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 통해 형평성 유지, 초대자 배려

 

불자들은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정성 담긴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나라 선방에도 안거 기간 ‘대중공양’이란 전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런 마음은 부처님 당시 인도의 재가불자들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재가불자들의 식사초대를 받아 공양을 하는 형태가 바로 ‘청식(請食)’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재가불자의 초대를 받고, 제자들과 함께 청식에 응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때 부처님은 초대한 사람과 가족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다.

제비뽑기로 순서 정하기도

재가불자들은 수행자들을 집으로 초대한 만큼 걸식 때 공양하는 음식보다 풍성하게 식탁을 차리고, 정중하게 모셨을 것이다. 이럴 경우 자칫 수행자들의 식탐을 막고, 하심(下心)을 가르치려 한 걸식의 의도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있었다. 또 청식에 응했을 때는 의복 등 생활필수품도 공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청식을 은근히 반겼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런 이유로 당시 불교 교단 이외의 수행자 집단(자이나교 등)은 걸식은 했지만 청식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교 교단의 청식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에도 부처님은 청식을 허용했다. 걸식만을 할 경우, 의복의 조달 등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걸식을 하던 인도의 모든 수행자들은 노동과 판매, 무역 등 일체의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재가불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부처님은 이런 원칙을 지키는 대신 극단에 치우친 궁핍함으로 생존이 위협받거나 일반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청식을 할 때도 나름의 규칙은 있었다. 청식의 원칙은 승가 대중 모두를 초청하는 ‘승가식(僧伽食)’이었다. 하지만 초대하는 재가신자의 형편상 대중 전체를 초대하지 못할 경우에는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응하는 ‘승차식(僧次食)’, 재가신자가 특정 출가수행자를 지명해 공양에 초대하는 별청식(別請食)을 허용했다. 재미있는 것은 막대에 이름을 적어 제비를 뽑아 공양에 응하는 행주식(行籌食)도 있었다는 점이다. 식탐은 경계했지만, 초대를 받았을 때 의복 따위를 얻는 경우도 있다 보니 초대하는 신도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밖에 재가신자가 공양을 해 보름날 먹는 것은 포살식(布薩食), 반달이 지난 초하루에 먹는 것은 월초식(月初食)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승가의 일부 대중만 청하는 별중식(別衆食)은 금지했다. 누구는 초대를 받고, 누구는 초대를 받지 못할 경우 승단 화합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별중식은 4명 이상을 말하는데, 4명이 승가를 형성하는 최소인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명까지만 청식에 응할 수 있었다. 또 〈마하승기율〉을 보면 재가신자가 비구니만 초청할 경우 응하지 못하게 했다. 비구와 함께 청하게 한 것은 비구니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짐작된다.

초대자 마음까지도 고려

부처님은 청식을 받은 수행자가 잇달아 초대를 받는 것은 금지했다. 〈팔리율장〉은 ‘어떤 비구라도 다 먹고 만족한 뒤, 또 다른 음식을 먹으면 바일제(波逸提, 가벼운 죄)에 해당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가신자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앞에 두고,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충분히 먹지 않을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이럴 경우 소문을 들은 첫 번째 청식 초대자가 불쾌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우려한 계율이다. 이런 이유로 하루에 두 집의 청식을 받을 수 없게 했다. 가난한 사람이 초대를 했다는 이유로 사전에 걸식을 한 후 초대에 응하는 경우도 같은 이유로 금했다.

걸식을 하든, 청식을 하든 음식을 구할 때 주의할 점은 더 있다. 〈잡아함경〉 ‘정구경’에는 수행자가 음식을 구할 때 잘못된 방법, 즉 사부정식(四不淨食)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첫째, 하구식(下口食)으로 머리를 숙이는 일을 하며 음식을 얻어선 안 된다. 농사와 약물 조제 따위를 말한다. 둘째, 앙구식(仰口食)으로 얼굴을 위로 향하는 일을 하고 음식을 얻어선 안 된다. 별과 해와 달을 관찰해 사람들에게 삿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셋째, 방구식(方口食)으로 말재주를 부려 남의 심부름으로 사방에 소식을 전하고 음식을 얻어선 안 된다. 넷째, 사유구식(四維口食)으로 주술이나 점 따위를 봐주고 음식을 얻어선 안 된다. 음식은 물론 이런 방법으로 의복을 얻어선 안 된다고 부처님은 가르쳤다.

불교 교단에서 수행자의 생활원칙은 사의법(四依法)이었다. 걸식을 하고,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나무아래에서 잠을 자고, 약은 남이 먹다버렸거나 동물의 대소변으로 만든 것을 먹는 네 가지를 말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교단과 교파 관계없이 모든 수행자들에게 해당되는 생활원칙이었다. 이에 비춰볼 때 청식과 청식을 통해 의복을 구하는 행위는 사의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부처님은 극단에 치우친 수행법을 경계하셨듯이, 생활에 있어서도 수행과 교화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융통성 있게 계율을 적용하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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