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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로 배우는 불교 6. 관경16관변상도
  • 이승희/홍익대 강사
  • 승인 2016.04.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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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독자적 여성성불관 구현

   
▲ <관경16관변상도>의 12관 장면

초기 교단과 달리 부파불교시대에 들어와서 양성 평등의 성불사상은 희석되고 왜곡되어 여성은 불교적 구원에서 배제됐다. 심지어 계율을 중시하는 경전에서는 성도(成道)를 방해하는 죄 많은 존재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

이런 여성의 성불에 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 시기는 초기 대승불교시대이다. 여기에는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 단, 성불하기 이전에 남자로 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변성남자(變成男子)의 성불 이야기는 〈법화경〉 제파품(提婆品)에 쓰여진 용녀설화가 대표적이다. 겨우 8살의 여자아이인 용녀는 〈법화경〉을 듣고 찰나 사이에 보리심을 일으켜 성불했다. 이 사실에 대해 사리불이 여인이 성불한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반박하자 대중들이 용녀가 홀연히 남자가 되어 무구(無垢)세계에 가서 성불한 다음 〈법화경〉을 설하고 있음을 보았다고 증명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오랜 보살행을 하지 않아도 〈법화경〉을 수행하면 빨리 성불할 수 있다는 점과 나아가 여성성불 불가(不可)의 편견을 효과적으로 깨지는 못했지만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을 고취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성불에 대한 인식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 그리고 한 시대의 정치이념, 성행한 신앙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조선 인조 4년(1626) 상궁 최씨가 쓴 한글 음역 〈법화경〉사경본(경기도 의정부시 원효사)에는 성불에 대한 강한 염원이 담긴 발원문이 남아 있다.

‘내세에 남자로 태어나 석가세존에 참례해서 듣지 못한 법문을 듣고 깨닫지 못한 진리를 깨달아 번뇌로부터 영원히 벗어나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길 기원한다.’

이 발원문에는 성불에 대한 최 상궁의 강한 기원도 있지만 ‘법문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존재’라고 비하된 여성에 대한 인식도 담겨 있다. 이는 조선시대 가부장적 유교 사회제도 속에서 살았던 여인들의 자기 인식이 반영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려후기 불화 중에는 좀 더 긍적적인 여성성불관이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일본 지온인(知恩院)에 소장되어 있는 1323년 ‘관경16관변상도’는 전체적인 화면의 구성과 도상을 고려적으로 변형해 한국적 관경도의 전통을 세웠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불화이다〈아래그림〉. 이 불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장면은 중단에 위치한 12관 장면이다〈위그림〉. 설법하는 아미타삼존불을 중심으로 수많은 제자와 보살들이 자리하고 있고 앞에 놓인 공양탁자 옆에는 각각 2명의 여인과 승려가 자리하고 있다. 공양탁자의 주변에서 합장을 하거나 공수를 취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여인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려 귀족 여인들의 옷을 차려입은 단아한 자태를 보여주며 아미타불을 등지고 앉아 있어 앞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승려들은 뒷모습을 주로 보여 신분상의 차이도 암시하고 있다.

〈관무량수불경〉(이하 관경)에서 12관은 실제로 자신이 극락정토에 왕생했다고 생각하는 관이다. 이 작품 이전에 관경변상도의 12관에 표현된 왕생자는 어떤 인물인지 특정할 수 없는 형상이었던데 반해 지은원본에서는 현실감 있는 인물로 표현돼 있다. 이들 형상을 통해 볼 때 이 불화조성을 발원한 사람들이 왕생자의 형상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능성은 화기를 통해 확인된다. 이 불화의 시주자 겸 발원자들은 3명의 승려와 관직을 가진 사람들, 선종 승려 중 가장 높은 지위의 대선사(大禪師) 그리고 정업원(淨業院)의 주지이자 승통(僧統)이었던 승려이다. 정업원은 고려후기 왕실 여인들의 출가처로서 왕의 후궁과 왕실 여인들의 거취와 예우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궁궐에서 가까운 도성 내에 집을 궁으로 삼아 이들을 옮겨 살도록 한데서 유래한 왕실여인들의 사찰이다. 정업원 소속의 승려들은 높은 신분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불사에 참여했다.

성불의 아이콘으로 여성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사상적인 배경은 1284년 묘련사의 창건 이후 고려후기 귀족사회의 불교이념을 지배했던 천태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천태종의 개창자인 천태지의는 여성의 성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관경〉의 주인공인 위제희왕비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은 보살이라 칭했다. 북송초 천태승인 사명지례는 무생법인을 보살의 53위 중 처음 지위로, 위제희는 부처님의 설법에 의해 초주(初住)의 초지(初地)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제희는 무생법인을 깨달은 사람이므로 근기가 높은 보살종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선도가 위제희왕비를 성인이 아닌 범부로 보았던 것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여성을 보살로 인식하는 것은 남자로 변성하지 않고도 성불할 수 있는 여성성불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은원본에 표현된 여성 왕생자들은 천태사상에 근거를 둔 고려인들의 독자적인 여성에 대한 불교관을 구현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관경16관변상도>, 고려 1323년, 224.2×139.1cm, 일본 교토 지온인(知恩院)

 

이승희/홍익대 강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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