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은 11월 2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관문사 2층 대강당에서 ‘구인사 생전예수재의 전승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기조강연과 주제발표문을 요약해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생전예수재 핵심은 시왕신앙
기조강연 - 구인사 예수재의 전통과 구성

 

홍윤식 /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생전예수재는 49재 등의 천도재와 달리 본인 및 가족이 살아있을 당시 죽은 뒤에 지낼 재를 미리 지내는 재라는 특징이 있다. 예수재에서 중심신앙은 시왕신앙이며 시왕은 사람이 죽은 후에 10번에 걸쳐 그 죄업을 심판한다고 하여 살아생전에 그 죄업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재의 핵심은 시왕신앙에 있으며 시왕신앙은 사후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인간이 사후에 심판을 받고 그에 의하여 낙지나 지옥에 행한다고 하는 사상은 세계 많은 민족들에 의하여 인식되고 있었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死者의 書)’나 그에 관련된 회화 등이 그를 잘 일러주고 있으며, 바빌로니아 혹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도 사후의 심판이 있었다. 페르시아 Mithra신은 인도 ‘베-다문학’에 나오는 Mithra와 같이 광명의 신이었는데, 이것이 불교의 명계 지옥의 왕으로서 염마왕이 되었다.

따라서 예수재의 의례절차는 명부시왕을 초청하여 예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먼저 명부에 진 빚을 물적 빚(금·은전)과 정신적 빚(경전)으로 나누어 갚는 행위를 행하고 의례문의 절차에 따라 의식승이 범패, 의식무 등으로 의례를 진행한다. 그것은 예수재를 보다 장엄하게 진행함으로써 신앙심을 유발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상과 같이 예수재는 사후 명부에서의 심판이란 생사관을 바탕으로 비롯되었고 그에 따른 문화적 복합요소가 융합되어 형성되고 오늘에 전승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예수재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요건은 먼저 그 정신적·사상적·신앙적 근거가 되는 경전이 있어야 하고 한편 그에 내재된 신앙심을 표출하는 의례집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수재는 의례이기 때문에 의례집에 따른 의례를 행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구인사는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한편 그를 믿고 행하려하는 신앙공동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같은 예수재는 윤달이 드는 해에는 언제나 개최하여 왔다. 그 기능은 당대의 유능한 전문승이었던 조계종 계통의 권수근(權守根) 스님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그 제자들에 의하여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인사 예수재는 기능적인 면이나 역사적인 면에서 전통성을 지니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토착신앙 불교 통해 체계화 돼
주제발표1 - 생전예수재의 사상적 배경

 

오경후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생전예수재는 망자보다는 산 자에게 수행과 함께 신앙의 공덕을 권장하는 불교의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다. 생전예수재가 다른 불교의식과는 달리 지니고 있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재의 소의경전 〈불설예수시왕생칠경〉은 33구의 찬(讚)과 찬자(撰者)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승경전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내용은 경전의 수지 독송(受持 讀誦)·조성(造成)·사경(寫經), 그리고 시왕상의 조성 공덕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내용이 비록 망자에 대한 시왕의 심판이지만, 궁극적으로 산자들의 망자를 위한 추선(追善)의 행위가 망자를 지옥에서 구제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지니고 있음을 표방하고 있다.

둘째, 생전예수재의 기원은 불교성립 이전의 인도와 불교수용 이전의 중국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죽음’이라는 숙명은 다양한 토착종교와 사상이 지닌 존립의 근거다. 때문에 죽음과 그 이후 명부에 대한 관심은 인도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뿌리 깊은 전통성을 지니고 있다.

