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로 타국살이, 관음보살 인도로 바다 건너와

 

신라 때 보개라는 여인이 서라벌 우금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장춘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장삿배를 타고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우물가에서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돌아올 날짜가 지났는데도 소식 한 장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근심 걱정하다 몸까지 몹시 쇠약해졌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몸져눕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눈물로 베개 잇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누군가 그녀를 불렀습니다.

“여인 보개야?”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누구십니까?”

그러나 그녀 앞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어디선가에서 목소리만 들려왔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신통한 힘에 의하여 설혹 폭풍이 불어 그 배가 표류하여 사람 잡아 먹는 흉악 무도한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질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환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너의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내가 이른 대로 하거라.”

그녀는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옛날 읽었던 〈법화경〉이 머리에 떠오른 것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민장사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레를 기약하고 정성껏 부지런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삼계의 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시며 법계의 주인이신 부처님께 일심귀의 하옵고 자그마한 정성으로 공양 올리오니 대자대비로 굽어 살피사 거두어 주옵소서. 지난날 제가 성내고 탐내고 어리석었던 탓으로 지은바 모든 죄장을 이제 깊이 참회하오니 마음에 이는 온갖 번뇌와 망상을 바로 잡아 주옵소서. 몸과 입과 생각에 항상 바른 지견을 갖도록 깨우쳐 주시고 죄 없고 안온한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의 높으신 자비본원력으로 저로 하여금 생노병사와 우비고뇌가 가득 찬 고해 중에서도 항상 보리심이 자라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법화경〉의 깊고 묘한 제목을 칭념하는 공덕으로 모든 액난 물러나며 병든 이는 하루속히 회복하고 가정이 안정하며 권속들이 화목하여 명과 복이 더욱 견고하여지이다. 〈법화경〉에 이르시되 ‘이 일승법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행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참 아들이라 빠르게 높은 경지에 도달하며 공중에서 바람이 불 때 막힘이 전혀 없고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어둠을 밝히듯 한다’ 하셨습니다. 제가 세간에 행함에 있어 능히 어두움을 없애고 사람들을 깨우쳐 높은 법에 머무르게 하여지이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그렇게 이레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더니 홀연히 아들 장춘이 그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

“오, 우리 아들!”

그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민장사의 주지스님이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장춘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지난날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가 탄 장삿배는 처음에는 순풍을 타고 유유히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그만 폭풍을 만나 난파되고 말았습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캄캄한 파도 속에서 먼 바다로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외침을 들으며 장춘도 오로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 때 널빤지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널빤지 쪽으로 헤엄을 쳐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같은 배를 탔던 모든 사람이 고기밥이 되었는데도 그만 홀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파도가 그를 데려다 준 곳은 자신의 고국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중국의 오나라였습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가 표착한 오나라의 해변, 어떤 사람들이 기진맥진한 그를 데려다가 종으로 부렸습니다.

일도 힘들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벙어리 생활, 그에게 있어 그 하루하루는 죽음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편안하게 죽는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물에 빠져죽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커다란 저수지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삿갓을 쓴 스님 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스님께 합장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로 말을 했습니다.

“그대가 장춘인가?”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다에서 살아온 이후 처음으로 우리말을 들은 것이지요.

“아니, 스님은 신라 스님이십니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는 두고 온 고국이 그립지 않느냐?”

그것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새끼를 꼬는 고된 삶, 어디 그뿐입니까? 조금만 잘못하면 매를 대는 주인과 하인들, 단 하루가 지옥이었지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꿈에서라도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하루가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너무나 고단해서 꿈조차 꿀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이 아들의 무사를 빌며 눈물로 지새울 어머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두 뺨은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로 작은 고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국이 그립고,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거든 나를 따라오라.”

스님은 바다가 있는 동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도 정신없이 스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절벽 한 곳에 이르러 스님이 그의 손을 아득한 바다로 이끄는 순간, 그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깨어보니 홀연 우리나라 말이 들리고 민장사의 관음상 앞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의 일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그는 합장을 하며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금방 우리 어머니인 줄을 알았지만은 오히려 꿈 속 같습니다.”

소문이 아닌 사실이 입에 입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신기한 이야기는 임금이 사는 왕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경덕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감복하여 민장사에 전답과 곡식을 후히 내려 영구히 공양에 이바지하게 하고, 다달이 팔일이면 절에 행차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 그 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정례로 삼았습니다.

이에 어머니 보개와 아들 장춘은 인근의 청신사와 청신녀들과 협력하여 특별히 금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었으며, 해마다 삼월에 도량을 베풀고 〈법화경〉의 미묘하고도 깊은 이치를 강설하여 수행에 정진하고, 관세음보살님을 공경 예배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동장군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벌써 소한과 대한도 지나고 우수와 경칩이 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캄캄한 밤, 어떠한 눈보라도 부처님 법을 따르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외는 우리 불자들에게 봄은 머지 않았습니다.

온갖 환란을 견디는 힘, 그것은 바로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금강불괴의 정신, 즉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행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참 아들이라 빠르게 높은 경지에 도달하며 공중에서 바람이 불 때 막힘이 전혀 없고 해와 달의 광명이 능히 어둠을 밝히듯......

그렇게 봄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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