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앞둔 환자, 스님 손만 잡아도 눈물
환자 마음 편해진다면 찬송가도 불러요!


 
서울특별시 북부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지난 5일 만난 김미자(68) 봉사팀장은 법복 조끼를 입고 이 병실 저 병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불편함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병실에 들를 때마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호스피스 병동 특성상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 볼 수는 없었지만, 김 팀장의 밝은 인사에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따뜻하고 활기찬 인사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던 병실에 잠시나마 활력이 감돈다. 서울시 북부병원에서 2007년부터 9년 째 호스피스 봉사를 해 오고 있는 김미자 봉사팀장의 일상이다.

미신 대신 제대로 배워보자

김 팀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점집을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 간혹 따라간 점집에서 불상을 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러던 중 동네에 성당이 들어섰다. 성당에서는 아이들에게 빵과 옷을 나눠줬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시절, 그도 먹을거리의 유혹을 따라 성당을 자주 찾았고, 그렇게 가톨릭은 그녀의 종교가 됐다. 한때 가톨릭 교리에 심취해 교리문답집을 달달 외우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결혼이었다.

22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처럼 불교라고 할 수 없는 점집을 다니고 있었다. 서너 해, 시어머니를 따라 점집을 다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불교를 제대로 믿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를 따라 점집에 다녀왔는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믿는 종교가 어떤 건지 정체성에 혼란이 왔어요. 점집에는 분명히 불상이 있었는데, 저는 그 불상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차라리 이런 미신을 믿을 바엔 제대로 부처님을 믿어 보자’라고 다짐을 하게 됐어요.”

그 후 사찰에 다니며 스님들의 법문을 듣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마음속 한편에 부처님이라는 존재가 자리 잡았다. 어렸을 적 믿었던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사찰을 열심히 다니던 어느 날, 그녀의 나이 26살 무렵 뜻하지 않던 시련이 찾아왔다. 아이의 유모차를 사러 중고마트에 가다가 다리를 삐끗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고, 간간히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로 부상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찾은 대학병원에서 ‘급성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그해 12월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생활하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이후 그는 다리를 절뚝이게 됐다. 불편한 걸음으로 일상생활을 하던 그가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중증장애인 보살피며 봉사 눈떠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은 서울 광림사 주지 해성 스님이 이끄는 장애인 복지단체다. 1996년 해성 스님은 서울지역 개인택시 불자회 ‘가조(嘉兆)’와 함께 중증지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중증장애인들의 나들이인 만큼 많은 봉사자들이 필요했는데, 그도 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한 동네에 사는 개인택시 불자회 소속이었던 거사님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제 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나 봐요. 19 96년 봄쯤 저에게 ‘장애인 세상나들이’이 봉사활동을 하는 데 함께 가자고 권유를 했어요. 저도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 따라나섰죠.”

호기심에 따라나섰지만 ‘장애인 세상나들이’는 감동, 그 자체였다. 휠체어에 앉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봉사자들은 직접 안거나, 업어서 택시에 태우고 내렸다. 또 사찰에 갈 때는 장애인을 휠체어에 앉힌 후 뒤에서 밀면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오르내렸다. 개인택시 70~80여 대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처음 경험한 봉사활동은 가슴 벅찬 보람을 안겨주었다.

“그해 가을 한 번 더 봉사활동에 참여했는데 그때 ‘이렇게 몸을 못 움직이는 사람도 있는데, 다리를 절뚝이는 나 정도는 장애인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이후 개인택시 불자회 총무를 맡아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씩 봉사활동을 겸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다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공양간에서 설거지도 도왔다. 2006년까지 10년 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택시불자회 성지순례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애인 세상나들이’는 재정적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다.

‘장애인 세상나들이’ 봉사는 중단됐지만 불자회에서 마음이 맞는 회원끼리는 꾸준히 교류를 이어갔다. 그렇게 2년 여를 보낸 후 김 팀장은 불편한 다리의 인공관절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했다. 수술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던 어느 날. 김 팀장은 불자회 도반들과 설악산 대청봉으로 산행을 떠나게 됐다. 설악산 아래에 도착해서 정상인 대청봉을 올려다보니 수술을 받기 전 그곳에 꼭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수술 날짜까지 잡혀 있는 아픈 다리로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1707m)에 오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수술 날짜를 받아놓았었는데 멋모르고 모임에 따라갔어요. 그런데 설악산 아래 도착해보니 대청봉 정상까지 꼭 올라가고 싶었어요. 마음속으로 ‘부처님 다른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만 다리가 멀쩡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계속 빌었어요.”

