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도 뱃길 있듯
눈에 보이는 길 집착 말고
아무렇지 않게 나아가길

대도에 이르는 데는 따로 특정한 문이 없어 그곳에는 셀 수 없는 많은 길이 있나니 이 관문을 터득한다면 우주 속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설 것이리라![大道無門 天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의 ‘도’를 ‘길’이라는 뜻으로 새겨 본다. 큰길은 해인삼매(海印三昧)의 ‘바다’라는 뜻과도 통할 듯 싶다. 큰길로 통하는 셀 수 없는 수많은 길이 있는 것처럼 바다로 들어온 물의 흐름 역시 그렇다. 발원지도 있고 개천이나 강물도 있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이나 바다에 내린 것도 있고 마을을 지나면서 생활용수도 뒤섞인다. 어떤 실개천은 지하로 사라졌다가 바다로 바로 용출(湧出)되기도 한다.

망망대해(茫茫大海)와 같은 큰 바다에도 길이 있다. 어디로 향하고 싶은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은 언제나 있다. 다만, 목적지까지 항해할 수 있는 커다란 배와 같은 운송수단이 있어야 하겠다. 없다면 길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 그렇게 큰 길로 가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몸도 마음도 준비라는 수행을 착실히 해야 한다.

뭣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바다는 온통 길일 따름이다. 바다가 온통 바닷길이다. 하지만 바다의 수면 아래나 해류, 지역에 따른 바람의 특성 등에 따라 모두가 안전한 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위험하더라도 길이 아닌 것도 아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병이 되기도 한다. 뱃사람들은 바다에 뱃길이 따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정해둔 그 길만이 길인가? 대충 어림짐작으로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땀이 묻어있기도 하다. 어쩌면 목적지에 도착만 할 수 있다면, 아니 다 못가고 멈추더라도 그 역시 ‘길’은 아닐까? 그걸 알고 가는 만큼 ‘길’로 통하게 된 것은 아닐까?

옛 뱃사람들은 바다 위에 난 그 길을 여러 차례 따라 다니면서 길을 익혔다. 낮에는 주변의 섬 등을 참조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바라본다. 나침반이 나오고 나서야 사용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물론 지도도 나와 밝은 빛 아래서 세상을 보려고 하지만, 자연도 변하여 꼭 예전만 같지는 못하다. 자동항법장치가 나와도 침몰이나 좌초 등의 참변을 꼭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바다와 바람을 만나고 해류를 만나고 폭풍도 만난다. 수많은 변수가 있고 변화가 있는데도 오직 한 길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꼭 정해진 단 하나의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도는 중도(中道)이기도 하나보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결국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혼자서 한다는 의미에서 외롭다. 맞이해주는 문이나 이정표조차도 하나 없는 큰 길(바다)에 서 있기에 더욱 외롭다. 망망대해에 홀로 있어 외롭기에 굳이 독보적인 존재로 있어야 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는 의도도 보지 못한 채 낚일 필요는 없다. 아니 알면 그냥 한번 속아보는 것도 좋다.

어차피 길에 있기에 길 위에서 길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길이 아무도 선 적이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이라고 착각할 필요도 없다. 절벽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굳이 눈에 보이는 길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가면 된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기 때문이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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