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 친견 위해 사경, 갖가지 신이한 일 잇달아

 

그의 이러한 사경사업은 자손에게까지 전해져, 세상에서 그를 엄법화라 일컬었습니다. 수나라 말엽에 도둑이 사방에서 일어나 각지를 횡행하였는데, 도둑들이 서로 엄법화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약속하여, 그 마을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엄공은 무려 2500여 부의 〈법화경〉을 베껴 만들었습니다.

중국 진나라 때 천주 사람인 엄공은 그의 부모가 큰 부자였는데 형제가 없어서 그를 몹시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하는 일이 없어 그 부모가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부모가 그를 불렀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돈 5만 냥만 주시면 양주에 가서 장사를 해 보겠습니다.”

그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부모는 흔쾌하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나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그렇게 해서 엄공이 돈을 배에 싣고 양주로 가는데, 수십 리를 내려갔을 때 강 가운데서 큰 자라를 장에 팔러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엄공은 그 말을 듣고 자라가 팔려가 죽을 것이 가여워졌습니다. 그는 자라 장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자라를 내게 파시오?”

그러자 자라 장수가 말했습니다.

“내 자라는 특별히 커서 한 마리에 1천 냥은 주셔야겠습니다.”

“모두 몇 마리요?”

“50 마리입니다.”

엄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습니다.

“여기 5만 냥이 있으니 모두 내게 파시오.”

자라 장수가 크게 기뻐하며 돈을 받고는 자라를 주고 사라졌습니다.

엄공은 그 자라를 모조리 강물에 놓아 주고 빈 배를 몰아 양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업보인지, 자라 장수는 엄공과 헤어져 10여리 쯤 가서 배가 침몰하여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참 보기 드문 일이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아득히 떨어진 그의 본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날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검은 옷을 입은 손님 50명이 염공을 찾아와 돈 5만 냥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부모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이건 어떤 돈입니까?”

그러자 50명 중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주인어른의 아드님이 양주에서 이 돈을 보낸 것입니다. 세어 보십시오.”

엄공의 부모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 내 아들이 죽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드님은 아무 탈이 없으십니다. 다만 돈이 필요치 않아 돌려보낸 것입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부모는 돈이 모두 물에 젖어 있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으나 그대로 받아 건사한 다음, 음식을 차려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왕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손님들은 기다렸다는 듯 하루를 유쾌히 묵고 다음 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 쯤 뒤 엄공이 돌아왔습니다. 그 부모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는 흐뭇하게 물었습니다.

“돈은 왜 돌려보냈느냐?”

엄공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는데요.”

그 부모는 여러 손님이 다녀간 정황과 날짜를 자세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엄공이 그 날짜를 따져 보니 바로 자라를 사서 살려 준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아하!”

엄공과 그 부모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 날 50명의 손님이 곧 엄공이 살려준 자라였음을 알고, 모두 크게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하여 그 부모와 엄공은 양주로 이사를 가서 부지런히 복업을 닦고 항상 〈법화경〉을 읽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께서 열반하신 지가 오래되었지만, 보배탑 안에 계시며 여전히 법을 위해 오시는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법을 위해 부지런하지를 않느냐?

그런데 어느 하루는 엄공이 이렇게 〈법화경〉 견보탑품을 읽다 말고 탄식하였습니다.

“보탑 안에 두 분 여래가 계시고, 그 분들의 분신인 부처님이 많으신데, 나는 어찌하여 그 분들을 보지 못할까?”

그런데 바로 그 날 밤이 되어 꿈에 스님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경을 외우고 여러 부처님을 뵈려면 이 경을 해설하고 베껴 써서 유통하고 공양해야 한다.”

엄공은 그제야 자신이 왜 수많은 부처님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법화경〉은 읽는 것만이 아니라 사경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처음으로 깊이 발심하여 〈법화경〉 100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호사다마랄까요?

그는 사경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갑자기 중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1000부를 더 만들 것을 발원하였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 그만큼 구도의 열망이 컸던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신기하게도 금방 병이 나은 그는 곧 자기 집에 조경당을 세우고, 종이와 붓을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마련하여, 대대적으로 사경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경을 베껴 쓰는 사람 20여 명에게 법대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그 자신이 친히 교열하여 조금의 빈틈도 없이 사경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싫증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항상 밝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부처님을 존경하는 독실한 불자입니다. 그러나 〈법화경〉 만들 돈이 없어 사경을 할 수 없으니 엄공께서 그 돈을 주셔야겠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전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법화경〉을 사경하겠다는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을 얻어가지고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배가 뒤집혀 가라앉아서 1만 냥의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다행히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이 날 엄공이 창고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돈이 본래대로 있고 모두 물에 젖어 있어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뒤에 그 사람을 만나 물에 빠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 80살 쯤 된 타국의 스님이 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구자국에서 와서 지금 부산으로 가는 길인데, 들으니 당신이 〈법화경〉을 만들고 있다 하여 한 부만 주셨으면 해서 왔습니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엄공이 사경한 〈법화경〉을 주자 그 승려가 무게 40냥이나 되는 금 한 덩이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경 만드시는 데 보태 쓰십시오.”

그리고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또 후지라는 사람이 파양에서 궁정으로 가는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그를 한 묘로 인도하여 들어가 보니, 신이 칼을 잡고 앉아 있다가 후지를 윽박질렀습니다.

“너는 양주의 〈법화경〉 만드는 엄공을 아느냐? 내가 돈 1만 냥을 그 댁에 보내서 공덕을 쌓으려 한다.”

그리고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이튿날 후지가 길에 나서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후지에게 돈 1만 냥을 억지로 받으라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후지는 이 돈은 틀림없이 신의 돈이라 생각하고, 양주에 이르자 곧 엄공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엄공은 뜻이 더욱 견고해져서 〈법화경〉 3000부를 만들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어부가 밤에 강 가운데서 커다란 불꽃이 둥둥 떠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를 저어 나가서 맞아 보니 〈법화경〉 한 궤짝이었습니다. 그것은 엄공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엄공은 철저하면서도 부지런히 경을 만들어 세상에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우고 정진했습니다.

한 자도 내 눈을 거치지 않은 글자가 없도록 하고,
한 자도 내 마음을 쓰지 않은 글자가 없도록 하리라.

그의 이러한 사경사업은 자손에게까지 전해져, 세상에서는 그를 ‘엄법화’라 일컬었습니다. 수나라 말엽에 도둑이 사방에서 일어나 각지를 횡행하였는데, 도둑들이 서로 엄법화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약속하여, 그 마을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엄공은 무려 2500여 부의 〈법화경〉을 베껴 만들었습니다. 책이 넘치는 세상. 그러나 정작 부처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기록하며 그것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들이 드문 오늘날, 엄공의 미련한 수행정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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