셋째, 생전예수재가 지닌 문화적 중층성(重層性)이다. 종교와 사상의 출현이 한 나라의 역사문화적 배경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생전예수재는 ‘죽음’을 매개로 한 의식이라는 보편성에 근간하여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인도적 요소보다는 중국의 색채, 특히 도교적 영향이 훨씬 강하게 풍기고 있다. 6세기경에 성립된 도교의 〈태상동현령보업보인연경(太上洞玄靈寶業報因緣經)〉 등은 사람이 행하는 선악(善惡)이 천상에 보고된다거나 칠칠일의 공양 등이 소개되고 있고, 12~13세기경의 ‘시왕초의(十王醮儀)’의 출현은 예수재가 도교의례의 일종으로 완전히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넷째, 생전예수재가 지닌 사상과 신앙의 복합성이다. 불교·유교·도교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산재해 있다. 불교의 성립과 수용을 거듭하면서 예수재의 동아시아 전개는 수용의 과정에서 전통사상과 종교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재가 도교적 요소를 바탕으로 불교수용에 따라 진화를 겪은 만큼 유교적 실천윤리 역시 강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생전예수재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후(死後) 명계(冥界)에 기반한 대표적인 토착종교와 전통사상이 불교를 통해 체계화되는 특이성을 지닌 의식으로 꽃피운 것이다.

조선, 교학보다 의례로 발전
주제발표2 - 조선시대 생전예수재 연구

 

한상길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지금까지 한국 불교의례의 연구에서 예수재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예수재에 대한 연구의 부족은 무엇보다 관련 자료가 적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예수재 사례는 불과 1~2건만이 알려져 있었다. 이는 연구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나 조선사회에서는 다수의 예수재가 진행되고 있었다. 4종 이상의 의례집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불교계에 이에 대한 수요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본고는 여기에 주목해 의례집 간행 사례를 모으고, 〈조선왕조실록〉과 승려 문집, 〈동사열전〉 등에서 설행 사례를 탐색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예수재 관련 경전은 4종 28건이 확인된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19건)가 가장 많고, 〈예수시왕생칠경〉이 8건, 〈예수천왕통의〉와 〈불설수생경〉이 각각 1건이다. 예수재의 소의경전으로서 〈예수시왕생칠경〉(1469)이 먼저 등장하고 이어 의례집으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1566)가 간행되었다. 〈예수시왕생칠경〉이라는 소의경전보다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라는 의례집이 월등히 많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예수신앙이 교학이나 사상보다 의례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관련 경전과 의례집의 간행을 시기별로 구분하면, 16세기까지 8건, 17세기 16건, 18세기 3건, 19세기 1건이다. 이러한 분포는 예수재의 설행 사례와 대체로 일치한다.

다음으로 설행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예수재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재의 명칭은 10종이 확인된다. ‘예수재’(8회)를 가장 널리 사용하였고, ‘시왕생칠재’, ‘예수회’ 그리고 ‘생전예수재’(각각 2회) 순이다. 그밖에 ‘예수시왕재’, ‘생전시왕재’, ‘생전발원재’, ‘생재’, ‘예수대례’, ‘예수무차회’ 등이다. 이들 명칭은 공통적으로 ‘예수’, ‘생전’, ‘ 시왕’의 개념을 사용하여 재의 본질과 의미를 표방하였다.

끝으로 예수재와 수륙재와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17세기 2건의 자료에서 먼저 예수재를 열고 뒤이어 수륙재를 한다는 ‘선 예수재, 후 수륙재’의 사례를 확인하였다. 예수재와 수륙재는 분명히 별개의 의례이지만, 순차적으로 함께 설행한 것이다. 예수재와 수륙재와의 밀접한 연관은 이미 16세기의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에서 비롯되었다. 조선후기 예수재라는 자행의례와 수륙재라는 타행의례는 사후의 극락왕생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예수재의 경전적 원리는 생전에 사후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스스로 수행하고, 기도하는 자행의례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인들은 자신을 위한 기도에 머물지 않고, 망자의 왕생까지 기원하는 타행의례로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천도재로서 수륙재가 성행하였고, 예수재에서도 망자의 천도의례를 채용하게 되었다.

