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악 떨던 눈 없는 귀신, ‘법화경’ 듣고 이승 떠나

 

옛날 중국 양나라에 석혜간(釋慧簡)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엄정하게 계율을 지키고 진실하게 공부를 하는 훌륭한 스님이었지요. 그는 밤낮으로 〈법화경〉을 외우고, 사경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도반들이 그를 바보라고 여겼습니다.

“하루가 아까운 인생, 그까짓 경을 외우고 사경을 한다고 해서 극락에 가겠는가?”

“모르지, 워낙 우둔하니까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을지도......”

그렇지만 스님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저 빙긋 웃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이 형주 태수의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지요. 그야말로 고명한 다른 스님들을 다 놔두고 형주 태수가 바보 같은 혜간 스님을 불렀으니까요. 스님은 처음에는 태수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태수께서 왜 저를 초청했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에는 저보다 뛰어난 많은 스님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저 〈법화경〉을 외우고 쓸 뿐 세상에는 아무 소용이 되지 않는 평범한 수행자일 뿐입니다. 부디 명망 높은 다른 스님을 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태수가 보낸 시자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태수께서 벌써 그런 스님들께 간곡히 청했으나 모두들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꼭 왕림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다른 스님들께서 태수의 청을 거절하였습니까?”

그러자 시자가 민망한 듯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면 아마 스님도 다른 스님들처럼 청을 거절하겠기에, 일단 저와 같이 가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스님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왜 많은 스님들이 태수의 청을 거절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은 시자를 따라 형주 관청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형주 관청에 가자 태수가 스님의 손을 맞잡으며 반겨 맞았습니다.

“스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태수가 스님을 이끌고 청사 동쪽에 있는 외딴집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태수와 스님이 그 집 앞에 이르자 이상한 소리가 사방에서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우웅!

위이잉!

스님은 우선 합장부터 하였습니다.

태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은 귀신이 사는 집입니다. 누구든 이 집 안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하여 이 집을 부수러 들어간 사람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우리 형주의 민심이 아주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제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어 영험한 스님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스님을 이리 모신 것입니다.”

스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바보라서 부른 것이 아닙니까? 바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꼭 그런 것은 아니고 스님께서 언제나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태수가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바보가 죽음이 어찌 두렵겠습니까? 제가 이 집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님은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외딴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방 한 칸을 치우고 향과 촛불을 켜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암송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러자 천지사방으로 날아다니던 소리들이 멎었습니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자정이 넘자 갑자기 눈이 없는 괴상한 사람 하나가 검은 옷을 입고 벽 가운데로부터 불쑥 나오더니 스님이 앉아 있는 문 앞에 와서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무리 바보 같은 혜간 스님이라고 하나 덜컥 겁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입이 얼어붙어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도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눈을 뜨고 그 괴상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외웠습니다. 눈이 없는 사나이는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다가 다시 슬그머니 벽 가운데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도 스님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죽은 듯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요.

그리고 딸깍.

앉은 채로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꿈속에 아까의 그 귀신이 다시 나타나서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나라 말엽부터 이곳에서 이미 수백 년을 살아왔다. 내 성품이 괴악하여 누구든지 사람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고 몹시 괴롭히거나 죽였는데,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찾으며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승이든 저승이든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더구나 죽이는 것은 세상천지 가장 큰 죄악이다. 네 분명 이승을 떠난 지 오래이거늘 아직까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패악을 저지르는 것이냐? 내가 널 본 이상 용서할 수 없다.”

“내가 그동안 괴롭히거나 죽인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참으로 나쁜 일을 일삼은 자들이었다. 살아생전 나는 그들 때문에 부모형제를 잃고, 이렇게 눈까지 잃어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어찌 나쁘다고만 하겠느냐?”

“사람을 응징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고, 하늘의 일. 너는 이제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서 너의 죄를 하늘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 이승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승에서 그 업보를 받으며, 그 또한 운이 좋아 모면했다면 그 몇 배의 과보를 저승에서 받는 것을 네 어찌 모르느냐! 기실 지금의 네 행위도 결코 너 자신을 기쁘게 하지 못하거늘 한 줌도 되지 않는 옛 원한에 젖어 언제까지 이런 무도한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러자 그가 스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이승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제 뼈와 살을 깎아 옳은 일을 하였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대를 위해 고결한 〈법화경〉을 설하여 줄 것이니 그대는 안심하고 그대의 처소로 가라. 오늘부터 그 어떤 것도 그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라. 그것은 그래도 그대의 인연이 〈법화경〉을 염송하는 나와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그대의 전생 언젠가 어디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들었거나, 아니면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한번이라도 부른 까닭이다.”

아! 그 순간 그 귀신의 얼굴에 또렷하게 없었던 두 눈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철철 넘쳐흘렀습니다.

“스님!”

“천지만물 간에도 세상의 구별은 엄연한 법, 그대는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 이제 그대가 있는 곳의 법도를 따라 그곳이 어디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염송한다면 그대가 있는 그곳이 극락이 될 것이다.”

그 귀신이 울면서 울면서 이승을 퇴장했다는 것은 바보 혜간 스님과의 아름다운 후일담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나라에도 오로지 자신만이 세상의 악을 응징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혹은 뱀의 독보다 무서운 독설로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올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처지를 먼저 살피는 뜻 깊은 원숭이의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로부터 우화에 많이 등장하는 어리석은 동물, 그렇지만 어리석기에 더욱 친근한 동물, 여러 동물 중 가장 서로를 배려하는 동물이 바로 원숭이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원숭이는 원숭이, 원숭이보다 못한 우리 공동체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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