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 공덕으로 혀 뽑히는 벌 벗어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무서운 것이다. 더구나 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경을 읽었다고 오만과 독선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나만이 옳다고 사람들을 기만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과 귀가 막힌 줄 알고 행동했다. 나만이 세상이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더 어리석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부처님 말씀을 앵무새처럼 외면서 말이다.

용삭 연간(당나라 고종 661~663년)에 경성 사람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순의문을 지나는데 뜻밖에 말 탄 사람 두 명이 쫓아왔습니다.

“저 놈 잡아라!”

고문은 난데없는 외침에 무작정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쫓아온 이들은 바람처럼 빨랐습니다.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요”

그러자 그들은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마구 달려들었습니다.

“우리는 염라대왕의 차사로서 너를 잡으러 왔노라.”

고문이 더욱 겁이 나서 이리저리 피하려 하는데 사자가 앞뒤로 달려들어 결국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소!”

“나는 하늘을 우러러 착하게만 살아왔소.”

“부처님, 살려주세요!”

고문이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들은 고문을 말에서 끌어내려 머리카락을 움켜쥐니 마치 칼로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에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그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에 의해 방에 눕혀졌습니다. 밤이 이슥해서 간신히 눈을 뜬 그에게 가족들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도대체 누가 믿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가 저승사자들에게 붙들려 간 곳은 염라대왕이 거주하는 명부전이었습니다. 끌려가자마자 그는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고문은 감히 염라대왕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빌었습니다.

“저는 이승에 살면서 죄 없이 살았는데 대왕께서는 어떻게 이리 심하게 저를 박대하시는지요?”

그러자 염왕이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절에 가서 스님의 과실을 훔쳐 먹었으며, 또 어찌하여 부처님의 허물을 말하였는가?”

고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하, 언젠가 가까운 화도사란 절에서 너무 먹음직스럽게 생긴 살구를 몇 개 몰래 먹은 게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너무 탐스런 살구이기에 그리 큰 죄가 된 줄을 모르고…. 그러나 맹세코 부처님을 허물을 입에 담은 적은 없습니다.”

“모르고 저지른 죄가 더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예?”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네가 행한 죄를 직접 보여주마.”

염왕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사자들이 그를 커다란 거울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염라왕의 명경대이지요. 고문은 그 때까지 당당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법화경〉을 많이 독송하였고, 부처님의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수없는 강설을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명경대 거울 속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는 꽃 피는 봄.

자신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대중들 앞에 나타난 고문은 확신에 찬 설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보다 〈법화경〉을 많이 읽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보다 설법을 많이 한 거사가 있겠습니까? 지금 부처님 제자라고 하는 스님들 중에, 나보다 불법을 잘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현세의 부처님이 모를 진짜 불법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의 부처님, 그 분들의 불법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현세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르는......”

너무 큰 부끄러움으로 차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래도 네 죄가 없다고 하겠느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고문은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주 고통스러울 텐데 견딜 수 있겠느냐?”

“대왕이시여, 제가 범한 죄가 수천 번 목숨을 끊어도 합당하온데 무슨 벌인들 원망하겠습니까?”

“오냐. 그렇다면 너에게 알맞은 벌을 내리겠노라.”

고문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염왕은 천천히 판결을 내렸습니다.

“네가 살구를 훔친 죄는 합당히 불에 달군 철환 450개를 4일 동안 받아먹어야 하겠고, 부처님 허물을 말한 죄는 합당히 그 혀를 빼서 밭을 일구는 쟁기로 갈아야 하겠다.”

고문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행히 염왕이 잠시 놓아주기에 지금 깨어났노라.”

방안 가득 모인 가족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말한 고문의 뺨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다시 쓰러져 입을 다물고는 마치 무슨 음식을 우물우물 씹는 모양을 하는데, 온몸이 빨갛게 불에 타 아프고 견디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더니 며칠이 지나 깨어났습니다.

가족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요?”

고문은 긴 한숨을 쉬며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지옥으로 끌려가 나흘 동안 불에 달군 철환 450개를 다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과 뼈가 타는 그 고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450번을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 사이 그는 간절히 염왕을 찾았습니다.

“대왕님, 차라리 저의 목숨을 끊어주십시오!”

그러나 염왕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욕한 죄가 어떠한 것인지를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그러나 벌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고문이 가까스로 450번의 철환 삼키기를 마치자 또 다른 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혀를 빼서 밭을 가는 쟁기로 갈아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죄를 관장하는 관원들이 아무리 고문의 혀를 빼려고 해도 고문의 혀는 빼지지 않았습니다.

“엄중해야만 할 벌이 왜 이리 늦느냐?”

염왕이 꾸짖자 죄복을 감정하는 소장이 말했습니다.

“고문은 비록 부처님을 욕하는 불경죄를 저지르기는 하였지만 항상 〈법화경〉을 읽었기 때문에 혀를 빼려 해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염왕이 무릎을 쳤습니다.

“오호! 그래서 450번이나 달군 철환을 삼켰는데도 살아남았고, 혀까지 빠지지 않는구나. 그간의 죄는 미우나 그와 같은 공덕이 있을진대 남과 같이 죄를 다스리지는 못할지라. 내 너를 다시 인간으로 내려 보내니 훗날의 일은 알아서 하라!”

이야기를 마친 고문은 그간의 사연이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가족들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무서운 것이다. 더구나 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경을 읽었다고 오만과 독선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나만이 옳다고 사람들을 기만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과 귀가 막힌 줄 알고 행동했다. 나만이 세상이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더 어리석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부처님 말씀을 앵무새처럼 외면서 말이다.”

말을 마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그가 살구를 훔쳐 먹은 화도사를 향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엎드려 참회하였습니다. 물론 사람들 앞에 나서 함부로 설법하는 일도, 사람들이 듣는 곳에서 경을 읽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법화경〉을 독송하였습니다.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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