목적 상실한 의례 고쳐야
주제발표3 - 생전예수재와 의식집의 간행

 

혜일 스님 / 불찬범음연구소 소장

생전예수재는 근대 영산재와 수륙재가 사회적 관심을 받기 이전부터 불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윤달을 맞이해 성행해온 대표적인 재의식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생전예수재에 영가의 위패가 모셔지기 시작했다. 불과 십 수 년 전부터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망자의 위패를 모시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를 따지기보다 이로 인해 변해버린 현행 생전예수재의 설행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 본서의 주된 목적이다.

누구나 현장 상황에 맞게 의식절차를 견기이작(見機而作) 할 수 있다. 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범패승의 자질과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긍정적 잣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설행 목적과 무관한 의식의 절차에 휩싸여 본질을 벗어난 재 의식을 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목적을 상실한 재 의식에 동참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후엔 정말 ‘생전예수재’란 이름만 남게 될 수도 있다.

불가의 믿음엔 분명, 사생(四生)과 육도(六道)가 자리하고 있다. 이중 육도란 말 그대로 누구나 선악(善惡)의 업(業)에 따라 지옥(地獄)에 갈 수도 있고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으로 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행히 선업이 많아 극락세계에 갈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행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면 다음 생에 극락세계에 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믿음이 부족하기에 지옥도 믿지 않고, 아귀의 존재도 믿지 않음은 결국 극락도 믿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망자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 망자를 위로한다고 한다. 모두 거짓된 의식에 동참하는 꼴이다. 심지어 나름 권위 있는 범패승이라는 자는 법당 안에서 의식을 행하면서, 괘불을 밖에 내 모시지 않으면서도 보란 듯이 괘불이운(掛佛移運)을 행한다.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불·보살과 명부시왕 그리고 일체 권속을 청하고 맞이하며 목욕시켜드리는 의식이 생략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집전자와 주최자 그리고 참여자 모두 성현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혹시,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와 최근에 등재된 수륙재의 설행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사진 찍는 작가와 장엄구를 옮기는 신도들이 재 의식, 동참자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그 동참자도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엔 다들 바쁘다는 핑계를 들어 자리뜨기에 급급해 마지막 회향 때엔 참여한 범패승조차 남아있지 않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목적을 상실하고 영산재·수륙재와 별반 차이 없는 이름뿐인 생전예수재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구인사, 한국적 예수재 구조 해체 확장
주제발표4 - 구인사 생전예수재의 전승과 설행

 

구미래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수륙영산대재 및 예수재’로 치르는 구인사 예수재는 한국불교에서 불공(佛供)과 재회(齋會)가 지닌 보편성에 주목하게 한다. 일상의 사시예불에 생자 축원과 망자 축원이 함께하듯, 불교의 모든 축원은 생자 혹은 망자를 위한 출발점과 무관하게 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망자의 범주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특정 망자를 대상으로 한 사십구재에서 주인공만 영단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유주무주 고혼을 청해 함께 공양을 올리고 관욕으로써 업을 씻어 천도하게 된다. 망자를 위한 사십구재에 유족과 생자의 축원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일상의 불공에서 반야심경과 법성게 등을 염송하며 불법을 새기듯, 그러한 의미가 극대화되는 지점은 부처님 당시의 법석을 회복하는 시공간이다. 불교의례에서 지향하는 궁극의 원형회귀는 영산회 법회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성 존재와의 만남은 시방삼세 어느 곳에나 상존하는 모든 불보살과 성중을 망라하는 ‘거룩한 모임’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생자와 망자, 성과 속이 함께하면서 그 자리를 부처님 당시의 법회로 만드는 것이 모든 의례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아무리 작고 일상적인 의례라 하더라도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의례 규모가 커질수록 이상향의 구상화가 보다 확장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구인사 예수재가 지닌 융합적 특성이 분명해진다.

