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날 유골로 변한 신부… 금빛 해골을 남기고

 

당(唐)나라 원화(元和) 12년, 817년에 섬우(陝右) 지방 풍속에서는 전통적으로 말 타기와 활쏘기만을 숭상하여 3보(三寶)의 이름조차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당나라 전성기 때였으므로 다른 지방에서는 불법(佛法)이 아주 융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섬우 지방은 그만큼 낙후된 지역이었지요.

 

바로 그 때 어느 보살님이 그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전쟁 준비를 위한 칼과 활,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지방을 다 돌아본 보살님은 허름한 마을 한 곳을 거처로 삼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보살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였습니다. 작은 벽촌, 그 지방의 아낙들과 다른 용모로 하여 소문에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습니다. 어느 대부호집의 딸이라거나, 궁중에서 나온 공주님일 것이라는 뜬소문까지 났습니다. 보살님은 그런 소문들이 한껏 번져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나타났다!”

“천하제일 경국지색!”

이윽고 보살님에게 장가를 들기 위해 여러 총각들과 홀아비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보살님이 살고 있는 마을로 몰려들었습니다. 청혼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보살님은 자신을 아내로 들이고자 하는 모든 남자들을 다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지요.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 모두들 보살님이 지정한 공터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요. 남자들은 실망하여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때 보살님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가 없어 시집을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속의 재물은 좋아하지 않고 오직 총명하고 어진 분으로서 불경을 읽을 줄 아는 이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많은 사람을 불렀습니까?”

한 남자가 볼멘소리를 하였습니다.

“어차피 이 많은 청혼자 중에 단 한 사람만이 제 배필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 몸은 하나니까요. 저도 여러분을 고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뭘 해야 그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겠소?”

그러자 그녀는 고이 간직해 둔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꺼내 주면서 말했습니다.

“만일 이 보문품을 하루 안에 외우는 이가 있으면 그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그날 밤, 마을은 또 다시 난리가 났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이 보문품을 외우는 소리로 가득했던 것이지요. 그 소리를 들으며 보살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보문품을 막힘없이 외우는 이가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남자들이 공터에 모이자 보살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집안은 대대로 정결을 숭상해 왔으니, 한 몸이 여러 사람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금강반야경〉을 외우시는 분에게 제 몸을 의탁하겠습니다.”

다시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모인 사람은 이제 10여 명이었습니다.

보살님은 또 남자들을 칭송하며 〈법화경〉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 〈법화경〉 7권을 다 외우시는 분의 아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단 한 사람, 마씨(馬氏) 성을 가진 총각만이 〈법화경〉 7권을 다 외웠습니다.

“내 그대의 청대로 처음으로 본 이 〈법화경〉을 모두 외웠으니 나하고 혼인해주시겠소?”

“우리의 약속은 천금보다 귀하지요. 내 어찌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오. 그대의 재주가 이미 뭇 사람보다 나으니, 부모에게 아뢰고, 혼인 절차를 갖춘 뒤에 혼사를 이룹시다.”

총각의 얼굴은 기쁨으로 넘쳐흘렀습니다. 그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하고, 보살님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모든 혼인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성대한 혼인식을 마쳤습니다.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마씨의 집으로 가는 길, 이 행렬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신랑인 마씨도, 신부인 보살님도 한껏 들뜬 표정이었습니다.

드디어 신행 행렬이 웅장한 마씨의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아리따운 신부인 보살님이 마씨에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법도에 따르느라 몸에 조금 불편한 점이 있으니, 바라건대 별실을 구해 주신다면 증세가 편안해진 뒤에 그대와 만납시다.”

마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시오? 내가 모든 조치를 취해 놓을 테니 일단 편안한 곳에서 몸을 보중하시오.”

마씨는 대저택의 가장 조용한 곳을 택해 신부를 쉬게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신부는 아무런 다른 기색이 없었습니다. 신랑 마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 별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으로 들어간 신부의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불안해지기 시작한 마씨가 살며시 별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오!”

마씨는 당황한 나머지 방바닥에 엎어져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그 옆에는 놀랍게도 이미 썩어 형체가 없어진 신부의 유골만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선남선녀, 아름다운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이 그만 갓 시집온 신부의 문상객이 되고 말았지요. 졸지에 새신랑에서 홀아비가 된 마씨는 울면서 적당한 묘지를 택해 장사를 지냈습니다. 개인으로 보면 엄청난 환란이었지만 이미 불경의 정수를 외운 덕에 마씨는 침착하게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떤 남루한 법복을 입은 노스님 한 분이 보살님을 찾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사람은 저와 혼인한 그 날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마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그럼, 그 분을 어디에 모셨소?”

“저를 따라오시지요.”

마씨가 산소로 안내했습니다. 봉분 앞에 선 스님은 정중히 합장을 하고 난 다음, 가지고 있떤 주장자로 무덤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당황한 마씨가 소리를 질렀지만 스님은 순식간에 흙을 파헤쳤습니다. 그런데 관 속엔 오직 금빛 해골만 남아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스님은 그 해골을 들고 강으로 가서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골을 주장자 끝에 꿰어 메고는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성자께서는 그대들이 정법을 믿지 않는 것을 가엾이 여겨 방편으로 이끌어 교화하신 것이니, 좋은 인연을 잘 생각하여 고해에 떨어지는 재앙을 면하시오!”

그리고 홀연히 하늘로 솟아올라가 버렸습니다.

이미 이 모든 정황을 파악한 대중들이 이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면서 우러러 절하기를 마지않았습니다. 이로부터 이 지방은 전국에서 가장 열심히 부처님을 받들고, 가장 성실하게 경을 읽는 일이 일어났으니, 모두 해골 보살님의 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을 일러 ‘마랑부관세음보살(馬郞婦觀世音菩薩)’이라 부릅니다. 〈법화현응록(法華現應錄)〉에 전하는 바, 이 설화를 두고 후세의 선지식들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이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이 몸을 나투어 설법해 주고.
이는 곧 일마다에 나타나고 물건마다에 나타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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