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 보잘 것 없지만
나라 전체 불교에 젖어
실천하는 대만불교 저력

지난 연말에 대만을 다녀왔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이드로 온 대만유학생의 표정이 어두웠는데, 알고 보니 모임에 합류하기 전날 지갑을 잃어버렸단다. 적지 않은 돈과 중요한 것들이 들어있어 찾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에 일행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지갑이 돌아오더라도 돈은 기대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나 같아도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 한 잔 했을 걸”하고 괜한 기대를 없애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지갑 임자를 찾는 연락이 와서 다녀온 가이드의 희색이 만면하였다. 신분증과 카드는 물론 돈까지 고스란히 든 채 경찰서에 맡겨져 있더라는 것이다. 지인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만의 이런저런 미덕을 덧붙이며 지갑사건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대만에선 그런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군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대만불교’의 저력이 떠올랐다. 부처님 당시의 삶과 문화와 유적을 접할 수 있어 느림의 미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방불교에 비하면, 대만불교의 외형은 보잘것 없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불교에 젖어있는 것과,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대만불교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면 식당에서 스님들에게 아예 육식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출가자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여 스님들이 계율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보호해주는 것이다. 스님에게 육식을 드리면 자신도 ‘계를 어기게 한 죄’를 짓게 된다고 여길 뿐더러, 재가자도 계를 받았으면 당연히 고기와 술을 금한다.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을 정하고 이를 엄정히 따르는 데서부터 불자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대만사찰에 묵으며 검은 장삼에 밤색 가사를 입은 학인스님들의 행렬을 수시로 봤는데 반수가 머리를 기른 재가자였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엄격히 분리된 우리로선 놀라운 모습이었지만, 대만에서는 승속의 구분 없이 승가대학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이들 재가자 가운데 발심하여 출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스님들은 재가자를 향해 활짝 열려있고, 재가자는 출가자 못지않게 불제자로서의 자세가 엄정하다.

그런가하면 “대만사람들은 먹는 일과 장례식에만 돈을 쓸 정도로 검소하지만, 보시는 은행대출을 받아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대만불자들의 보시와 이타행은 정평이 나 있다. 이와 관련해 자제공덕회의 개산조 증엄(證嚴) 스님은 어려움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관음보살로 불린다. 25세 때 출가한 스님이 수십 명의 동참자와 함께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후원하기 시작할 때의 일화이다.

스님은 노인후원기금을 마련하고자 신도들에게 대나무저금통을 나눠주며 하루에 50전씩 모으자고 했다. 그때 한 신도가 하루에 50전씩 모으기보다 한 달에 15원을 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자, 스님이 말했다. “매일이 소중합니다. 매일 50전을 저금하면 한 달 내내 좋은 마음을 내게 되지만, 한 달에 모아서 내면 그저 한 번 좋은 생각을 할 뿐이지요.”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만불교의 힘은 무(無)에서 이루어졌다. 지극한 원력으로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해왔고, 그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눈덩이 같은 감동으로 돌아왔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하다”는 말은, 개인이나 나라나 종교 모두에 통용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부지런한 불교, 그 마음을 발로써 실천하는 불교를 만났을 때 가장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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