〈예수재의범〉의 절차에 따라 설행된 2015년의 구인사 예수재는 평소 5일에 걸친 의례를 하루로 압축한 특설예수재로, ‘수륙·영산·예수’의 재회가 통합된 한국적 예수재의 설행내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평소 5일에 걸쳐 ‘수륙영산대재 및 예수재’로 치르는 구인사 예수재는 일반예수재의 칠칠재 구조를 선택하는 대신 수륙재·영산재·예수재가 융합된 한국적 예수재의 구조를 해체 확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극대화한 설행이라 하겠다. ‘일상의 불공에 담긴 보편적 특성’이 ‘예수재의 사전의식에 의례화·구상화’되고, 그것이 다시 ‘수륙·영산·예수 재회의 5일 의례로 확장’되는 모습에서 부분과 전체가 동일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프랙탈 원리를 살필 수 있다.

구인사 예수재의 특성은 한편으로 전통 불교예술의 총집결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범패와 전통 불교의식의 기능을 모두 수용, 융합해 천태종의 의례를 확립했고, 대단원의 의례를 마친 후 동참대중이 한데 모여 각종 기물을 들고 벌이는 삼회향놀이 또한 불교와 지역민속을 아우르는 불교식 뒤풀이다. ‘수륙영산대재 및 예수재’는 구인사뿐만 아니라 천태종의 다른 사찰재로 확산 정착되어가는 현상 또한 살필 수 있다.

장엄, 의식 앞선 불국토 구현 과정
주제발표5 - 생전예수재의 장엄과 지화

 

석용 스님 /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장엄이수자

1826년에 편찬한 〈작법귀감〉에는 불교의례나 장엄에 사용한 꽃은 (살)모란, 작약, 연화, 국화가 쓰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사상과 의식 후에 극락왕생을 비는 소대전송의 의미로 장엄구를 소각하는 불교의식에 따라 지화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지화 장엄에 있어, 모든 부처님(괘불)과 보살님, 모든 성문과 연각 등 사성이 계시는 상단은 (살)모란, 작약으로 꾸몄다. 모란은 번영 창성의 꽃으로 미호와 행복의 상징으로, 살모란은 우담바라로 인식되는 상상의 꽃을 상징한다. 작약은 일명 ‘함박꽃’이라 불리며 고려 의종 때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하며, 모란과 함께 상단을 장엄한다. 〈작법귀감〉은 모란을 꽃 중의 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명부와 신중을 모시는 중단은 국화로 꾸몄으며 〈작법귀감〉에는 만물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꽃이라 표현하고 있다. 즉, 환생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영단이라 표현하는 하단은 연화로 장식을 했으며, 깨달음·청정·탄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염화시중의 미소에서 깨달음을, 진흙 속에서 맑게 피어나며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는 청정을, 꽃과 씨방이 동시에 생기며, 씨가 강한 생명력을 지니므로 탄생과 번영을 상징하는 화생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불교의식의 기록은 문헌을 찾기보다는 탱화를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감로탱화는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 제작시기의 불교의식과 불교미술뿐만 아니라 생활상까지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 약선사 감로탱화를 보면 재 의식에 쓰인 지화의 종류를 명확히 볼 수 있다. 〈지화의 종류와 제작 과정과 기법 생략〉

재는 단순히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장엄이라는 준비과정을 통해 불국토가 먼저 구현되어야 하는 불교 의식이며, 그 중에서 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지화 또한 단순이 꽃의 형태를 흉내 내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불심이 들어가야지만 비로소 장엄에 어울리는 꽃이 된다. 한지 구입부터, 염색, 지화제작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전통방식에 의하여 제작기술을 통해 수작업으로 구현되고 있다.

특히, 지화 제작에 사용되는 도구는 대부분 스승들로부터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고, 제작기법 또한 스승들에게 배운 전통의 기술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산업화와 조화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던 전통 지화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 중의 하나인 지화가 세계에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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