른다는 수행법이 아니던가. 말 한 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과보를 불러들이거나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경지로까지 그를 보내준다는 경전을 읽을 때면 전율이 일기까지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성자의 길과는 상관없이 굴러가고 있다. 달리 표현할 길 없어 자신들의 처지를 간간이 욕설을 섞어서 뱉어내듯 노래하는 힙합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그런데 정치인들조차 거침없이 말을 뱉어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들의 말은 거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들을 거침없이 쓸어버리겠다고 하고, 범죄자들을 처형시키겠다고 하고,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하고, 누군가를 지목해서 공공의 적으로 단호하게 규정해버리고 있다.

연단에 올라서서 카메라를 향해 이런 말들을 뱉어낼 때 크게 환호하는 대중들이 어김없이 있고, 그들이 실제로 표를 던져주기까지 한다.

필리핀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두테르테가 그렇고, 현재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트럼프가 그렇다. 두 사람의 입장이 다르기는 하지만 저들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욕설이 뒤섞인 선거공약이 대중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은 무얼 말하고 있을까.

대들지 말고 참고 살라는 데에 길들여져 온 사람들은 억눌려왔던 감정이 툭 툭 뱉어내지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지 간에 일단 뱉고 보니 속은 시원하다는 것인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거칠고 험한 말(惡口)의 과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우리는 어쩌다 거친 말을 배설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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