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이 밝았다. 올해는 12간지로 봤을 때 원숭이 해다. 원숭이는 불전에 의하면 지혜와 화합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삿된 꾀와 어설픈 기교로는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없다는 교훈을 원숭이는 전하고 있다. 또한 무리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원숭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합이다. 집단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그러므로 원숭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바로 지혜와 화합이다.

마찬가지로 승가공동체를 근간으로 하는 불교계도 지혜와 화합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다. 지혜와 화합을 도모하는 삶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육화경(六和敬)’을 말씀하셨다. 육화경은 불교교단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생활에서 자칫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분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가(僧伽)를 다른 말로 화합중(和合衆)이라 하는데 이는 육화경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육화경의 첫째는 몸으로 화합함이니 함께 머물러라는 신화경(身和敬)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를 대하듯 서로 공경하고 화목하라는 뜻이다. 둘째는 구화경(口和敬)으로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셋째는 뜻으로 화합함이니 함께 일하라는 의화경(意和敬)이다. 서로의 뜻이 어긋나면 방향이 달라지고 충돌을 빚게 된다. 따라서 뜻을 모으는 일이야말로 일을 도모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넷째는 계로써 화합함이니 함께 수행하라는 계화경(戒和敬)이다. 계를 지키지 못하면 공동체 생활의 원칙이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승가에서는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을 통해 청규생활을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 다섯째는 견화경(見和敬)으로 바른 지견으로서 화합함이니 함께 해탈하라는 뜻이다. 견해가 올바르지 못하면 정법에서 일탈할 수밖에 없다. 훌륭한 도반은 수행자가 삿된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여섯째는 이익으로써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는 뜻의 이화경(利和敬)이다.

이러한 육화경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면 지혜로운 삶이 유지되고 화합의 틀이 단단해질 수 있다. 반면 육화경의 가르침이 외면되는 순간 그 조직은 늘 분란과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지난 해 교계는 이를 반영하듯 각종 송사(訟事)로 분쟁과 대립을 야기했다. 모든 송사는 이 육화경의 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내 의견만이 최고고, 내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므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떠한 이익과 이권이 있을 때 혼자 취하려 하면 반드시 갈등과 분란이 생긴다. 이를 서로의 양보와 이해로 풀지 못하면 송사로 이어진다. 부처님께서는 교단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멸쟁법으로 해결하길 당부하셨다. 즉 쟁론이 되는 것을 없애주는 7가지 법을 7멸쟁법이라 하여 교단에서 어떤 쟁론이 일어났을 때 그 해결을 국법이나 사회에 맡기지 않고 이 멸쟁법에 의지해서 풀었다.

내용은 생략하고, 멸쟁법을 저 유명한 화쟁사상으로 발전시킨 이가 원효성사다. 또한 원효의 화쟁사상을 계승하여 선양한 이가 우리 천태종의 종조인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다. 의천 스님은 원효성사의 화쟁사상이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임을 파악하고, 천태종을 창종(創宗)하여 화엄을 비롯한 여러 교학과 선을 일치, 통합하는데 기여했다.

우리가 역대 선사들의 유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한국불교의 교단이 건강하고 바로 설 수 있도록 힘과 뜻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육화경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공경하면 다툼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갈등과 분란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러한 기본적인 화합정신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신년 새해를 맞아 지난해의 과오를 뼈에 새기고, 올 한해는 지혜와 화합으로 힘차게 살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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