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린이 놀이문화 한 자리에

▲ 과천 아해 한국전통 어린이박물관 상설전시장. ‘작은 서당’을 중심으로 13개의 전통놀이가 전시돼 있다.

10년 전만해도 동네 골목길과 공터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팽이놀이ㆍ고무줄놀이ㆍ공기놀이ㆍ땅따먹기ㆍ구슬치기 등 그 많던 골목놀이들은 더 이상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놀잇감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이 주가 되었다. 그럼,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던 옛날,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놀이문화와 한국 전통 놀잇감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어린이 전문 박물관은 2011년 2월에 문을 열었다.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에 자리한 아해 한국전통문화 어린이박물관(이하 아해박물관)은 그저 어른들의 옛 추억의 공간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시키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아해박물관은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놀이 속에 담긴 교육적 가치를 어린이, 성인, 교육전문가들에게 전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밝고 명랑한 느낌을 주는 박물관 이름, ‘아해’는 어린이를 칭하는 순 우리말로 세종대왕 29년 〈석보상절〉에 어린이를 ‘아해’라고 했던 기록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전통 놀이문화를 세계화시키려는 관장의 오랜 염원과 박물관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아해박물관에 전시된 500여점의 전통 놀잇감은 문미옥(서울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관장이 20여 년간 모은 소장품의 일부다. 문 관장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골동품 가게와 지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총 2,000여 점의 전통 장난감과 교육 자료를 찾아냈다. 교수 초기시절(1988년)에 만난 외국 학자들에게 한국적인 놀이문화를 보여 주고자 팽이, 다리미 변천사 시리즈들을 모아 연구실 책꽂이에 전시한 것이 출발이 됐다.

아해박물관은 상설전시장(지상 1층)과 기획전시 및 교육실(지상 2~3층) 등을 갖춘 3층 규모의 건물과 4000평에 이르는 황토와 나무로 이루어진 아해숲을 갖추고 있다. 서울 도심인 양재동에서 300m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숲 체험까지 가능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전통 놀잇감이 전시된 1층 상설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아이들 장난감이 아닌 부모들에게 필요한 ‘전통 아기놀이’라는 육아법이 전시돼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도리도리’부터 ‘섬마섬마(어른 손바닥에 아기를 세우는 놀이)’까지 아기의 뇌신경과 소근육 발달을 돕는 놀이들이다. 한국의 육아문화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또 전통놀이에 사용된 공기ㆍ팽이ㆍ윷ㆍ연과 얼레ㆍ썰매ㆍ승경(승람)도 등이 ‘작은 서당’을 중심으로 놀이 유형에 따라 13개의 공간으로 이뤄져있다. 팽이를 만드는 과정과 다양한 팽이와 팽이채를 볼 수 있는 팽이놀이 공간과 숫자 팽이를 돌려 나온 수와 규칙에 따라 각각 관직과 명승지(名勝地)를 옮겨 다니는 조선시대 보드 게임인 승경(승람)도 공간을 비롯해 굴렁쇠, 격구, 장치기, 고누, 장기, 근대놀이(종이인형놀이, 딱지치기) 등 다양한 전통 놀잇감이 전시돼있다.

특히 지역마다 제각각인 공깃돌의 형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깃돌 지도’가 눈길을 끈다. 제주도는 현무암, 경북은 규암, 전북은 연암, 경기ㆍ포천은 화강암, 바닷가에서는 소라나 고동, 섬마을은 산호, 산간지역은 기와를 갈아 공깃돌을 만들었다. 문헌이나 구전을 바탕으로 재현된 공깃돌은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이 지역의 광산물과 특색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한반도 지도에 표기했다. 문미옥 관장은 “과거 전통놀이는 나뭇가지ㆍ돌멩이ㆍ흙 등의 자연물을 가지고 노는 ‘녹색놀이’였다”며 “옛 아이들은 문방구에서 매번 똑같은 놀잇감을 사는 것이 아닌 오늘은 무엇이 놀잇감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길렀다”고 말했다.

많은 전통 놀잇감 중에 문 관장이 꼽은 애장품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장난감 중 하나인 ‘나무 말팽이’다. 말팽이는 오랜 수소문 끝에 적잖은 값을 치르고 소장하게 됐다. 조선시대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투박한 솜씨로 낫으로 깎아 만들었을 말팽이는 단순히 옛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놀잇감이 아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만들어낸 놀잇감의 질박한 조형미는 예술품이라 할 정도로 멋진 작품이다.

조선시대 말팽이가 전시돼있는 팽이놀이 공간을 둘러보다보면 전시장 바닥에는 이름 모를 팽이들이 뒹굴고 있다. 양쪽이 다 돌아가는 장구팽이, 구멍을 뚫어 심을 꽂은 바가지팽이, 엽전팽이, 숫자팽이, 도토리팽이 등이 조상의 지혜와 멋에 감동한 아이들에게 놀이시간까지 제공한다. 이렇게 아해박물관은 어린이 박물관답게 소중히 다뤄야 할 전시공간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체험공간이 공존한다.

2층과 3층에 위치한 기획전시관과 교육실에서는 유치원ㆍ어린이집ㆍ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전통사상과 우리놀이, 음악, 미술 등 전문 교육과정을 개설해 교사연수 프로그램과 전통놀이 지도자 양성과정을 운영한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문미옥 관장의 전통놀이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다.

문 관장은 “옛 아이들이 소재의 선택, 제작과정과 놀이방법의 변형을 해온 전통 놀잇감은 21세기 최첨단시대에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창의성ㆍ자율성을 길러주는 최적의 교육”이라며 “앞으로 인류의 전 세계 전통 놀잇감을 다 모아 ‘전통놀이’하면 ‘대한민국의 아해박물관’이란 말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아해박물관은 사전예약제로 10명 이상의 단체관람만 가능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개인 5000원, 단체(20인 이상) 4000원이다. 문의 02-3418-5501.

▲ 나무를 깎아 만든 말팽이(조선시대)
▲ 공기놀이 전시공간의 ‘공깃돌 지도’
▲ 아해 한국전통 어린이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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