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애락(喜怒哀樂)에 집착하는 인간의 본성

<사진제공=The British Museum>.

희노애락(喜怒哀樂). 눈을 감고 태어난 한 인간이 눈을 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감정들이다. 이 감정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은 없다. 깨달음을 이룬 부처나 예수 등 감정에 흔들림없이여여(如如)한 삶을 산 성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기쁨ㆍ슬픔ㆍ분노ㆍ즐거움ㆍ사랑 등 모든 감정에 매몰돼 살아간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은 얼굴 표정으로 드러난다. 인간은 이 모습을 조각상과 그림 등을 통해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죽은 이의 머리를 따로 떼어내 묻는 관습이 있었다. 회반죽으로 얼굴을 재구성하고, 눈에는 조개를 붙이기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얼굴 만큼은 세세생생 죽기 전의 모습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지 않았을까.

후대의 예술가들 또한 조각상, 가면, 그림 등 다양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담은 얼굴 표정을 표현했다. 근엄한 신의 모습으로, 장난기 가득한 가면으로, 때로는 연인을 잃은 여인의 슬픔 가득한 얼굴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같이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이 녹아든 예술작품들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걸작들 중 ‘인간’을 주제로 한 보물들을 전시하는 ‘영원한 인간’展이다. 신석기시대의 해골부터 대영박물관의 자랑인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의 유물, 현대 컬렉션인 20세기 거장들의 대표작까지 엄선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된 유물은 부처좌상(간다라)과 관음보살좌상(중국), 유학자 초상(한국), 아문-라 좌상(이집트), 세크메트 좌상(이집트), 이집트 여인의 관 뚜껑(이집트), 장례 마스크(북부 이라크), 병마(病魔) 가면, 드로잉과 판화 등 대영박물관의 회화작품 컬렉션, 렘브란트ㆍ뒤러ㆍ마티스ㆍ피카소의 미공개 드로잉 작품 등 총 176점이다. 전시는 3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이 전시는 △아름다움(Ideal Beauty) △개인(Expressing the Person) △신(The Body Divine) △권력(The Body Politic) △변신(The Body Transformed) △사랑 (Relationships) 등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됐다.

‘아름다움’에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바뀌는 미(美)의 기준,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모습을, ‘개인-나를 나답게 표현하라’에서는 실제 그대로 자세히 묘사한 이미지의 초상과 그 사람의 독특한 개성과 인격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변형시킨 다양한 형태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신-우리의 신은 우리와 닮았다’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신을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재현했는지 살필 수 있다. ‘권력-내가 그대들의 지배자임을 온 세상에 알게 하라’에서는 고대의 메달과 주화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등 현대 정치인들의 뱃지를 전시, 역사와 시대를 통틀어 권력이 예술품에 미친 영향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변신’에서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인간은 아닌 것, 또 다른 나를 드러내는 다양한 이미지를, ‘사랑-두 사람의 관계가 형성될 때 이야기가 시작된다’에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볼 수 있다.

전시회의 주제인 ‘영원한 인간’은 어떤 인간을 두고 이르는 말일까? 요즘을 ‘100세 시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100년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구든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세속의 모든 것에 집착하는 인간은 결코 ‘영원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작품에 영원한 삶을 갈구한 자신의 혼을 불어 넣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유물의 얼굴 표정과 성인 형상의 얼굴 표정은 사뭇 다르다. 인간의 얼굴에는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의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성인의 얼굴에는 세속의 경계를 뛰어넘은 자비의 미소와 인자함, 그리고 근엄함이 배어 있다. 자신의 마음을 부단히 갈고 닦아 깨달음을 얻은 성인들의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가르침을 받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성인들은 수행을 통해 생사를 초월하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온갖 집착을 벗어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본성인 ‘불성(佛性)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걸작들에 숨겨진 본성을 찾다보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성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곧 ‘영원한 인간’으로 사는 출발점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두상.
▲ 장례 마스크(2세기).
▲ 기원전 1000년 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여인의 관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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