마음을 다잡은 김 팀장은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대청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다리는 아파왔고, 아픈 다리를 가진 자신이 서러워 산을 오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었을까? 그녀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마침내 대청봉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산을 내려와 양말을 벗자 발톱은 모두 나가 있었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혔다가 터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부처님의 보살핌 덕분이라 생각한 그는 그날 이후 더욱 신심이 깊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타종교인 위해 찬송가 불러줘

봉사를 하겠다는 결심한 만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1년 간 케어복지사ㆍ호스피스 간병인ㆍ발마사지ㆍ꽃꽂이 등 다양한 교육을 수강했다. 또 틈틈이 불교 공부도 했다. 부처님 일대기를 읽고, 〈반야심경〉, 〈아미타경〉 등 각종 경전을 읽고 외웠다. 사찰에 가서는 불교교리 공부도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2007년, 지금까지 몸 담고 있는 서울 북부병원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 북부병원에서 주로 하는 일은 호스피스 환자들이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환자들 중에는 불교를 신앙하는 환자도 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환자도 있었다. 김 팀장은 환자들의 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항상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 처음 타종교 환자들은 기도하는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 팀장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 않고 꾸준히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의 변함없는 모습에 곱지 않던 시선은 삭으러들었다. 지금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오히려 김 팀장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기도라고 해서 거창하지는 않다. 불자에게는 부처님 이야기, 경전 말씀을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타 종교인 환자에게는 그의 종교에 맞는 기도를 해준다. 교회를 다니는 환자를 만났을 때는 함께 찬송가를 부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동료 봉사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무리 타 종교인을 위한 기도라지만 부처님을 믿는 불자가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결코 행하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찾듯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찾아요. 그런 그들을 위해 그들이 듣고 싶은 기도를 해주는 것뿐이죠. 그렇게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저는 다른 종교를 믿는 환자들이 저를 찾고, 기도를 부탁했을 때 오히려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 한 번 더 해주고, 손 한 번 더 잡아주면 이게 바로 포교라고 생각해요.”

김 팀장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처럼 ‘환자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자’였다. 그는 가끔 환자의 자식들이 그들의 종교로 환자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힘이 없는 환자는 결국 입으로는 자식의 종교를 따라 기도를 한다. 하지만 환자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자신이 평생 신앙해온 종교가 남아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언제 이 세상과 작별을 할 지 몰라요. 이들에게 내가 믿는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짓이죠. 30~40년 동안 한 가지 종교를 믿었는데, 한 순간에 쉽게 바꿀 수는 없겠죠. 제게 주어진 역할은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주고,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죠.”

그렇다고 포교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자 환자와 보호자, 불교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병원 법당에서 법회를 봉행한다. 또 평소 병실을 돌아다닐 때 불교의 장점에 대해 설명을 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부처님 품으로 안내한다. 북부병원에는 김 팀장 외에도 12명의 불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들을 위해 매주 머리 감겨주기ㆍ다도ㆍ원예 봉사를 하고 있다. 또 보호자와 병원 관계자들을 위한 다도 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김 팀장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중랑구청장 동상, 2010년 금상, 2011년 봉사왕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최근 설법연구원이 실시하는 불교활동가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님들 현장 활동 늘어나길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현장 활동의 수가 부족하다. 김 팀장은 이런 불교의 현실이 마냥 안타깝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이 현장에 나와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길 희망한다. 또 불자들이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길 당부한다.

“가톨릭의 경우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하루도 안 빠지고 오전, 오후 환자들을 찾아와 기도도 해주고 손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불교는 그렇지 못해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스님들이 자주 환자들을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불자 환자들은 스님처럼 머리 깍은 사람만 봐도 눈물을 흘리거든요. 제 기도도 좋아하지만 간혹 오시는 스님들이 손을 잡아주고 기도를 해주면 정말 좋아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님들의 부재가 너무 아쉽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불자님들은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런 생각을 버리시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불자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혼자만의 편안함을 위해 자식도 부모도 팽개치는 일이 일어나는 각박한 세상. 항상 밝은 모습으로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김미자 팀장의 뒷모습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화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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