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정토는 성불로 향하는 수행의 땅

 

번뇌로 가득 찬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토는 가장 이상화된 구원의 장소다. 그 중 가장 사랑받는 아미타극락정토는 청정ㆍ안락하며 영원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극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다. 중국의 불교 수용 이후 동아시아의 사상가들은 아미타정토가 어떤 곳인지,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수행과 의식을 행해야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대중과 함께 실천했다. 사람들은 왕생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갖고 있지만 또한 스스로 부처가 되는 성불(成佛)을 추구하기도 한다. 성불사상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의 개념을 확장시켜 일체중생도 보살이 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렇다면 극락왕생과 성불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의문에 해답을 보여주는 불화가 바로 일본 후쿠이(福井)현 서복사(西福寺)에 전하는 고려후기의 ‘관경16관변상도’(이하 서복사본)다.

 

서복사본은 〈관무량수경〉에서 설한 아미타극락세계의 16장면을 표현한 불화로 고려불화 특유의 세련되고 화려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고려 후기의 독특한 정토관을 훌륭히 구현해 예술적 우수성과 불교문화사적 가치도 크다. 당시 고려인들은 성불사상과 아미타정토에 대한 인식을 서복사본에 어떻게 구현했을까?

서복사본의 전체화면은 매우 질서정연하다. 화면 위 중앙의 붉은 해 안에 전각이 표현된 1관(日觀)이 자리하고 있다. 화면 오른편 청색 구획 안에는 극락세계의 신비로운 정경(2~7관)과 그 아래 기와 지붕 밑에는 범부들이 묘사돼 있다. 이들은 네 가지 의혹에 빠져 극락의 변두리에 태어나 500년 동안 수행을 한 후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게 되는 인물들이다. 그 맞은편 청색 구획 안에는 극락세계에 머문 아미타삼존의 진신과 아미타삼존을 친견하는 왕생자의 모습(8~13관)이 있으며, 그 밑에 운집해 있는 61명의 승려들은 정각을 이루거나 쉬지 않고 정진한 이들로서 지혜의 바다에 태어난 이들이다.

1관 바로 밑에는 극락세계의 보배로운 나무와 상서로운 구름을 배경으로 석가모니불이 설법하고 있다. 주변에는 8위의 보살, 10대 제자와 16성중(聖衆), 6대천왕, 타방(他方)에서 온 보살들이 운집해 있으며 그 뒤 육방불은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증명하고 있다. 설법회 아래로 내려가면 3단으로 화려한 전각들이 배치돼 있고, 그 앞의 연지(蓮池)에는 왕생자가 연화좌 위에 자리하고 있다. 위로부터 상품(上品)의 왕생자(14관), 중품(中品)의 왕생자(15관), 하품(下品)의 왕생자(16관)들이 부처님께 설법을 듣고 있다. 화면의 가장 하단에 위치한 연지 양 옆의 낮은 누대에는 아미타불이 왕생자에게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에서 왕생자는 아미타불 혹은 보살의 영접을 받아 극락왕생을 한 후 설법을 듣는다. 이때 상품상생자와 중생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은 후 수기를 받는다고 서술돼 있다. 무생법인을 깨달은 자는 현실의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나 보살의 지위에 이른 자로서 궁극적으로 성불을 약속받은 것이다.

‘관경변상도’에서 아미타불의 내영하는 장면이 아닌 왕생 이후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구품왕생장면을 표현한 점과, 수기 장면을 통해 왕생자의 성불을 약속하는 것은 고려후기 귀족사회에 형성됐던 정토관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권문세족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은 아미타불의 본원적인 힘에 의존한 정토왕생보다 부처님 말씀을 스스로 수행하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당시 귀족계층의 정토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은 13세기 전반 강진에서 일어난 백련결사운동과 1284년 천태사찰인 묘련사의 창건이다. 묘련사는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주도로 건립된 왕실의 원당으로, 천태사상을 기반을 한 정토왕생관이 귀족사회에 정착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천태에서는 근기가 낮은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토(佛土)를 4가지로 나눠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중 가장 이상적인 불국토를 절대 진리의 세계인 상적광토(常寂光土)라 하고 법신 석가모니불이 머문다고 했다. 가장 아래 위치한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는 아미타여래가 응신으로 화현한 곳이자 미혹함을 끊어버리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으로 방편의 땅이라고 말했다. 이 불토 개념은 사람들에게 아미타정토가 단순히 왕생의 목표이자 도달처가 아닌 성불에 이르기 위해 거쳐 가야 할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1관 옆 ‘安樂世界佛會圖(안락세계불회도)’라는 방제 옆에 쓰여진 게송에 이 정토인식이 잘 반영돼 있다.

觀彼世界相 피안의 정토세계를 관상하고/ 正覺阿彌陀 아미타불을 깨닫고
勝過三界道 삼계의 도를 초월하여/ 法王善往生 법왕(석가모니불)에게로 참된 왕생하니.

아미타정토세계를 관상하여 깨달음을 얻고 궁극적으로 석가모니불에게 나아가는 것이 참된 왕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된 왕생이 상적광토에 있다는 사실은 “〈관경〉16관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서방극락정토로의 왕생이 아닌 상적광토에 그 목적이 있다”는 천태승 사명지례(四明知禮, 960~1028)의 글〈관무량수경묘종초(觀無量壽經妙宗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상단에 표현된 석가설법회는 대중을 향해 아미타불세계를 설법하는 모습이면서, 궁극적인 왕생의 완성인 성불 혹은 절대 진리의 세계인 상적광토를 상징하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서복사본은 아미타정토가 성불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을 하는 방편의 땅’이라는 인식과 ‘석가불 세계로의 참된 왕생’을 염원한 고려후기 사람들의 정토관을 훌륭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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