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수, 그리고 자비와 용서

▲ 주인공 ‘티에리’가 마트에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아버지의 초상’ 캡쳐 화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은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지고 있다. 때문에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집안이 몰락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은 아버지를 말한다. 아버지가 없을 경우, 어머니 또는 자식이 가장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가장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 때문에 때론 심신이 지치기도 한다.

이 시대 가장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영화 ‘아버지의 초상’이다. 이 영화는 2015년 프랑스에서 처음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제68회 칸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애큐매니컬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2015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 공식 초청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본 제목은 ‘시장의 법칙’이었다. 칸 영화제 평단은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한 순간에 백수로 전락한 주인공이 소중한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한 남자의 실질적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에 제목을 ‘아버지의 초상’으로 바꿨다는 후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회사의 부당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졸지에 실업자가 된 ‘티에리’다. 아내와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티에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해 구직활동을 하지만, 여의치 않다. 현실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직장을 잃은 50대 직장인이 재취업을 하기 힘든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감독은 주인공을 통해 전 세계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표출시키려는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티에리는 은행직원으로부터 “집을 팔아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팔고 싶지 않아 거절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티에리는 2년 간의 구직활동 끝에 겨우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매장 내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업무다. 마트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것도 그의 일이다.

티에리는 직장을 다니며 마트의 물건을 훔친 여러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도 있었고, 젊은 청년도 있었다. 그들로부터 물건을 훔쳤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티에리는 노인이 돈이 없어 훔친 고기를 살 수 없다고 하자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노인은 “처음이니 용서해 달라”고 애걸복걸 하지만, 회사 규정 때문에 티에리 자신도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은 도덕적 딜레마와 내적 고통은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마트 여직원 한 명이 회사 규정을 무시하고 상습적으로 할인쿠폰을 챙기다가 덜미를 잡혔다. 결국 그 직원은 해고를 당하게 되고, 후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여직원에게는 마약 때문에 고통 받는 아들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 여직원의 잘못을 확인하는 자리에 있었던 주인공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포인트 카드를 가져오지 않은 고객이 물건값을 계산하고 난 뒤 직원이 남들 몰래 자신의 포인트 카드에 적립하다 적발돼 불려왔을 때도 티에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 한 번의 실수조차도 용서하지 않는 각박한 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산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수많은 실수를 하며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

〈법구경〉에 ‘인자하면 마음에 혼란이 없으니 자비가 제일가는 행이다. 보살은 자비의 행으로 중생을 보살피니 그 복은 한량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도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늘 있는 일이라 패했다고 해서 꼭 나무랄 일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무조건 다그친다고 그 사람이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해 줬을 때 오히려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삶을 살아가는 사례도 많다.

‘자비무적(慈悲無敵, 자비한 마음을 가지면 적이 없다)’, 이 시대 사람들이 뼈 속 깊이 새겨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다.

▲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청년(왼쪽)에게 자백을 권하는 티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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