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별 족보ㆍ구성ㆍ제작법 한 눈에

▲ 대전 한국족보박물관의 제4전시실, 왕실 족보, 사가 족보 등이 전시돼 있다.

효행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조상숭배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해 있다. 이 조상숭배문화는 성씨별 문중문화의 발달을 가져왔고, 각 문중에서는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 가문 구성원의 위계 확인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가문의 역사를 담은 족보(族譜)를 만들었다. 선조들의 이 같은 열의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방대한 가계(家系) 기록을 가진 나라가 돼 계보학의 종주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 성씨별 가계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문 박물관이 6년 전 문을 열었다. 대전에 위치한 한국족보박물관이다. 2010년 개관한 한국족보박물관은 ‘어느 집안 족보’에 ‘어떤 이’가 실려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수집된 족보를 보여주는 공간도 아니다. 족보의 구성ㆍ제작과정ㆍ역사ㆍ특수본 등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족보박물관은 2층 규모의 작은 박물관이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제1ㆍ2ㆍ3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4ㆍ5전시실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처럼 형성된 관람로를 따라 걸으면 꽤 길게 느껴진다.

전시실 초입에는 한국의 성씨 일람표가 붙어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성씨와 인구 통계가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1전시실의 주제는 서(序)ㆍ발(跋)ㆍ범례(凡例) 등 족보의 구성을 소개하는 ‘족보의 체제’다. 여기에 전시된 김해김씨 족보에는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수록돼 있어 조상을 신성화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또 사성(賜姓)을 비롯해 본관과 성씨를 바꾼 경우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시조 탄생 지역ㆍ본관 지역 지도나 집안 사당 약도 등을 그려 놓은 족보도 있어 흥미롭다.

2전시실은 족보 간행 절차를 설명해 놓은 곳이다. 문중이 족보제작을 위해 하는 일과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3전시실은 ‘족보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도록 꾸며놓은 공간이다. 고구려 시조부터 17대 광개토대왕까지 고구려 왕실의 계보를 밝히고 있는 최초의 가계기록인 ‘광개토왕비문’과 삼국시대 왕의 가계기록인 〈삼국유사〉 ‘왕력편’을 족보의 일종으로 보고 실물 크기로 복제해 전시했다. 여기에 조선의 시대별 족보와 현대의 CD족보까지 전시해 족보의 변천사를 잘 보여준다.

또 이 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3번째로 오래된 족보 ‘〈안동김씨성보〉(1580,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45호)’도 볼 수 있다. 이 족보는 1, 2번째로 오래된 〈안동권씨성화보〉, 〈문화류씨가정보〉와는 달리 실물을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원본 족보다.

오르막길에 시작되는 4전시실은 조선 왕실 족보와 사가(私家) 족보, 특수 족보를 전시했다. 무(武)과 급제자의 가계를 기록한 무보(武譜) 같은 주제별 특수보와 휴대용 족보ㆍ석판 족보 등 형태별 특수보가 있다.

족보라는 소재는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한국족보박물관은 족보에 이야기를 더한 공간을 마련해 족보를 가까이 대할 수 있도록 했다.

기획전시실에선 작년 광복 70주년을 기해 열린 독립운동가 25인의 가계기록을 정리해 만든 가계도를 전시하는 ‘애국여가’전이 진행 중이다. 또 5전시실에는 족보에서는 존재가 흐릿했던 가문의 어머니들을 주제로 ‘족보에 숨겨진 어머니의 얼굴, 지워진 어머니를 보다’전시를 여름까지 진행한다. 대를 내려가면 성씨가 바뀌는 여성가계도도 눈길을 끈다.

심민호 학예연구사는 한국족보박물관의 전시 기획ㆍ연출의도에 대해 “조선 초기 족보는 본래 성씨보다 외손ㆍ사위ㆍ장인 등 집안과 관련된 다른 성씨들이 더 많이 기록돼 있다. 이것은 다른 성씨의 사람들도 어느 대에선 나와 피를 나눈 가족임을 뜻하고, 우리 사회가 한 가족공동체라는 따뜻함을 준다”면서 “자기 집안의 족보가 전시돼 있는지에 관심 두고 온 관람객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해보는 인격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현대의 핵가족화ㆍ개인주의화 추세로 인해 숭조(崇祖)ㆍ가족문화도 흐릿해지고 있는 요즘, 내용도 형태도 다양한 우리 족보를 보고 족보가 주는 의미도 되새기러 한국족보박물관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한국족보박물관이 위치한 뿌리공원(대전 중구 뿌리공원로 79)의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매주 월요일과 설ㆍ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문의 042-582-4445.

 

 


▲ 제3전시실 <안동김씨성보> (1580).

▲ 전시실 초입의 '한국인 성씨 일람표'
▲ '연산서씨 석보' (1853).
▲ 한국족보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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