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구업 참회
말과 행동 불일치
거짓말 이젠 그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 둘러대기를 잘하는 사람,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한다. 남을 잘 이용하는 사람, 약삭빠른 사람, 남의 마음을 잘 간파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 비신사적인 사람, 비겁한 사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사리(事理)가 분명한 사람, 옳고[義] 그름[不義]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을 똑똑하다고 했는데, 요즘엔 타인을 재빠르게 분석, 활용할 줄 아는 것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것도 지극히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 따위를 위하여 악용하는 것을 똑똑하다고 여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 하여, ‘교묘(巧妙)한 말로 꾸며대는 사람, 그럴듯한 말로 아첨하는 사람치고 착한 사람은 드물다’라고 강하게 ‘말 잘하는 것’을 비판했다. 공자의 이 말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금 한국 정치인들은 둘러대기, 말 바꾸기의 명수이다. 그 악영향의 도미노현상으로 우리나라는 각계각층, 심지어는 일반인들까지도 요리조리 교언영색의 달인이 되었다.

우리 불자들 가운데에도 이런 부류가 적지 않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교언영색의 달인에 가까운 이들이 속속 탄생한다. 입으로는 매일 같이 ‘기어중죄 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사기, 꾸며대는 말한 죄 오늘 참회합니다), 망어중죄(妄語重罪,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한 죄),  양설중죄(兩舌重罪, 이간시키는 말한 죄)’를 참회한다고 독송하면서도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 위대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여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못 된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를 보면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은 ‘비천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노와 증오심이 많고 사악하며 그릇된 견해를 고집하고 권모술수를 일삼는 사람, 이런 자를 일컬어 비천한 사람이라고 한다.”
“잘난 척 자신을 치켜세우고 남을 헐뜯으며 자만심으로 목에 힘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비천한 사람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똑똑하고 영리하다면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항상 상대방의 단점을 수집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 이런 사람과는 보편적인 인간관계 이상은 가져서는 안 된다.

이런 가람은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가지고 논해도, 옳고[義] 그름[不義]보다는 현재 자신의 위치,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논한다. 무언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그럴싸한 논리와 말로 포장하여 옳다고 하고,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으면 역시 그럴싸한 논리로 부정한다.

그런데 정의를 표방하고 있는 언론매체도 점점 물이 들어서, 한 사건을 다루는데도 각양각색이다. 언뜻 보면 그럴싸한데, 눈을 뜨고 보면 의도가 뚜렷하다. 요즘 언론은 정의는 사라지고 괴변으로 독자들을 혼란시킨다. 심지어는 학술지(學術誌)도 학문성과 순수성을 잃고 포퓰리즘과 이익에 눈이 어두워 장난을 친다. 무엇이 의(義)이며, 무엇이 불의(不義)인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다 떨어진 신발에 불과한 것인가? 부처님오신날이다.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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