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 중요

 

요즘 텔레비전은 ‘먹방’ 즉, ‘먹는 방송’이 대세다. 그만큼 먹을 게 풍부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밥투정, 반찬 투정을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비명이다. 196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밥은 ‘생명줄’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마을 인근의 산은 벌거숭이가 됐고, 1970년대 정부의 녹화사업 이후 겨우 제 모습을 찾았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음식’이다. 음식과 문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음식과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음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종교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음식 섭취는 수행의 방편

불교와 음식을 떠올리면 흔히 ‘육식’, ‘채식’, ‘오신채’, ‘소식’, ‘발우공양’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율장(律藏)을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음식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계율을 정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구하는 방법부터 먹는 시간과 방법, 심지어 마음가짐까지 규정했다. 도대체 불교에서 음식이 뭐 길래.

인도에서 불교 이외의 종교 즉, 힌두교나 자이나교는 금기 음식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반해 초기 불교는 음식 그 자체보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 마음가짐은 스님이나 불자들이 공양할 때 외우는 〈소심경(小心經)〉 ‘오관상념게(五觀想念偈)’에 잘 나타난다.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덕이 들어갔는지를 헤아리고, 나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가를 생각한다. 나쁜 마음 끊으려면 탐진치 끊는 게 으뜸이다.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육신의 고달픔을 치료하고, 보리도를 이루고자 이 음식을 먹습니다. (計功多少量彼來處 / 忖己德行全缺應供 / 放心離過貪等爲宗 / 正思良藥爲療形枯 / 爲成道業應受此食)”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에 깃든 농부의 공덕을 먼저 생각하고, 그 음식을 먹기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을 했는지 되돌아보라고 부처님은 가르친다. 남방불교 경전에 전하는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을 몸을 지키는 약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고려 말 야운 스님(1376-1433)은 나옹 화상의 제자다. 야운 스님이 쓴 〈자경문〉에도 유사한 가르침이 나온다. 음식에 대해 ‘농부와 소, 벌레를 수고롭게 해 나를 이롭게 한 것도 옳지 못한 일인데, 하물며 다른 목숨(곡물)을 죽여 나를 살리는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대목이 나온다. 

식탐은 수행의 첫 관문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남방불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전에는 덩어리 음식[主食]을 자식의 살에 비유한다. “부모가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자식의 살을 먹는 것처럼, 덩어리 음식도 맛에 탐닉하거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행을 돕고 유지시키는 차원에서 먹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속된 말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먹으란 말이다.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음식을 대하는 마음에 절제를 강조한 이유는 식탐(食貪)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 목표는 탐진치의 단절이다. 그 중 식탐은 수행의 첫 관문이다. 식탐에 빠지면 계율까지 어길 수 있다는 즉, 음식이 수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자타카〉에 나온다.

왕사성에 부유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출가해 버린 아들 때문에 명절날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하천(下賤)한 여인이 이유를 묻고 자신에게 돈을 준다면 아들을 환속시켜 데려오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아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여인의 제의를 수용한 노부부는 그 여인에게 하인들을 딸려 아들이 머무르고 있는 사위성에 보냈다. 출가한 아들이 탁발하는 거리에 거처를 정한 여인은 아들에게 그가 좋아하던 음식만 보시했다. 그 음식 맛에 빠진 아들은 어느 날 매일 맛있는 음식을 주던 여인이 보이지 않자 그 여인을 찾아 여인의 방까지 들어간다. 결국 음식 맛에 대한 탐착으로 출가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초기 불교에서는 ‘무엇을 먹느냐’ 보다 ‘어떻게 먹느냐’를 중요시했다. 특별하게 금기한 음식은 없었지만, 음식을 먹을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경전에는 음식과 관련해 현대인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유익한 내용도 담겨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세상 모든 물질이 네 가지 원소, 지수화풍(4大, 地水火風)으로 구성돼 있다고 보았다.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이유도 네 가지의 부조화라고 생각했다. 〈불의경(佛醫經)〉에는 부조화의 원인 열 가지를 이렇게 적고 있다. △빨리 먹고 △먹는데 여유가 없고 △근심이 있고 △피로 하고 △분노하고 △성욕이 과했거나 △대변을 참았거나 △소변을 참았거나 △하품을 참았거나 △방귀를 참는 일 등이다.

단명(短命)하는 아홉 가지 원인도 적시하고 있는데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먹거나 제철 음식을 먹지 않았고 △과식을 했고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간식 △소화되기 전 또는 약이 체내에서 빠지기 전에 식사를 했고 △대소변을 과도하게 참았고 △계율을 지키지 않았고 △나쁜 동료와 사귀었거나 △속가에 살면서 출가인 답지 않게 행동했고 △피해야할 위험에 부주의하게 접근했을 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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